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털실 옷 입은 가로수…한겨울 새벽 거리가 따뜻하네요

중앙일보 2019.01.06 07:00
[더,오래]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17)
“아침에 일어나 어두컴컴한 길을 걸어 가보세~~구둣방 할아범 벌써 일어나 일판 벌여 놓았네, 에헤헤헤~~”요즘 젊은이들은 아마 처음 들어봤을 기억도 희미한 옛 노래다. 
 
대학 시절 통기타 동아리에서 활동했을 때 연주기법이 제법 까다로워서 생각나는 ‘새벽길’이라는 노래의 첫 부분이다. 노래 속의 구둣방 할아범은 또 얼마나 정겨운 느낌이었던가! 오늘도 밖은 무려 영하 12도를 오르내리는 강추위다. 찬바람 쌩쌩 부는 새벽길에서 만난 이웃들의 이야기를 그려보았다.
 
한겨울 얼어붙은 새벽 골목길을 걷다
겨울 아침 동네 골목길 풍경 by 갤럭시노트5 s노트. [그림 홍미옥]

겨울 아침 동네 골목길 풍경 by 갤럭시노트5 s노트. [그림 홍미옥]

 
언제부턴가 남편의 출근길에 가끔 동행하곤 한다. 특별한 일이 있어서가 아니라 아침 운동 겸 눈곱만 겨우 떼고 모자를 눌러쓴 채 따라나서는 거다. 마스크까지 쓰면 누구도 날 알아볼 수 없으니 그깟 세수 따위야 뭐~~
 
남편도 마침 아침잠이 없어질 나이인 데다 출근길의 교통체증을 피할 겸 일찌감치 출근을 서두르곤 한다. 우린 널찍하고 깨끗한 아파트 정문 대신 뒤편의 좁은 쪽문을 이용하곤 한다. 한걸음이라도 줄여주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대학교 앞이어서 원룸이나 작은 음식점들이 유난히 많은 이 동네는 밤낮없이 분주하다.
 
1월의 아침 일곱 시, 아직은 컴컴한 새벽길이다. 지난번에 내린 눈이 잿빛 얼음으로 변해 골목 여기저기에 숨어있어 까딱하다간 미끄러질지도 모를 일이다. 조심 또 조심이다. 
 
조금 내려가면 골목 끝에 편의점이 있다. 밤샘영업을 하는 그곳엔 컵라면으로 아침을 해결하고 일터로 가는 사람들이 보인다. 그들을 비추는 편의점 불빛이 유난히 따스해 보이는 아침이다. 그런가 하면 맞은편 돼지갈빗집 신축공사장에는 벌써 뚝딱 소리가 제법 커다랗게 들려오고 겨울 아침 추위를 녹이려는 인부들은 종이컵에 담긴 커피를 마시며 하루를 시작한다.
 
그때다. 갑자기 남편이 걸음을 멈추더니 두리번거리기 시작한다. 흥! 보나 마나 뻔하다. 흡연할 곳을 찾아 좀 더 으슥하고 어둡고 외진 곳을 찾고 있는 거다. 해마다 연초부터 혹은 3월 초에 아니면 가을부터 온갖 핑계를 대가며 금연을 다짐하던 게 몇 년이던가. 비흡연자의 입장에선 도저히 이해할 수도 하기도 싫지만 그게 또 말처럼 쉬운 건 아닌가 보다.
 
새벽길엔 구둣방 할아범 대신 배달 오토바이와 고소한 빵 내음이
엎어진 김에 쉬어간다고 남편이 담배를 태우는 동안 골목 이곳저곳을 살펴보았다. 여러 가구가 모여 사는 작은 마당엔 벌써 부지런한 이웃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 소식을 들려주는 신문은 누구네 집계단위에 벌써 살포시 놓여있고 꼭두새벽까지 누군가의 위장을 행복하게 해줬을 중국집 배달 오토바이는 찬 서리를 맞고 서 있다. 또 누구네 창가에 환하게 밝힌 불빛은 골목을 따뜻하게 비추고 있다. 사실 말이지 주변 환경은 그리 쾌적하다고 볼 순 없다. 한겨울이니 망정이지 입을 벌리고 있는 쓰레기봉투는 냄새가 날 것 같았고 물이 뚝뚝 떨어지다 얼어버린 대걸레 두 자루도 과히 보기 좋은 풍경이 아닌 건 사실이다.
 
이른 아침에 바라본 골목길 풍경. [사진 홍미옥]

이른 아침에 바라본 골목길 풍경. [사진 홍미옥]

 
그런데도 이 골목풍경들은 정겨운 그림을 보는 것만 같다. 때마침 맞은편의 빵집에서 풍겨오는 고소한 빵 냄새는 영하의 추위마저 녹여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하얀 요리사 모자를 쓴 제빵사는 아침 일곱시 무렵에 일을 마쳤는지 기지개를 켜며 뒷문을 연다. 그 빵집 진열대엔 갓 구워진 먹음직한 식빵이 놓여있겠다.
 
컴컴했던 하늘이 밝아오기 시작하면서 저쪽에서 한 무리의 고등학생들이 뛰어온다. 저마다 손엔 빵이며 삼각 김밥을 들고서 이 추위에 미처 감은 머리도 못 말리고 뛰어간다. 요즘 고등학생들은 방학도 없나 보다. 갑자기 골목 안이 생기가 넘치는 것 같다. 
 
강추위에도 우리 상남자 고딩들은 슬리퍼를 신고 뛰는 거 아닌가. 불과 몇 년 전 교복을 입은 아들 녀석의 모습이 생각나서 나도 모르게 엄마 미소를 짓고 있다. 그렇게 캄캄했던 새벽길은 담배 한 대를 피우는 동안 금세 아침 등굣길. 출근길로 변해버린다.
 
노랫말처럼 일판 벌여놓은 구둣방 할아범은 없지만 나름 경쾌한 풍경이다. 그때다! 골목 저만치서 어떤 중년 남자가 오호랏! 하는 표정으로 이곳으로 오고 있다. 보나 마나 이 시대의 구박받는 외로운 흡연자일 게 뻔하다. 그도 남편처럼 으슥하고 후미진 장소를 찾아 헤맸음이 틀림없다. 마치 서로 아는 사이처럼 남편과 은근슬쩍 눈인사를 주고받는 것처럼 보일 정도다.
 
짐승의 썩은 고기만을 찾아 헤매는 킬리만자로의 하이에나도 아니고 이건 뭐…. 여보쇼! 여긴 킬리만자로 아니거든요? 분명 2019년 1월 1일에도 야심 찬 금연계획을 세웠을 게 틀림없는데 말이다.
 
우리의 아침은 누군가의 치열한 새벽이 만들어 내는 것
동네 초등학교에서 가로수 겨울나기를 위해 만든 털실옷. [사진 홍미옥]

동네 초등학교에서 가로수 겨울나기를 위해 만든 털실옷. [사진 홍미옥]

 
그렇게 짧은 출근길은 새벽길의 풍경들과 고소한 빵 내음, 뛰어가는 학생들의 발걸음 소리와 함께 환하게 밝아졌다. 저기 한겨울 추위에 떠는 승객을 위해 따뜻하게 무장한 버스가 오고 있다. 버스정류장 옆의 가로수는 동네 초등학교의 엄마와 아이들이 정성스레 뜬 털실 옷을 입고 있다. 대단한 정성의 손길이다.
 
이 겨울, 가로수에도 따뜻한 마음이 닿아있는 걸 보니 덩달아 따뜻해지는 기분이다. 언제 다녀갔는지 환경미화원이 지나간 거리는 깨끗하게 치워져 있다. 우리에겐 늘 있는 아침은 누군가의 새벽이 분주했음을 다시금 느끼는 아침이다. 또다시 한 해가 시작되었다. 부지런한 새벽이 선물해 주는 따뜻한 아침을 맘껏 두 팔 벌려 맞이해 본다.
 
오늘의 드로잉팁
오늘은 드로잉앱 펜소울(Pensoul) 무료 버전을 이용해 간단한 3차원 입체(3D)를 만들어 본다.
 
팬소울 앱을 실행 후
드로잉팁1. [사진 홍미옥]

드로잉팁1. [사진 홍미옥]

 
적당한 브러시를 선택 후 선을 그어본다. 상단 왼편의 첫 번째 아이콘을 클릭한 후 3D로 보기를 클릭하면
드로잉팁2. [사진 홍미옥]

드로잉팁2. [사진 홍미옥]

 
위와 같이 평면 그림이 입체적으로 변한다. 화면을 사방으로 움직이면 다양한 모습의 3D 입체화면이 보이며 소소한 재미를 준다.
드로잉팁3. [사진 홍미옥]

드로잉팁3. [사진 홍미옥]

 
홍미옥 스마트폰 그림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홍미옥 홍미옥 스마트폰 그림작가 필진

[홍미옥의 폰으로 그린 세상] 둘도 없는 친구인 스마트폰과 함께 세상 이야기를 그리는 중년 주부. 무언가를 새로 시작하기에 중년도 아직 늦지 않았음을 그림을 통해 알리고 싶다.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