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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자 흉기에 숨진 의사 마지막 글 "힘겹다, 하지만 이게 나의 일이다"

중앙일보 2019.01.02 11:21
SNS서 확산하고 있는 故 임세원 교수 추모 그림 [원작자 늘봄재활병원 문준 원장=연합뉴스]

SNS서 확산하고 있는 故 임세원 교수 추모 그림 [원작자 늘봄재활병원 문준 원장=연합뉴스]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희생된 고(故) 임세원 교수가 자신의 SNS에 남긴 마지막 글이 뒤늦게 알려져 가슴을 울리고 있다.
대한신경정신의학회는 2일 임 교수 사망 사건에 대한 애도성명서를 공개했다. 학회는 임 교수가 사망 보름 전 자신의 SNS에 올린 글을 인용했다.  
 
강북삼성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인 고인은 지난달 31일 오후 5시 44분께 진료보던 환자가 휘두른 흉기에 찔려 숨졌다. 사건 당시 임 교수는 진료실에 마련된 대피공간으로 피해 충분히 살 수 있는 상황이었다. 하지만 그는 바깥에 있는 간호사들을 대피시키려 뛰어나갔고, “빨리 대피하라”고 소리치며 다른 이들을 살리려 애쓰다 변을 당했다. 임 교수는 우울증ㆍ불안장애 전문가로 자살 예방 교육 프로그램을 개발하는데 천착해왔던 인물이다.  
 
임 교수가 마지막 남긴 글에는 환자에 대한 사랑이 담겼다. 임 교수는 환자들의 고통에 공감했다. 그는 “객관적 상황에 처해 있는 관찰자 입장에서는 그중에서도 정말 너무 너무 어  려운, 그 분의 삶의 경험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혹함이 느껴지는, 도저히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며 “그럴 때는 도대체 왜 이 분이 다른 의사들도 많은데 하필 내게 오셨는지 원망스러워지기도 한다”고 털어놨다.  
 
하지만 임 교수는 “‘이것이 나의 일이다’라고 스스로 되뇌이면서 그 분들과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 한다. 이렇게 유달리 기억에 남는 환자들은 퇴원하실때 내게 편지를 전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20년 동안 받은 편지들을 꼬박꼬박 모아 놓은 작은 상자가 어느 새 가득 찼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 분들은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시고 나또한 그 분들에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의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전수되어 더 많은 환자들의 삶을 돕게 될 것이다. 모두 부디 잘 지내시길 기원한다”고 썼다. 임 교수의 마지막 글은 “이번 주말엔 조금 더 큰, 좀 더 예쁜 상자를 사야겠다”라는 다짐으로 끝맺는다.
 
학회는 이 글을 전하며 “과연 예쁜 상자를 샀는지 모르겠다. 고인으로 인해 새로운 삶을 찾을 수도 있었던 여러 환자분들의 편지는 갈 곳을 잃었다”라며 애통한 마음을 표현했다.
 
임 교수의 유가족들은 학회를 통해 두가지 부탁을 남겼다.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어달라는 요청과 함께,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없이 언제든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사회를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유가족들은 “우리는 이 두가지가 고인의 유지라고 생각하며 선생님들께서 이를 위해 애써주실 것을 부탁한다”라고 밝혔다.
 
학회는 유가족의 뜻에 따라 병원에 안전한 진료환경을 만들어 다시는 임 교수와 같은 피해자가 없도록 ‘임세원법’ 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권준수 대한신경정신의학회 이사장은 “안전한 진료환경으로, 마음이 아픈 사람들이 편견과 차별 없이 언제든 쉽게 도움을 받을 수 있는 시스템을 만들어지도록 노력하겠다”라고 말했다.
 
이에스더 기자 etoile@joongang.co.kr
고(故) 임세원 교수가 생전에 남긴 마지막 글

얼마 전 응급실에서 본 환자들의 이야기를 글로 쓰신 선생님이 화제가 되었던 적이 있다.
긴박감과 피냄새의 생생함 그리고 참혹함이 주된 느낌이였으나 사실 참혹함이라면 정신과도 만만치 않다. 각자 다른 이유로 자신의 삶의 가장 힘겨운 밑바닥에 처한 사람들이 한가득 입원해 있는 곳이 정신과 입원실이다.
고통은 주관적 경험이기에 모두가 가장 힘든 상황이다.
하지만 보다 객관적 상황에 처해 있는 관찰자 입장에서는 그중에서도 정말 너무 너무 어 려운, 그 분의 삶의 경험을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참혹함이 느껴지는, 도저히 사실이라고 믿어지지 않을 정도의 정신적, 신체적 고통을 겪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럴 때는 도대체 왜 이 분이 다른 의사들도 많은데 하필 내게 오셨는지 원망스러워지기도 한다. 하지만 ‘이것이 나의 일이다’라고 스스로 되뇌이면서 그 분들과 힘겨운 치유의 여정을 함께 한다. 이렇게 유달리 기억에 남는 환자들은 퇴원하실때 내게 편지를 전하고 가는 경우가 많다. 그렇게 20년 동안 받은 편지들을 꼬박꼬박 모아 놓은 작은 상자가 어느 새 가득 찼다.
그 분들은 내게 다시 살아갈 수 있는 도움을 받았다고 고마워하시고 나또한 그 분들에 게서 삶을 다시 배운다. 그리고 그 경험은 나의 전공의 선생님들에게 전수되어 더 많은 환자들의 삶을 돕게 될 것이다. 모두 부디 잘 지내시길 기원한다.

이번 주말엔 조금 더 큰, 좀 더 예쁜 상자를 사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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