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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싸도 '착한 가격'···1만3000원 짬뽕 한 그릇의 비밀

중앙일보 2018.12.31 11:00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10)
좀 이상하게 들릴지 모르겠지만 전부터 3만 원짜리 짜장면을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있었다. 호텔처럼 인건비와 운영관리비에 의해 값이 비싸진 짜장면이 아니라 그만큼의 재료, 그러니까 송이버섯이나 해삼, 전복도 넣고 캐비어도 조금은 넣어 개발한 귀족적인 짜장면 말이다. 나는 최하 5만~6만원인 스테이크보다 짜장면을 훨씬 더 좋아하니까.
 
그런데 지난여름에 비슷하게나마 경험해봤다. 집에서 멀지 않은 곳에, 인터넷에 꽤 소문은 났지만 위치나 시설 등이 매력적이지 않아 붐비지는 않는 맛집을 찾아냈다. 자전거를 타고 찾아가 바깥에서 20분 기다렸다가 들어갔다. 테이블이 네 개뿐이라 그렇다.
 
일생 가장 맛있게 먹어본 삼선짬뽕. 허름하고 작은 식당이지만 싱싱한 재료와 깊고 자연스러운 맛에서 장인(匠人)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사진 박헌정]

일생 가장 맛있게 먹어본 삼선짬뽕. 허름하고 작은 식당이지만 싱싱한 재료와 깊고 자연스러운 맛에서 장인(匠人)의 자부심이 느껴졌다. [사진 박헌정]

 
이 가게에는 메뉴가 많지 않다. 게다가 일반 짜장면이나 짬뽕이 없다. 짜장면은 기본이 유니짜장(소고기 사용)이고 짬뽕은 굴 짬뽕인데 다른 가게보다 3000원 정도씩 가격이 높다. 그런데 정말 먹어봐야 하는 것은 삼선 짬뽕이다. 그 값이 1만3000원이니 다른 곳보다 두 배 정도 비싼 가격이다.
 
아내와 함께 삼선짬뽕을 시키면서, 이 정도 가격이면 안주 삼아 소주를 한 병 비워도 되지 않을까 싶었다. 괜찮은 선택이었다. 진하면서도 끝이 개운한 국물맛, 육수의 비법이 있을 것 같다. 채소와 해물의 비율과 어우러짐이 절묘하다.
 
새우, 갑오징어, 전복, 해삼, 관자 모두 최상급으로 싱싱한 것을 사용했다. 고소함과 감칠맛이 깊다. 채소는 파프리카와 죽순, 셀러리를 넣어 아삭하고 깨끗하다. 억지로 낸 불맛도 없어서 먹기 편했다.
 
이 정도 재료라면 당연히 1만3000원은 받아야겠다는 생각으로 맛있게 먹었다. 그 식당은 도매시장이 끝나는 부근에 있는 허름한 점포다. 테이블이나 식기나 전부 낡았다. 짬뽕값에서 1%씩만 충당금으로 적립해도 두어 달이면 집기 비품을 새것으로 싹 바꿀 수 있었을 것 같다.
 
가끔 믿을 수 없이 싼 가격이 있다. 정겹고 반갑다가도 문득 누군가의 눈물을 머금고 있는 가격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가끔 믿을 수 없이 싼 가격이 있다. 정겹고 반갑다가도 문득 누군가의 눈물을 머금고 있는 가격은 아닐까 하는 걱정이 앞선다.

 
그렇지만 이 식당 안에 있는 사람들에게 그런 것은 별로 중요한 평가요소가 아닌 것 같았다. 주인 노부부는 동대문 쪽에서 크고 유명한 중식당을 경영하다가 이쪽 외곽으로 나왔다고 한다. 노년의 반퇴(半退) 생활 아닐까 싶었다.
 
요즘에 사람을 피곤하게 하는 말이 두 가지 있는데 ‘착한 가격’과 ‘재능기부’다. 그런데 둘 다 놀부 심보가 배어 나온다. 착한 가격은 통상 수준보다 확실하게 낮으면서도 품질은 아주 좋은, 약간은 앞뒤가 맞지 않는 이상적인 가격을 뜻한다. 그게 어느 정도까지 가능할지 모르겠다.
 
재능 기부는 말 그대로 재능을 나눈다는 것인데 충분히 여유가 있으면서도 서비스나 기술의 교환가치를 무시하고 공짜로 얻어내려는 일부 행태 때문에 피로감을 호소하는 사람이 많다. 누구에게 줄 만한 특별한 재능이 없는 나로서는 재능기부보다는 착한 가격이란 말이 피부에 더 와 닿는다. 신경 거슬리고 못마땅하다. 이유는 두 가지다.
 
싼값에 많이 주는 것만이 착한 가격이라면 ‘정성’이라는 재룟값은 대체 어디에 포함되어 청구될 수 있을까?

싼값에 많이 주는 것만이 착한 가격이라면 ‘정성’이라는 재룟값은 대체 어디에 포함되어 청구될 수 있을까?

 
첫째, 소비자들이 만들어 낸, 소비자에게만 유리한 ‘착한’이란 말이 갖는 일방적인 폭력성 때문이다. 우리 사회에서 ‘착하다’는 개념은 이상하게 쓰일 때가 많다.
 
어릴 때는 어른이 야단치면 가만히 야단맞는 것이, 뭐가 잘못되어 불편해도 말없이 참고 있는 것이 착한 것이라고 교육받았다. 요즘도 회사에서 윗사람 비위만 거슬리지 않으면 ‘괜찮은’ 친구다. “너 착하지 않구나?”이건 정말 상대방을 무력화시키는 공격 무기다.
 
둘째, 싼 것을 착하다고 하니 공급자의 살길은 낮은 원가뿐이고 이것이 오히려 수요자에게 역풍이 되어 선택권을 제한받는다. 상인들이 ‘착하지 않다’는 말과 적자를 동시에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싼 재료뿐이다. 그러니 ‘착하다’는 말이 갑질의 도구가 되고, 을(乙)들은 교묘하게 방어할 수밖에 없다.
 
귀한 재료로 비싸게 만들어 파는 것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싸게 만들어 파는 것도 소비자를 만족하게 해 줄 수 있다면 전부 ‘착한 가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귀한 재료로 비싸게 만들어 파는 것도, 쉽게 구할 수 있는 재료로 싸게 만들어 파는 것도 소비자를 만족하게 해 줄 수 있다면 전부 ‘착한 가격’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가끔 길에서 소형트럭에 설비를 갖추고 치킨이나 삼겹살 바비큐를 굽는 상인을 본다. 어떻게 저 가격에 가능할까 궁금하지만 그런 불가사의한 가격도 우리 사회에는 필요하다. 그래서 고맙다. 반대로, 아무리 마진을 낮춰도 비싸게 팔 수밖에 없는 음식도 있다.
 
일 년에 한 번, 생일날 큰맘 먹고 즐기는 것도 있고, 100원 단위까지 비교해가며 먹을 때도 있다. 요리사의 ‘요리’를 ‘즐길’ 때도 있고 주방장의 ‘음식’을 ‘먹을’ 때도 있다. 선택은 손님 몫이다.
 
그래서 나는 ‘착한 가격’을 다시 정의해 본다. 싼 것과 비싼 것 모두 착한 가격이 될 수 있다. 착한 가격은 공급자는 이익을 내고 소비자는 만족을 얻는 가격이다. 그 1만3000원짜리 삼선짬뽕이 내게는 정말 착한 가격이었다. 1만3000원으로 5만원 이상의 만찬 느낌, 10만원 이상의 추억을 얻었으니까.
 
몇달 째 문이 닫혀 있는 13,000원 짬뽕 가게. 주인 노부부 중 누가 얼마나 다쳤는지 알 수 없지만 쾌차하여 가게 문을 다시 열기를 기대한다.

몇달 째 문이 닫혀 있는 13,000원 짬뽕 가게. 주인 노부부 중 누가 얼마나 다쳤는지 알 수 없지만 쾌차하여 가게 문을 다시 열기를 기대한다.

 
모두 그 식당 이름을 궁금해할 것 같다. 그러나 공개해봐야 소용없다. 얼마 전부터 그 가게가 문을 닫았다. 철문에는 교통사고를 당해 당분간 영업을 중단한다고, 곧 돌아오겠다고 적어놓았는데 한 해가 지나가도록 그대로다.
 
어떤 사고를 어떻게 당했는지도 알 수 없지만 안내문처럼 어서 회복해서 돌아오시면 좋겠다. 작고 허름해도 음식에 대한 철학과 자존심은 100층짜리 스카이라운지보다 높을 것 같던 그 식당, 한 번 가고 잊기에는 너무 아쉽다.
 
박헌정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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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정 박헌정 수필가 필진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 25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50세에 명퇴금 챙겨 조기 은퇴해서 책 읽고, 글 쓰고, 여행하는 건달이자 선비의 삶을 현실화했다. 은퇴 후 도시에 뿌리 박혀버린 중년의 반복적이고 무기력한 삶에 저항하기로 했다. 20대는 돈이 없어 못하고, 30-40대는 시간이 없어 못하고, 60대는 힘과 정보가 없어 못하던 일들, 꿈만 같지만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할 일들, 50대의 전성기인 그가 그 실험에 도전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인생 환승을 앞둔 선후배들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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