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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S, 칼국수 오찬에 불러 장관 제의…고사했지만 임명 강행

중앙일보 2019.01.07 01:00 종합 18면 지면보기
남기고 싶은 이야기 
1990년 12대 과학기술처 장관으로 짧은 기간 정부에 봉사하고 대학교수로 돌아오자 바쁜 일정이 기다리고 있었다. 국내외 초청 강연과 학회 참석을 통해 수많은 학자와 교제하는 가운데 미국 원자력학회는 한국인 학자론 처음으로 나를 중진 회원(Fellow)으로 뽑아줬고 학회 이사로도 선임해줬다. 뉴욕 공대와 헌팅던대에선 명예박사 학위도 수여했다. 미국의 밀라드 풀러(1935~2009년) 변호사가 76년 시작해 지미 카터(95) 전 대통령이 크게 발전시킨 해비타트(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동참할 기회도 찾아왔다. 92년 해비타트 한국 운동본부 이사장을 맡아 2015년까지 봉사할 수 있었다.  

김영삼 대통령이 국무위원들과 함께 칼국수로 오찬을 함께 하는 모습. 정근모 박사는 김 대통령과 칼국수를 함께 한 뒤 15대 과기처 장관 제안을 받았다. [중앙포토]

김영삼 대통령이 국무위원들과 함께 칼국수로 오찬을 함께 하는 모습. 정근모 박사는 김 대통령과 칼국수를 함께 한 뒤 15대 과기처 장관 제안을 받았다. [중앙포토]

아주대 에너지센터도 본격적으로 가동했고, 고등기술연구원(IAE)도 92년 7월 인가가 났다. 나는 IAE 초대 원장에 취임해 300명 이상의 과학기술자와 온 힘을 다해 일했다. 그러던 94년 말 김준엽(1920~2011년) 아주대 이사장이 나를 불렀다. 독립운동가 출신의 김 이사장은 82~85년 고려대 총장 재임 중 군부독재와 대립하다 강제로 물러났으며 89~99년 아주대 이사장으로 재임했다. 김 이사장은 내게 “아주대 교수들에게 후임 총장 추천을 받아보니 정 박사가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다”며 “마음의 준비를 해라”고 말했다. 이어 모교인 미시간 주립대에서 졸업식에 참석해 명예박사 학위를 받고 연설해달라는 연락이 왔다. 학자로서 대학 총장을 맡는 일도, 모교에서 명예박사를 받는 것도 더할 나위 없이 기쁘고 감사할 일이다. 아내는 총장직을 수행하려면 자기 학위복이 있어야 한다며 새 학위복을 마련해줬다. 
정근모 박사가 15대 과기처 장관 시절 무주택자를 위한 해비타트(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참가해 페인트칠 자원봉사를 하고있다.[중앙포토]

정근모 박사가 15대 과기처 장관 시절 무주택자를 위한 해비타트(사랑의 집짓기) 운동에 참가해 페인트칠 자원봉사를 하고있다.[중앙포토]

미시간 주립대에서 명예박사학위를 받고 귀국하니 김영삼 대통령(1927~2015년, 재임 93~98년)이 오찬에 나를 불렀다. 당시 청와대 오찬 메뉴는 그 유명한 칼국수였는데 너무 뜨거워 쉽게 먹을 수가 없었다. 김 대통령의 말씀이 시작됐다.  
“정 박사, 과학기술이 곧 국력이 아니겠소? 우리나라가 많은 발전을 이뤘지만, 아직도 멀었소. 정부에 들어와 과학기술처를 맡아 주시오.”  
나는 정중하게 사양의 말씀을 드렸다.  
“감사합니다, 하지만 저는 이미 과학기술처 장관직을 맡아 실패한 경험이 있습니다. 제게는 교수직이 천직인 것 같습니다.”  
내 말을 들은 김 대통령은 창밖으로 청와대 뜰만 바라보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나는 한이헌 경제수석의 배웅을 받으며 청와대를 나왔다. 그런데 며칠 뒤 고등기술연구원 강당에서 새로 입사한 젊은이들에게 ‘과학기술을 통한 대한민국의 미래 비전’을 강의하고 있는데 비서가 작은 쪽지를 건넸다. ‘지금 개각발표에서 과학기술처 장관에 다시 임명됐다’는 내용이었다.
결국 94년 12월 24일 나는 대학 총장의 꿈을 버리고 15대 과기처 장관으로 다시 입각하게 됐다. 반갑고 다행스러운 것은 평소 존경하고 따르던 이홍구 박사님이 12월 17일 국무총리에 임명된 일이다. 나는 안심하고 일할 수 있겠다는 자신감을 갖게 되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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