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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훈 칼럼] 경제권력은 ‘현장’과 ‘시장’으로 분산하라

중앙일보 2019.01.01 00:06 종합 27면 지면보기
최훈 논설주간

최훈 논설주간

“어지러워진 시장이 그 양반을 신뢰한다니까…. 내키지는 않지만요.” 노무현 대통령이 2004년 대표적 시장경제론자였던 이헌재를 경제부총리로 앉히며 했던 얘기다. ‘일자리 정부’를 내세웠지만 집권 첫해 일자리 3만 개가, 성장률은 반토막 아래로 줄어든 늪 속에서였다. 노동유연성과 임금격차 해소라는 네델란드식 복지모델을 외쳤지만 믿었던 민주노총은 “우리를 배신했다”며 눈앞의 이문이 큰 파업으로 날을 지새웠다.
 

이념 굴레 … 현정부 DNA로는
복잡다기 경제난 해결이 난망
의회의 추천이나 동의 받은
친현장·친시장 책임 총리가
새 경제틀 강력 추진 검토를

그 15년 뒤. 어느 정권이든 가장 힘든 집권 3년 차 새해를 문재인 정부도 맞고 있다. ‘최저임금 인상’과 ‘주52시간 근무제’로 상징된 진보 정책의 디테일 논란 속에 속절없이 시간은 흐르고 있다. 시급한 문제는 권력의 리더십과 국가의 의사결정 구조, 즉 거버넌스(Governance)의 재정립이다.
 
1970~80년대 유신과 군부정권에 저항하던 현 집권층의 DNA에 경제는 너무 어려운 고차방정식이다. 능력을 벗어난 동정, 이념적 순결성에 대한 집착, 역사는 우리편이라는 우월감, 소시민적 덕성과의 괴리 등…. 복잡한 이데올로기로 가득찬 마차(馬車)가 경제를 견인해야 할 말(馬)앞에 떡하니 서 있는 형국이다. 약자들에 대한 선의였다 해도 그들은 지갑과 영수증의 무서움을 몰랐다. 여물을 늘려주기 보다는 젖만을 더 짜내 나눠주려다 그 젖소들이 말라죽고 있다. ‘생산성’과 ‘부가가치’의 효율을 중시하는 세계적 경쟁에 민감해야 하는 건 오히려 진보다. ‘보이지 않는 손(invisible hand)’이란 시장의 논리는 강자의 ‘보이지 않는 철권(invisible fist)’ 쯤으로만 백안시되고 있다. 수십 년 전 감각에 머문 안방의 ‘꼰대 진보’. 이게 지금 위기의 본질이다.
 
시급히 경제권력을 나눠줘야 한다. 시장과 국제적 변화를 잘 아는 이면 좋겠다. 돈벌어 월급을 줘 봤거나 세금계산서라도 떼봤던 현장 출신이면 더 좋겠다. 정부·의회의 공적운용 구조에 대한 이해까지 있다면 가장 좋겠다. 벌진 못하고 나눠주기 골몰하는 권력이 국부(國富)를 어찌 늘리는가. 친(親)시장·친(親)현장으로 경제권력을 과감히 위임해야 할 이유다.
 
최훈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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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형태로 역대 대통령들은 경제권력을 위임해 왔다. 부총리(김학렬,남덕우)나 비서실장(김정렴)에게 나눠준 박정희의 운용도, 경제수석(김재익, 사공일)에게 위임한 전두환의 예도 있었다. 달라진 건 우리 경제가 너무 크고 복잡해져 직업 관료형으론 어렵다는 점이다. 미국 역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장,재무·상무장관 등은 월가 출신, 금융CEO 등 현장에서 내공다진 마에스트로를 포진시켜 왔다.
 
현 정부의 뿌리인 노무현 정부 시절 4명의 경제부총리(김진표, 이헌재, 한덕수, 권오규)는 모두 보수적 관료 출신이었다. 한·미 FTA, 법인세 인하 등 노 전대통령은 이들을 통해 성장과 분배의 균형을 맞추려 했다. “그때가 기업하긴 더 나았다”고도 한다. 그러나 이들 모두 386 측근 등 여권 실세와 강한 야당의 견제 속 절망이 일상사였다. 시장은 이미 관료의 판단 한계를 넘어선 지 오래다. 눈덩이처럼 불어나는 복지와 의료, 보육 현장의 예산과 미래 비전을 조화시켜 끌어가려면 강단있는 창의적 리더십이 필수다. 집단감상에 빠진 청와대의 이념과 여소야대 의회 눈치만 살피는 ‘도다리 눈’ 관료로는 경제가 누더기 땜질로 얼룩질 뿐이다. 모두의 계륵(鷄肋)이 돼버린 최저임금제처럼….
 
시간이 없다. 정책이 아이디어에서 입법을 거쳐 추진되려면 평균 35개월이 걸린다. 혁신성장이라는 중장기 비전을 지금 씨뿌려도 이 정권 말에야 싹틀 뿐이다. 더 험한 고비는 의회다. 연동형 비례대표제가 성사되면 영구적 ‘여소야대 공화국’일 가능성이 크다. 협치(協治)와 연정(聯政)은 이제 선택 아닌 필수다.
 
현장과 시장을 아는 강력한 경제 책임총리를 검토해 볼 때다. 마침 초대 내각도 얼추 만 2년을 맞는 새해다. 의회의 총리 추천이나 동의가 대전제다. 야당이 추천해 준다면 최고의 구도일 터다. 의회와 교감 속에 그가 경제를 끌어가고, 대통령은 각료 인선까지 믿고 맡기는 그림이다. 정의당 몫 노동장관으로 민주노총과 ‘대협약’을 타진해 볼 여지도 있다. 남북 경협이 주가 될 통일장관에 기업인 출신은 왜 곤란한가. 뻔한 국무회의 말고 총리가 장관과 성과계약서를 쓰고, 점검해 가는 민간형 운영은 왜 불가능하겠나.
 
현장과 시장을 끌어오려면 낮춰줘야 할 문턱도 여럿이다. 현재의 ‘신상털기’ 인사청문회와 공직자 주식 백지신탁 등은 어느 쪽이 집권하든 개선과 보완의 대상이다. ‘586세대’가 된 여권 핵심들의 열린 자세가 가장 긴요하다. “대통령 직선 쟁취”의 뿌듯한 자존심에만 머물러선 권력을 나눠쓸 수 없다. 나눌수록 커지는 게 권력이고, 나누지 못한다면 이 난국의 책임은 누가 감당하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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