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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명복 칼럼] 한국과 일본, 그 영원한 평행선

중앙일보 2019.01.08 00:05 종합 31면 지면보기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

‘축소 지향’을 키워드로 일본인의 특성을 명쾌하게 분석한 사람이 한국의 이어령 선생이다. 일본에는 ‘도덕 지향’을 열쇳말로 한국인의 특성을 파헤친 학자가 있다. 오구라 기조(小倉紀藏) 교토대 교수다.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옳고 그른 것을 따지는 한국인의 도덕 지향적 심리 구조를 이해하지 않고서는 한국인과 한국 사회를 제대로 파악하고 설명할 수 없다는 게 그의 주장이다.
 

한국은 도덕 지향적인 데 비해
일본은 도덕보다 현실을 중시
도덕의 잣대만 고집해선
한·일 관계 영원히 안 풀려

도쿄대 독문과 출신인 오구라 교수는 1980년대 말 한국에 유학을 와 서울대 철학과에서 8년간 공부했다. 그에게 한국은 터무니없이 심오하고 불가사의한 세계였다. 그는 한국적 정신세계의 이면을 밝혀내고 말겠다는 열정에 사로잡혀 무수한 불면의 밤을 보냈다. 그 결실이 98년에 일본에서 나온 『한국은 하나의 철학이다』란 책이다. 뒤늦게 한국에선 약 1년 전 번역·출간됐다. 일격에 한국을 ‘아웃’시켜 한국에 관해서는 더이상 다른 설명이 필요 없는 책을 쓰겠다는 결기의 소산이다.
 
책 제목 그대로 그는 한국을 ‘하나의 철학’으로 규정한다. 그 철학은 도덕 철학이고, 정확히는 유교 철학이다. 더 구체적으로는 주자 성리학이다. 조선 왕조가 망한 지 100년이 훨씬 지난 지금도 한국인의 정신세계를 지배하는 것은 주자 성리학이라는 단 하나의 철학이라고 오구라 교수는 말한다. 도덕을 지향하는 것과 도덕적인 것은 물론 다르다. 사람들의 말과 행동을 오로지 도덕(요즘 말로는 정의)의 잣대로 재단해 철저하게 우열을 가리는 도덕 환원주의가 그가 말하는 한국인의 도덕 지향성이다.
 
조선은 국가의 기본이념으로 남송의 주희가 완성한 성리학을 받아들였다. 천리(天理)와 인간 도덕의 완벽한 일치를 추구한 성리학을 바탕으로 조선의 천재들은 바늘 하나 들어갈 틈 없는 정치(精緻)한 이론을 만들어냈다. 이기론(理氣論)이다. 인간, 세계, 우주의 모든 영역을 ‘리(理)’와 ‘기(氣)’의 관계에 입각해 누가 더 논리정연하게 설명할 수 있느냐를 놓고 조선의 학자들은 사생 결단의 싸움을 벌였다. 논쟁에서 이긴 그룹은 도덕적 권위와 함께 권력과 부(富)를 독점했다. 패한 그룹은 권력에서 배제되는 것은 물론이고, 심지어 목숨까지 잃었다. 지금도 한국 사회는 도덕적 명분을 놓고 권력 다툼과 밥그릇 싸움을 벌이는 거대한 극장이란 게 오구라 교수의 시각이다. 손에 땀을 쥐게 하는 한국 사회의 역동성은 여기서 유래한다는 것이다.
 
배명복 칼럼 1/8

배명복 칼럼 1/8

강대국에 포위된 지정학적 조건에서 조선은 힘보다 도덕으로 무장하는 길을 택했다. 병자호란의 수모를 겪고 나서도 조선은 청(淸)을 여진족 ‘오랑캐’의 나라라고 속으로 멸시하며 중화(中華) 문명의 진정한 계승자를 자처했다. 구한말의 세계사적 격변기에도 조선은 ‘위정척사(衛正斥邪)’의 깃발 아래 나라의 문을 굳게 닫고, 성리학에 매달렸다. 임진왜란의 참혹한 전란을 일으킨 일본에 대해서는 오랑캐 나라 왜(倭)보다 도덕적으로 우위에 있다는 자폐적 도덕 우월주의로 맞섰다.
 
한국이 도덕 지향적 국가인 데 비해, 일본은 ‘몰(沒) 도덕적(amoral)’ 국가라고 오구라 교수는 말한다. 한국인과 달리 일본인은 현실을 숙명으로 받아들이는 운명론적 경향이 강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TV 드라마에서는 연인들이 “왠지 당신하고는 잘 안 될 것 같아”라고 말하면서 헤어지지만, 한국 드라마에서는 “당신은 이런 점이 도덕적으로 잘못됐기 때문에 헤어질 수밖에 없다”고 말하면서 결별한다는 게 그의 관찰이다. 일본 드라마가 늘어지고 지루한 데 비해 도덕의 논리로 무장된 감정이 끝없이 충돌하는 한국 드라마는 지루할 틈이 없다.
 
새해 벽두부터 한국과 일본이 격돌하고 있다. 강제징용 판결 이행과 일본 초계기에 대한 한국 군함의 레이더 조준 공방을 둘러싸고 양보 없는 대치가 이어지고 있다. 과거사와 영토 문제를 놓고 양국이 부딪칠 때마다 그래도 일본에선 소수일지라도 한국 편을 드는 목소리가 나오지만 한국은 전혀 그렇지 않다. 한·일 간 갈등 사안에 관한 한 한국에는 사상과 양심의 자유, 표현의 자유가 사실상 존재하지 않는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현실을 식민 지배의 상처만으로 설명할 수 있을까. 도덕보다 현실을 중시하는 일본에 도덕의 잣대만 들이대니 서로 접점을 찾기 어렵다. 영원한 평행선이다. 중국의 부상으로 미국과 중국이 충돌하는 상황에서 대일(對日) 외교를 이렇게 방치해도 좋은 것인가.
 
일제 강점에서 해방된 지 70년이 넘었고, 1인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넘었다지만 우리의 정신세계는 아직도 도덕성의 순도(純度)를 놓고 피 터지게 싸우던 조선 시대의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도덕의 잣대만으로 일본을 재단하며 일본을 ‘적(敵)’과 ‘놈’으로 취급하는 한 우리는 일본을 극복할 수 없다.
 
배명복 칼럼니스트·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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