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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을 때까지 못잊는다는 '시카고 향토주' 어떤 맛일까

중앙일보 2018.12.31 15:00
[더,오래] 김성희의 천일서화(17)
18세기 영국의 문필가 새뮤얼 존슨은 "술은 지금까지 인간이 궁리해낸 것 중에서 가장 큰 행복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사진 pixabay]

18세기 영국의 문필가 새뮤얼 존슨은 "술은 지금까지 인간이 궁리해낸 것 중에서 가장 큰 행복을 만들어냈다."고 말했다. [사진 pixabay]

 
“술은 지금까지 인간이 궁리해낸 것 중에서 가장 큰 행복을 만들어냈다.”

이건 18세기 영국의 유명한 문필가 새뮤얼 존슨이 한 말이란다. 대다수 사람이 이에 동의할 듯하다. 특히 사회생활의 윤활유라고 믿는 이 땅의 허다한 직장인들이 공감할 만한 지적이다. 하기야 술을 노래하고, 찬미하고, 아니면 술로 인해 빚어진 사건, 희로애락을 다룬 문학, 예술 작품을 꼽자면 한이 없을 테니 상당히 설득력 있다.
 
하지만 음주운전을 엄벌하기 위한 ‘윤창호법’이 나올 만큼, 술 때문에 일어나는 사건 사고가 많은 것 또한 사실이다. 인류사를 뒤져보면 개인적인 패가망신을 지나 나라를 그야말로 술로 말아 먹은 사례도 있지 싶다. 주변에서 보면 젊었을 적에 말술을 마다치 않던 친구들이 환갑을 지나서는 대부분 고혈압이다, 당뇨다, 지방간이다 해서 골골하는 걸 보면 술이 반드시 행복을 약속하는 것만은 아니다.
 
그러니 새해 첫 칼럼으로 술에 관한 책을 소개하자니 살짝 면목 없긴 하다. 하지만 술은 이제 우리 생활과 뗄 수 없는 음료 아닌가. 더구나 소주 두 잔이면 치사량이고, 수영이며 운전 테니스 등을 배울 때 우선 관련 책부터 들고 나섰던 필자가 새해 벽두에 도발적 계획-글로라도 매주 술 한 종씩 맛보는-을 꿈꿔보는 것이 큰 일탈은 아니지 않은가. 금연이니 외국어 마스터니 하는 새해 계획이야 숱하게 세웠다가 얼마 안 가 좌절을 맛본 형편에, 더는 그런 건전한 계획을 꿈꿀 여유가 없는 마당에.
 
『애주가의 대모험』 제프 시올레티 지음, 더숲. 지은이는 스스로를 '음주 모험가'라고 칭했다.

『애주가의 대모험』 제프 시올레티 지음, 더숲. 지은이는 스스로를 '음주 모험가'라고 칭했다.

 
문제의 책은 『애주가의 대모험』(제프 시올레티 지음, 더숲)이다. 지은이는 세계의 주류를 소개하는 웹사이트를 설립하고, 주류 전문잡지에 기고하는 알코올 전문작가. 여기 더해 맥주를 주제로 한 장편 코미디 영화의 각본, 제작, 연출을 맡기까지 한 자칭 ‘음주 모험가’이다.
 
사실 술을 소개하거나 술에 얽힌 일화, 문화를 소개한 책은 이미 여럿 나왔다. 한데 이 책은 1년 52주에 맞춰 기본 술 52종의 유래, 맛, 음주법 등을 술이란 주제에 충실하게 소개한다는 점에서 제목 그대로 애주가를 위한 귀하고 맛깔스러운 안줏거리라 할 수 있다.
 
말로트란 술이 있다. 미국 중서부 지역에 정착한 스웨덴 이민자들이 소개했다는데 스웨덴 증류주인 베스크에 웜우드를 첨가한 술이라는데 국내에서 이를 마셔본 이가 드물 것이다. 시카고의 향토 술 비슷한 것으로 “아름답고 활기차지만 가끔은 위험하고 바람 많고 쓰라린 경험을 안겨주는” 시카고의 모든 것이 담긴 일종의 향토주라니 말이다.
 
문제는 맛인데 지은이는 “순수 에탄올을 채워 넣은 자목을 쪽쪽 빨아먹는 것 같은 맛”이란다. “막 스물한 살이 됐다며 생일축하주로 공짜 술을 달라는 손님들에게 옜다 하고 주는 술” “처음 마시고 차분한 표정으로 ‘음, 흥미롭군’이라 반응한 사람은 역사상 단 한 명도 없을 것”이라면 말로트 맛이 상상이 될까.
 
지은이는 “심호흡 하시고(Bitter As Fuck)”란 뜻의 말로트 칵테일의 제법과 이를 마실 수 있는 시카고의 바를 소개하니 음주 모험가라면 한 번 도전해보길. 얼마나 쓴지 마시고 입에 남은 뒷맛이 죽을 때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 같다니 말이다.
 
말로트(Malort). 시카고의 향토 술 비슷한 것으로 "아름답고 활기차지만 가끔은 위험하고 바람 많고 쓰라린 경험을 안겨주는" 시카고의 모든 것이 담겼다고 한다. [사진 flickr(저작자 star5112)]

말로트(Malort). 시카고의 향토 술 비슷한 것으로 "아름답고 활기차지만 가끔은 위험하고 바람 많고 쓰라린 경험을 안겨주는" 시카고의 모든 것이 담겼다고 한다. [사진 flickr(저작자 star5112)]

 
미국에서 매년 6월 5일은 전국 밀주의 날(National Moonshine Day)이란다. 20세기 초 금주법 시대에 판치던 밀주가 합법화된 것을 기념하는 것인데 알고 보니 밀주란 것은 우리 식으로는 가양주(家釀酒) 정도다.
 
이라크전에 참전했던 해병대원이 예전 방식 그대로 옥수수, 설탕, 물만 사용해 만든 것을 밀주라 하는 식이다. 단 우리네가 가양주라 하면 약주가 대부분이나 미국 밀주는 숙성하지 않은 위스키라 보면 될 듯하다. 역시 책에는 ‘합법적 밀주’ 5종을 소개해 술꾼들의 도전 의식을 유발한다.
 
당연히 한국의 소주 이야기도 나온다. ‘오이 소주’며 ‘오십세주’에 연장자가 잔을 채워주면 두 손으로 받아야 하는 등 한국식 주도(酒道)까지 실린 걸 보면 지은이의 주력(酒歷)은 감탄할 만하다. 그에 따르면 세계 증류주 중 가장 많이 팔린 브랜드가 진로 소주라고.
 
중국에선 술을 백약지장 백독지왕(百藥之長 百毒之王)이라 했다. 마시기에 따라 약이 될 수도, 독이 되기도 한다는 뜻일 게다. 새해엔 이 책을 나침반 삼아 혹은 안주 삼아 술이 약이 되는 ‘모험’도 해볼까나.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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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성희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필진

[김성희의 천일서화] 책생책사(冊生冊死). 책을 읽고 기자를 꿈꿨고, 출판팀장으로 기자 생활을 마무리했다.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핵심은 ‘재미’였다. 공연히 무게 잡는 책은 싫기도 하고 읽어낼 깜냥도 못 되었으니.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책’ 이야기 또는 재미있는 ‘책 이야기’를 쓰려 한다. 실타래가 풀려나가는 듯한 아라비안나이트식 책 이야기를 꿈꾸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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