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남기고 싶은 이야기] 1989년 IAEA 총회의장 놓고 경합…북한 방해공작 뚫고 당선

중앙일보 2019.01.01 01:00 종합 15면 지면보기
1988년 한국과학재단 이사장이 되면서 추진한 우수연구센터 사업은 예산 문제가 극적으로 해결되면서 순항했다. 어느 정도 정신적 여유가 생긴 덕분에 이듬해인 89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이사회·총회 참석을 위해 오스트리아 빈으로 향할 수 있었다. 나는 최광수(84) 당시 외무부 장관의 요청으로 IAEA 한국 몫 이사를 맡았다. 최 장관은 외교관 출신으로 난세였던 최규하(1919~2006년, 재임 79~80년) 대통령 시절 비서실장을 지냈다. 내게 IAEA 이사를 맡기면서 했던 이야기가 아직도 기억난다. 

정근모, 과학기술이 밥이다 - 제131화(7615)
<68>국제 원자력 전문가로 자리매김
이사 맡긴 최광수 외교부 장관
전문가 존중, 기술 안건 자율권
원자력 안전헌장 제정 등 활동
의장 출마하자 북한이 방해해도
전문가로서 활동 동독·소련 인정
도움 준 사무국 직원, 막후 도움
결국 만장일치로 89년 의장 당선

1989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 의장에 당선한 직후 한스 블릭스 사무총장(왼쪽)과 나란히 자리한 정근모 박사.[사진 정근모]]

1989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 의장에 당선한 직후 한스 블릭스 사무총장(왼쪽)과 나란히 자리한 정근모 박사.[사진 정근모]]

“정 박사, 당신은 원자력 전문가이지 않습니까. IAEA 이사회에 올라오는 안건에는 정치적 안건도, 기술적 안건도 있을 겁니다. 외무부 대사를 이사로 보내면 기술적 안건은 내용을 몰라 설득력 있게 의견을 말하기 힘들 것이고, 정치적 안건은 한국이 유엔 회원국이 아니라 발언해도 영향력을 행사하기 어려울 것입니다. 그러니 정 박사는 IAEA 이사로서 정치적 안건에는 본국 지시를 따르더라도 기술적 안건이 올라오면 소신 있게 의견을 피력해 주시오.”
이런 격려에 더욱 자신감을 얻었지만 사실 나는 ‘태평양 연안원자력 회의(PBNC)’나 ‘국제 원자력 안전 자문위원회(INSAG)’를 통해 국제원자력 기술 안건을 충분히 파악하고 있었다. 당시 국제 원자력계는 미국 스리마일 아일랜드(TMI)와 소련 체르노빌 사고 뒤 IAEA에 적극적인 원자력 안전 활동을 요구했다. 그 결과 IAEA는 ‘핵무기의 비확산에 관한 조약(NPT)’을 넘어 국제원자력 안전규제에서도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나는 스웨덴 출신의 한스 블릭스(91, 81~97년 재임)  IAEA 사무총장과 실무자들을 수시로 만나 원자력 안전 분야와 관련해 도움을 줬다. IAEA는 회원국이 지킬 ‘원자력 안전 헌장’을 제정하고 안전문화 관련 제언도 내놨다. 이런 작업을 진작 했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아쉬움이 컸다. 
 최광수 외무부 장관이 1986년 유엔본부에서 연설하고 있다. [중앙포토]

최광수 외무부 장관이 1986년 유엔본부에서 연설하고 있다. [중앙포토]

IAEA는 총회 의장국과 이사회 의장국이 각자 맡은 의결 활동을 하고 사무총장이 실무를 총괄하는 구조다. 89년 총회의장은 동아시아 지역에서 맡을 순서였다. 처음엔 중국이 유력했지만, 당시 천안문 사태가 터지면서 맡을 형편이 못 됐다. 일본은 총회가 아닌 이사회의 의장을 원했다. 

결국 한국이 총회 의장국을 맡을 가능성이 커지면서 내가 출마하게 됐다. 그런데 북한이 돌연 반대하고 나섰다. 내 표를 분산해 당선을 막으려고 자체 후보를 내기까지 했다. 하지만 투표 당일 사회주의권인 동독의 대표가 나를 지지하는 연설을 했고, 소련마저 내 쪽으로 기울자 결국 북한은 후보를 사퇴하고 물러났다. 총회는 만장일치로 나를 의장으로 선출했다.
1990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에서 연설하는 정근모 총희 의장[사진 정근모]]

1990년 국제원자력기구(IAEA) 총회에서 연설하는 정근모 총희 의장[사진 정근모]]

당시 사무국 직원들은 나를 지지하며 막후에서 도움을 줬다. 내가 원자력 안전 기술 관련 업무를 적극적으로 도와준 데 대해 보답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최 장관의 충고대로 원자력 전문가로서 기술적 안건에 소신 있게 발언하고 행동한 결과이기도 했다. 
채인택 국제전문기자, 황수연 기자 ciimccp@joongang.co.kr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