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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트북을 열며] 청와대 청원 게시판 따라하기

중앙일보 2019.01.07 00:20 종합 30면 지면보기
염태정 내셔널팀장

염태정 내셔널팀장

‘소통e가득’ 이란 인천시 청원 게시판은 요즘 김진용 인천경제자유구역청장(경자청장)으로 뜨겁다. ‘국제도시의 발전을 저해하고 청라주민을 우롱하는 김진용 경자청장의 사퇴를 요청합니다’는 청원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10일 올라온 이 글은 게시판의 135개 청원 가운데 가장 많은 공감(6일 현재 3179건)을 얻으며 답변 요건(공감 3000건 이상)을 충족시켰다. 박남춘 시장은 19일까지 뭐라도 답변해야 한다. 인천 시민도 아니고 김 청장과 어떤 인연도 없는 사이라 그가 일을 어떻게 해 그런 청원을 당했는지는 세세히 알지 못한다. 다만, 명예 훼손 가능성이 상당한 그런 글이 청원이라는 이름으로 제약도 없이 공개되는 게 맞는지 의문이다.
 
‘소통e가득’은 청와대의 청원 게시판을 벤치마킹했다. 청와대 게시판이 미국 백악관의 위 더 피플(We the People)을 본뜬 것처럼. 지난해 12월 3일 개설된 ‘소통e가득’에선 김 청장 사례를 비롯한 여러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싸움판 같다. ‘지역이기주의와 담합으로 치닫고 있는 청원제도의 폐단과 관련하여 보완 또는 폐지를 요청드립니다’는 청원까지 올라와 있다. 논쟁이 벌어지고, 때론 잘못되거나 황당한 내용이 버젓이 올라오는 건은 청와대 게시판도 마찬가지다. 지난해 러시아 월드컵에서 스웨덴에 패배한 후 올라온 ‘스웨덴에 미사일을 발사해 주세요’에서 ‘월요일을 휴일로 개정해 주세요’까지 셀 수 없을 정도다.
 
전자청원제도는 2000년 스코틀랜드에서 시작돼 2005년 독일, 2011년 미국 등 여러 나라에 도입됐다. 우린 2017년 8월 문재인 대통령 취임 100일을 맞아 개설됐다. 6일 현재 37만건이 넘는 청원이 올라왔다. 최근에 부산시·인천시, 경기도 성남시 등 지자체도 경쟁적으로 전자청원제를 도입하고 있다.
 
전자청원은 대의제 민주주의 위기를 정보기술을 통해 해소하려는 노력이다. 시민의 정치·행정 참여에 대한 시·공간적 제약을 크게 줄였다. 소통 강화 측면에서 낸 성과도 적지 않다. 없애긴 쉽지 않다. 그렇다 해도 지금처럼 사실상 아무런 제약 없이 글이 올라오는 건 바람직하지 않다.
 
무엇보다 글을 쓸 수 있는 요건, 게시 조건을 엄격히 해야 한다. 예를 들어 위더피플은 청원한다고 바로 사이트에 공개하지 않는다. 비공개 상태에서 150명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 이를 위해 청원이 제출되면 청원자의 이메일로 동의자를 모집할 수 있는 링크가 전송된다. 청와대 측은 최근 게시판이 문제가 되자 “안 좋은 친구들이 들어온다고 놀이터를 없애는 건 방법이 될 수 없다”고 했다. 국민 소통공간이라던 게시판이 언제 놀이터가 됐는지 모르겠으나 놀이터라도 정리 정돈은 잘 돼 있어야 한다. 더구나 지자체도 줄줄이 따라 하고 있지 않은가.
 
염태정 내셔널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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