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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 관장하느라 쩔쩔맨 그 날 달려온 고마운 천사

중앙일보 2019.01.02 07:00
[더,오래] 송미옥의 살다보면(69)
내가 근무하는 작은 도서관 옆에 위치한 큰 요양병원. 가끔 주말이면 중년의 남자분들이 책을 보러 오시길래 안동은 양반 도시라 혼자 주말에 책을 보는 여유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사진 송미옥]

내가 근무하는 작은 도서관 옆에 위치한 큰 요양병원. 가끔 주말이면 중년의 남자분들이 책을 보러 오시길래 안동은 양반 도시라 혼자 주말에 책을 보는 여유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사진 송미옥]

 
내가 근무하는 작은 도서관 옆에 큰 요양병원이 있다. 가끔 주말이면 중년의 남자분들이 책을 보러 오시길래 안동은 양반 도시라 나이 드신 남자분들이 혼자서 주말에 책을 보는 여유를 부린다고 생각했다. 알고 보니 고택 근처에 있는 병원을 방문해 면회시간이 지나면 다음 면회시간을 기다리기 위한 시간을 도서관에서 보내는 거였다.
 
보호자가 중년이니 누워계신 부모들은 모두 팔순 구순이 다 되셨을 것이다. 큰 병에 효자 없다고 오랜 시간 병상에 계시다 보면 면회도 공식이 되고 대화까지 못 하시면 그 시간의 참담함은 말할 수 없다. 때론 손님들과 대화하다 보면 자식 된 도리로 못 보살피는 것도 죄인이 되고 방문 때 잠시라도 이전보다 못한 상태를 보면 응당 순리대로 가는 거지만 마음만 안타깝고 깝깝해져서 속상해하시는데 나도 대화 중에 내 어머님이 생각나 이런저런 이야기로 위로를 해드린다.
 
나의 시어머니도 요양원에 3년을 계셨다. 한방에 두 분이 계셨는데 어머님은 외상 환자셨고 한 분은 치매가 심하신 분이셨다. 내가 맏며느리이고 남편도 병중이라 못 모시는 죄책감에 일주일에 한 번씩 한 번도 안 거르고 다녔다. 약속된 날짜가 아닌 불시에 다녀서 그런가 늘 깨끗하게 잘 지내시는 것 같았다.
 
하루는 방문하니 원장이랑 요양사가 안절부절못하며 나를 맞이했다. 이유인즉 한방에 계시는 치매 어르신이 눈 깜짝할 새에 어머님 침대를 올라가서 콧줄을 잡아당겨 빼놓고 어머님의 손을 물어뜯어 상처를 입힌 사고를 수습하는 중이었다. 치매 어르신은 졸지에 옆방에 감금되고 어머님은 코 줄로 음식을 넣어 드시다가 갑자기 줄이 빠진 상태였지만 표정은 시원한 듯 보였다.
 
상처를 입힌 그 어르신이 무슨 잘못이 있겠는가. 내 부모도 못 모시는 비슷비슷한 환경인 주제에 아무것도 모르는 그 어르신에게 뭐라고 속상함을 말한들 알겠는가. 앞이 보이지 않는 시간의 늪에 빠진 사람처럼 퍼질러 앉아서 꺼이꺼이 소리 내어 울었다. 울음보따리가 터지니 꼭 어머니 때문이 아니라 이런저런 온갖 서러운 것들이 그 기회를 붙잡아 나온 것 같았다. 요양사도 원장도 같이 울어 주었다.
 
콧줄로 연명하던 어머니께 콧줄이 빠진 김에 입으로 먹여 보기로 하고 미음을 입으로 넣어 드려보니 다시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콧줄이 아주 힘드셨을 텐데 말씀을 못하시니 그냥 그러고 힘들게 연명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날을 계기로 2년이나 다시 목으로 음식물을 삼키시다가 돌아가셨다(사진은 내용과 연관없는 이미지컷). [사진 pixabay]

콧줄로 연명하던 어머니께 콧줄이 빠진 김에 입으로 먹여 보기로 하고 미음을 입으로 넣어 드려보니 다시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콧줄이 아주 힘드셨을 텐데 말씀을 못하시니 그냥 그러고 힘들게 연명하고 계셨던 것이다. 그날을 계기로 2년이나 다시 목으로 음식물을 삼키시다가 돌아가셨다(사진은 내용과 연관없는 이미지컷). [사진 pixabay]

 
죽음으로 가는 길은 얼마나 힘들고 험난한가. 콧줄로 연명하던 어머니께 그 어른의 실수로 줄이 빠진 김에 입으로 먹여 보기로 하고 미음을 입으로 넣어 드려보니 다시 목구멍으로 넘어갔다. 콧줄이 아주 힘드셨을 텐데 말씀을 못 하시니 그냥 그러고 힘들게 연명하고 계셨다. 그날을 계기로 2년이나 다시 목으로 음식물을 삼키시다가 돌아가셨다.
 
그곳에 어머님을 병간호하시는 당번 요양사 선생님이 계셨는데 지금은 복지사가 되어 계시고 내 인생의 멘토 같으신 분이라 늘 기도와 함께 기억하고 있다. 불시에 방문해도 언제나 그 모습 그대로 얼마나 잘하는지 천사 같았다. 어쩌면 그리 어르신들을 잘 모시냐는 물음에 남의 부모니까 할 수 있지 내 부모는 못 모신다며 겸손해했다.
 
언젠가 하루, 어머니의 피부암 치료차 대구 병원을 다녀오다가 가벼운 교통사고가 나서 다른 병원에 후송되었다. 며칠은 내가 병간호를 하기로 하고 어머님과 같이 병실에서 지냈는데 3일에 한 번씩 관장해야 했다. 요양사가 말하길 관장을 할 땐 내가 잘 못 하니 전화를 주면 당신이 와서 해주겠다고 했지만 그 한번을 설마 못하랴 싶어 곁눈질로 배운 데로 항문에 마사지하고 손을 넣어 아무리 해도 배변이 안 되었다.
 
와중에 무감각하신 어머니가 신음을 낼만큼 힘들어 하시는 것이다. 자정이 다 되어 요양사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걱정하지 말라며 금방 오겠다고 했다. 급하게 달려와서는 숨 쉴 틈도 없이 어머님을 옆으로 뉘시고는 비닐장갑을 끼더니 마치 기계 같은 동작으로 항문에 손을 넣어 덩어리를 꺼내셨다. 오래된 변이라 냄새도 얼마나 심하던지 옆에 서 있어도 구토가 막 났다.
 
그런데도 의식도 없는 어머니에게 시원하게 해드릴 테니 조금만 참으시라며 대화하듯 두런두런 말씀하셨다. 나는 그날의 충격과 감동으로 해마다 쓰는 유언장에 우리가 죽고 난 후 많지도 않은 보험금 중에 몇 프로는 그 선생님이 근무하는 요양원을 찾아 꼭 기부하라고 적어 놓았을 만큼 잊지 못할 시간이었다.
 
너무 오래 살다 보니 노노(老老) 케어를 해야 하는 세상이고 한쪽으로는 어른이 돈으로 계산되는 세상이라 이상한 요양병원도 많지만 좋은 선생님들의 봉사하는 마음도 잊지 않고 기억했으면 좋겠다.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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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미옥 송미옥 작은도서관 관리실장 필진

[송미옥의 살다보면] 요양보호사 일을 하다 평범한 할머니로 지낸다. 지식은 책이나 그것을 갖춘 이에게서 배우는 것이지만, 인생살이 지혜를 배우는 건 누구든 상관없다는 지론을 편다. 경험에서 터득한 인생을 함께 나누고자 가슴 가득한 사랑·한·기쁨·즐거움·슬픔의 감정을 풀어내는 이야기를 쓴다. 과거는 억만금을 줘도 바꿀 수 없지만, 미래는 바꿀 수 있다는 말처럼 이웃과 함께 남은 인생을 멋지게 꾸며 살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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