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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현철의 시선] KB 파업에 공감하기 어려운 이유

중앙일보 2019.01.07 00:27 종합 28면 지면보기
나현철 논설위원

나현철 논설위원

지난주 자주 가던 은행 1층에 안 보이던 공고문이 붙었다. 오는 8일 파업을 예고하는 KB국민은행 노조의 안내문이다. 노사 양쪽 얘기를 들어보면 파업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지난해 성과급과 직급별 연봉제한(페이밴드·pay-band)이다. 페이밴드는 연차가 쌓여도 직급 승진을 못하면 임금 인상을 제한하는 연봉제의 일종이다. 2000년대 초반 이후 신한·KEB하나·우리 등 주요 은행이 도입했다. KB는 2014년 입사자에게만 적용하고 있는데 사측은 이를 전 행원으로 확대하자고 한다. 노조는 물론 반대다.
 

지난해 순이익 증가는 국민의 주담대 부담 증가 탓
경영진도 채용과 사회공헌 늘려 존재의미 보여야

보다 중요한 건 성과급이다. 지난해 경영실적을 두고 은행에선 당초 목표한 성과에 미달했으니 월 기본급의 70%만 주겠다는 입장이다. 노조에선 일 년 전처럼 월 기본급의 300%를 달라고 한다. 기준을 자기자본이익률(ROE)로 보느냐, 단순 순이익 규모로 보느냐의 관점 차이다. 은행에선 ROE 10% 목표에 미달했다는 거고, 노조는 지난해 순이익이 2017년(2조1400억 원)을 넘길 것이라고 본다. 지난해 3분기 말을 기준으로 KB국민의 순이익은 2조800억 원이다. 사측은 지난해 노조가 기준을 ROE로 하기로 합의해놓고 딴소리를 한다고 지적한다. 하지만 노조는 양측이 구체적인 수치에 합의하지 못했다고 반박한다. 어쨌든 노조의 파업은 합법이다. 임금을 둘러싼 것이어서다. 양측은 이미 중앙노동위원회에 중재를 신청해 지난해 말 중재가 어렵다는 ‘중재 결렬’ 결정을 받았다.
 
고객과 국민의 입장에서 보면 이번 파업이 영 불편하다. 우선 싸움의 빌미가 된 순이익 규모부터 그렇다. 2조원이 넘는 막대한 금액은 사실 국민들이 주택담보대출금을 갚으며 쌓인 돈이다. 금융권에 따르면 KB국민·신한·우리·KEB하나·NH농협은행 등 이른바 ‘5대 은행’의 지난해 말 기준 가계대출 잔액은 570조3635억 원으로 일 년 전에 비해 42조 원이나 증가했다. 부동산 경기 활황에 따른 주택담보대출 급증 때문이다. 지난해 5대 은행의 주택담보대출 잔액 증가 규모는 27조3200억 원으로 전체 가계대출 증가액의 64%를 차지했다. 자영업자가 주로 쓰는 개인사업자대출이 19조 원이나 증가하며 중소기업대출 증가를 견인했고 개인 신용대출도 8조 원가량 늘어난 것을 감안하면 지난해 수익 대부분이 국민의 쌈짓돈에서 나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이는 곧 은행이 잘해서 번 돈이 아니라는 얘기다. ‘빚내서 집 사라’로 대표되는 박근혜 정부 경제정책의 후유증일 뿐이다. 국민 누구는 뛰어오르는 집값을 따라잡기 위해, 다른 누구는 집 없는 서러움에서 벗어나기 위해 억지로 은행 빚을 냈다. 그러곤 원리금을 갚기 위해 외식을 줄이고 놀러 나가는 횟수를 줄였다. 개인적으론 부자가 되려는 마음이었겠지만 국가 차원에선 부담만 키운 정책이었다. 금리정책도 재정정책도 제 역할을 하기 어려워졌다. 이 시점에서 지난해 늘어난 은행 대출이 요즘 유행하는 스타트업이나 다른 생산 부문에 투입됐으면 어땠을까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은행이 국부를 늘리고 국민을 풍요케 하면서 이익을 늘렸다면 ‘조금 더 달라’는 노조의 파업 요구가 이렇게 불편하진 않을 것이다.
 
그렇다고 무조건 경영진 편을 들기도 어렵다. 지난 4일을 기준으로 KB국민은행의 모회사인 KB금융 주식의 68.7%가 외국인 소유다. KB금융은 오는 3월 지난해 순이익의 30~35%를 주주에게 배당할 예정이다. 나머지는 대부분 내부 유보라고 한다. 지난해 3분기 말 기준으로 15.71%로 4대 은행 중 가장 낮은 국제결제은행 자기자본비율(BIS)를 끌어올리겠다는 것이니 일견 이해가 된다. 하지만 이러면 회사 밖으로 나가는 이익의 대부분은 외국인 몫이다. 국내 허가를 받고 국내에서 영업하는 금융회사로선 체면이 안 선다. 그렇다고 채용을 많이 하는 것도 아니다. KB가 지난해 채용한 인원은 전체 인원 2만명의 3%가량인 685명에 불과했다. 사회 공헌도 비슷하다. 지난해 KB가 1년 동안 사회 공헌에 쓴 돈은 1000억 원 남짓이다. 채용도, 사회공헌도 안 하고 배당의 대부분을 외국인에게 주니 ‘국내 대표 금융그룹’이라는 문구가 무색해진다.
 
소비자로선 KB 지점이 하루쯤 문 닫는다고 큰 타격을 입지는 않는다. 어차피 전체 은행 거래의 90% 가까이가 인터넷이나 모바일을 통해 이뤄진다. 은행 지점의 직원보다 홈페이지 화면이 더 익숙하다. 하지만 나머지 10%가 입을 기회비용의 손실은 회복하기 어렵다. 제때 입금하지 못해 물어야 할 위약금, 가산금, 신용 하락 등은 제대로 보상받기 어렵다. KB 노사의 순이익 나눠먹기보다 훨씬 소중하고 절실하다. KB 노조는 파업을 거두고 지난해 국민의 피땀으로 쌓아 올린 순이익을 노사 양쪽이 어떻게 현명하게 나눠쓸지 고민하길 바란다. 물론 은행업의 성장과 미래 비전을 보이는 경영진의 노력도 필요하다.
 
나현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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