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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기의 시시각각] 조국이 말한 삼인성호 그리고 비핵화

중앙일보 2019.01.02 00:08 종합 30면 지면보기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지난해 말 북한을 방문했던 제3국 중견 언론인이 북한 외무성 고위 간부 A와 술자리를 했다. 취기가 오르자 A는 트럼프 이야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정말 탄핵 안 당하겠느냐?” 기대보다는 우려 위주였다. 반면 북한의 2019년에 대해선 자신감이 넘쳤다. 근거가 뭐냐고 묻자 A의 답은 명료했다. “그걸 몰라서 묻습네까. 우리에겐 남조선이 있잖소. 다른 나라 지원 따위 필요 없소이다.”
 

남·북·미 세 지도자 간 ‘삼인성호 비핵화’
2019년 우리 모두 눈 부릅뜨고 막아내야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의 1일 신년사가 그걸 보여준다. 30분 중 7분이나 남북관계에 할애했다. 외부세력의 간섭을 불허하겠다고 했다. 개성공단과 금강산 관광 재개 의사도 밝혔다. 교묘한 압박이다. 북·미 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졌어도 남한만 잘 활용하고 ‘북한 비핵화’와 ‘한반도 비핵화’를 잘 교란해 나가면 북한에 그다지 나쁠 게 없다는 김정은 생각이 고스란히 배어있다. 물론 청와대는 이를 반겼다. 어느새 ‘평양’이 흐름의 중심이 되고 말았다. 2019년 남북관계 기상도를 1월 1일에 다 본 느낌이다.
 
그렇다면 2019년 북·미 관계는 어떨까. 최선의 시나리오와 최악의 시나리오가 있다. 2차 북·미 정상회담(1~3월)→핵 신고 및 검증·사찰 합의→미국의 대북 제재 해제→ 노벨평화상 공동수상(10월) 정도가 최선일 게다. 반면 최악은 2차 북·미 정상회담 무산→협상 무용론 확산→싱가포르 합의 파기→군사적 충돌이다. 하지만 김정은의 “새로운 길을 모색하지 않을 수 없다”는 신년사, 그리고 워싱턴의 기류를 볼 때 가장 현실적 시나리오는 ‘대표 혹은 실무급 회담(연초)→디테일 놓고 기 싸움→미 대선전 돌입하며 장기전 혹은 유야무야(연말)→핵보유국 북한과 군축 협상으로 성격 전환’이 될 공산이 크다.
 
말이 장기전이지 사실상 트럼프는 북한 비핵화를 유예(포기)하고 ‘핵·미사일 실험 중단’을 업적 삼아 재선(2020년)에 나서는 ‘관리 모드’로의 돌입이다. 북한엔 소형·경량화된 핵무기의 대량 생산을 통해 ‘2020년 핵탄두 100개 국가’로 발돋움하는 옵션이다. 두 지도자 모두 밑질 게 없다고 보는 듯하다. 문재인 정부도 “어쨌든 평화를 얻었다”고 반길지 모른다.
 
연말 국회에 출석한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은 민간인 사찰 의혹에 대해 “삼인성호(三人成虎)와 같다”고 했다. 세 사람이 입을 맞추면 없는 호랑이도 만들어낸다는 이야기인데, 이는 사실 우리 앞에 놓인 북한 비핵화에 해당하는 말이다. 당초 목표인 ‘북한 비핵화’는 온데간데없지만, 세 사람은 비핵화를 얻은 것처럼 포장할 수 있다는 것이다.
 
흔히 오랜 전쟁을 치르다 보면 당사국의 국민조차 “우리가 지금 왜 전쟁을 하고 있지?”라고 되묻는다. 트로이 전쟁이 그랬고 영국과 프랑스의 100년 전쟁이 그랬다. 염증을 느끼고 본질은 잊은 채 현실과 타협하고 만다. 하지만 북한 비핵화 협상은 이와는 엄연히 달라야 한다. 국제법을 위반한 북한의 핵 도발에 대한 책임을 묻고 그걸 뜯어고치는 작업이다. 과정상 협상 전술에 변화를 줄 순 있겠지만 ‘잘못한 북한’과 동렬에서 시시비비를 논해선 안 된다. “평화를 얻는다면 북한의 일부 핵은 용납해도 되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우리 일부에 퍼지고 있어 하는 얘기다.
 
두려운 건 미국도 북한도 아니라 우리 내부다. 2019년 새해가 트럼프-김정은-문재인 3국 지도자에 의한 ‘삼인성호’가 되지 않도록 지켜보고 감시해야 한다. 후세에 ‘핵 없는 한반도’를 물려줘야 할 우리의 의무이며 숙명이다. 2019년은 비핵화란 호랑이를 3국 지도자가 잡아내는, ‘삼인획호(三人獲虎)’의 해가 돼야만 한다. 반드시. 
 
김현기 워싱턴 총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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