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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소문 포럼] 대권론에 휩싸인 유시민

중앙일보 2019.01.01 00:20 종합 23면 지면보기
신용호 정치국제에디터

신용호 정치국제에디터

2005년 가을, 점심때였다. 국회를 출입하던 당시 기자 몇몇과 막걸리를 곁들여 김치찌개를 먹고 있었다. 식당은 국회 내 건축 공사장 옆 ‘함바식당’이었다. 식당 한쪽에 유시민 의원이 누군가와 앉아 있었다. 자연스레 인사를 나눴고 자리를 함께했다. 그는 음식을 나누며 일행들과 스스럼없이 어울렸다. 밥자리의 유시민은 입담이 좋아서 모두를 끌어당겼다. 상당히 유쾌했던 자리로 기억된다. 밥값도 그가 냈다.
 

방송서 호감도 높이고 유튜브에도 진출
정치 안 하겠다 했지만 기회 오면 어떡할까

그 뒤 식사를 또 한 번 했다. 그때 동석했던 지인의 말이 인상적이었다. 그는 “정말 아는 게 많고 만나본 정치인 중 상황에 맞는 단어를 가장 적확하게 구사하는 사람”이라고 했다. 유시민은 어려서부터 그랬는지 대학 동기인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도 저서 『나의 문화편력기』에서 “한 달밖에 안 된 신입생이라는 게 믿어지지 않았다. 그는 아는 것도 많았고 말도 기가 막히게 잘했다”고 했다.
 
새삼 오래전 두 끼의 점심이 떠오른 건 그가 방송에서 나온 모습을 보면서였다. 그때 봤던 화려한 언변과 스스럼없는 스킨십 자질이 방송에서 그대로였다. 결국 그게 대중적 호감도를 높였고 방송인 유시민을 만들었다.
 
하지만 정치를 했던 10년 동안 독선적인 성격 탓에 그런 장점을 대중에겐 보여주진 못했다. ‘자신이 옳다’는 생각이 강해 곳곳에서 갈등했고 당 내부에서도 환영을 못 받았다. 2005년 같은 열린우리당 의원이었던 김영춘 해수부 장관은 “저렇게 옳은 소리를 저토록 싸가지 없이 말하는 재주는 어디서 배웠을까”라고 해 화제가 됐었다. 조국 청와대 민정수석도 2010년 자신의 책에서 “마키아벨리적인 재능이 있다”면서도 “재승박덕 이미지를 벗어나야 한다”고 할 정도였다.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일러스트=김회룡 aseokim@joongang.co.kr]

그런 그가 최근 대선 출마설에 휩싸였다. 노무현재단 이사장을 맡고 유튜브까지 하겠다고 나서면서다. 정두언 전 의원은 “지금 여권에서 가장 유력한 대권주자는 유시민”이라고 한다. 박지원 민주평화당 의원도 “(대선 출마를) 본인은 안 한다고 하는데 안 한다고 해도 하더라”고 가세했다. 그는 여전히 절대 정치는 안 하겠다고 한다. 사실 이사장직도 맡을 생각이 없었다. 실제 이 자리는 충분한 자격을 갖춘 한 여권 원로가 맡기를 희망했다고 한다. 하지만 전임 이사장인 이해찬 민주당 대표가 고심 끝에 유시민을 택했다. 한 여권 인사는 “이 대표로서는 유시민 카드가 여러모로 유용하다는 생각했을 것”이라며 “결국 다음 대선도 염두에 둔 카드가 아니겠냐”고 말했다.
 
스스로 안 하겠다는데 출마까지 가능할까 싶다. 실제 출마가 어려울 것이라고 얘기하는 사람이 없지 않다. 민주당의 한 중진은 “팟캐스트를 한다는데 그건 여권이 가짜뉴스에 제대로 대응을 못 해 열 받아 나선 거지 정치를 하겠다는 뜻은 아니다”며 “문재인 대통령처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면 나올 수 있다는데 그것도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실제 ‘거역할 수 없는 상황’을 문 대통령과 경우와 비교하는 건 무리다. 문 대통령은 친노 그룹에서 유일한 대안이었다. 대중성을 바탕으로 당내 세력도 아우를 수 있는 인물로 선택됐다. 나오지 않았다면 “자신만 생각한다”는 소릴 들을 분위기도 있었다. 하지만 당내 친문의원들 중 “유시민이 아니면 안 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는 아직 없다. 당내 세력도 없다. 이 중진은 “유시민을 내세우기보다 차라리 김경수 같은 다음 세대로 가지 않겠나. 굳이 안 하겠다는 사람을 세울 정도로 당이 궁핍하지 않다”고 했다.
 
그런 생각만 있는 건 아니다. 시대정신이 유시민으로 모이면 가능한 구조라는 시각이다. 안희정 등 유력한 주자들이 상처를 입으면서 후보군이 줄어든 것도 현실이다. 팬덤을 가진 대중적 인기도 무시할 수 없는 무기다. 한 초선 의원은 “우리 당은 친문이 다수파고 유시민도 친문이다. 거기다 극성팬들도 있다. 이 힘이 결집하면 의미 있는 후보가 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최근 ‘작가 유시민’이 다시 여권의 대권 후보로 거론되기까지 큰 역할을 한 건 방송이다. 화려한 입담과 온화한 이미지로 대중에게 다가가 호감도가 높아졌기 때문이다. 이 대목에서 궁금한 점이 하나 있다. ‘싸가지 없다’는 소릴 듣던 ‘정치인 유시민’이 방송에서처럼 실제 바뀐 건지 아니면 TV에만 그렇게 비친 건 지다. 만약 정치권에 들어온다면 정치인 시절 때의 독단적 유시민 대신 방송에서 보여준 장점을 제대로 구현해 낼 수 있을까. 그게 아니라면 다시 정치권으로 오더라도 만만치 않을 거다. 실제 현실 정치와 방송은 판이한 동네라서 말이다. 정말 그가 방송에서처럼 변했다면 정치권에서 강한 힘을 발휘할 수 있을 것이란 생각이다. 그건 과거의 유시민이 아니라 ‘업그레이드 버전 유시민’이라서다. 하지만 사람은 잘 안 변한다는데…, 그래도 새해를 맞으며 그랬으리라 하는 기대를 가져본다.
 
신용호 정치국제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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