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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시장실패보다 무서운 정부실패

중앙일보 2019.01.02 00:14 종합 27면 지면보기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독과점·외부효과·공공재와 정보 비대칭 같은 현상은 오랜 기간 신고전파 주류경제학의 성가신 주제였다. ‘보이지 않는 손’ 의 숭고함을 자유경쟁 시장과 가격조절 기능으로 이론화하고 이를 정교한 수리모형으로 승화한 미시경제학 교과서에서 이들은 주변적인 시장실패 사례로 치부됐다. 그러던 것이 2008년 미국발 금융위기가 지구촌을 휩쓸고 신자유주의가 뭇매를 맞으면서 이들 개념이 학계와 정책의 중심부로 진격했다. 적극적 시장개입론자들은 시장실패를 대의명분으로 삼았다.
 

시장만능주의는 반성하는데 J노믹스는 “올바른 길” 고집
집권 3년차, 독선·미숙 깨닫고 실사구시 정책 변신 꾀해야

J노믹스 20개월은 정부실패가 시장실패보다 더 위험할 수 있다는 공포감을 일깨웠다. 한 민간경제연구소의 정부규제 사례집을 읽다가 접한 ‘강한 정부의 역설’(존 아이켄베리) 개념, 무릎을 탁 쳤다.
 
“강한 정부는 시장의 온갖 문제를 정부가 책임지고 해결한다고 믿는다.(…) 문제를 시장 결정에 맡겨두길 꺼린다.(…) 필연적으로 과거 정책공약에 얽매이게 되니 겉으론 강해 보여도 속으로는 특정 이익집단에 포획된 경우가 적잖다.” 연상되는 것이 한둘이 아니다. 소득주도 성장, 탈원전, 공공일자리 81만 개, 최저임금 1만원, 주 52시간 근로, 경제민주화, 이익 공유제, 적폐청산, 민노총, 100% 정규직 전환….  
 
시장실패를 바로 잡으려다 빚어지는 정부실패의 원인은 시장실패만큼 다양하다. 정권의 능력부족, 지지층 눈치보기와 정치적 타협, 이익집단의 반발 등, 아이켄베리 교수는 조언을 잊지 않았다. “잘못된 개입은 철회하고 시장에 맡기는 것이야말로 강한 정부 아니면 하기 힘든 용단이다.”
 
정책실패는 예산 낭비와 비효율 이외에 편 가르기와 계층 갈등을 낳는다. 선의를 앞세운 공약과 정책이 진득한 설득·설명이나 면밀한 준비 없이 쏟아지면서 소외계층의 응축된 욕구를 한꺼번에 자극한 탓이다. 서울 광화문은 주말이면 촛불과 태극기의 싸움터, 노동자 단체의 시위 무대가 되어버렸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은 약자계층인 영세상인과 비정규직끼리 으르렁거리게 하였다. “서민 울리는 서민 정권” 불만의 현장이다.
 
사회갈등 연구자인 박준 박사(한국행정연구원)는 “불통·불복 문화로 인한 사회적 갈등비용이 200조원가량 된다”고 추정한다. 우리나라 작년 예산의 절반, 그리고 삼성전자 작년 매출에 버금간다. 사회갈등지수를 내 보면 수년 전 국가부도 직전까지 갔다 온 그리스를 능가한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포함한 주요 37개국 중 최상위권(여섯 번째)이다. ‘갈등 공화국’이 따로 없다. 밑에서 세 번째인 스웨덴 수준으로 갈등지수를 낮추면 1인당 국민소득이 13%가량 (약 3000달러) 늘어난다는 분석도 지난달 나왔다.
 
마라톤으로 치면 올해는 문재인 대통령 5년 임기의 반환점이다. 시간이 너무 없다. 적폐청산식 도덕 정치, 선의로 포장된 아마추어 정책을 일대 쇄신하지 않으면 일자리 절벽, 성장 절벽, 인구 절벽 앞에 주저앉을 것이다. 성공한 대통령으로 남을지, 또 다른 적폐 정권이 될지 분수령이다. ‘아니면 말고’식의 설익은 정책은 신물 나게 겪었다. 최저임금 정책만 해도 1년 전 16.4%나 올려놓고 그 충격을 덜겠다고 지난달 26일까지 총 13번의 크고 작은 보완책을 남발했다. 이 정도 누더기 땜질이 필요했다면 천천히 가든지, 아예 하지 말았어야 했다. 주 52시간 근로시간 단축도 마찬가지다. 반년 처벌유예 후 석 달을 또 연장했다. 이렇게 찔끔찔끔 미룰 수밖에 없다면 왜 서둘러 시행했나.
 
이기적·독점적으로 흐르기 쉬운 시장, 경직적·독선적 속성이 강한 정부, 현 정권은 시장과의 무모한 전쟁을 삼가고 시장과 손잡아야 한다. 『자본주의 4.0』(아나톨 칼레츠키)의 제3의 길을 조언하는 전문가가 늘었다. 경제위기는 시장실패·정부실패 어느 한쪽 탓이 아니라 시장과 정부의 부조화가 주된 원인이라는 이야기다.  
 
규제 완화와 재계 기 살려주기가 재벌개혁이나 경제민주화의 후퇴가 아니다. 최저임금 인상과 근로시간 단축의 속도를 조절하는 것 또한 J노믹스의 포용적 성장과 배치되지 않는다는 각성이 먼저다.
 
홍승일 중앙일보디자인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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