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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인간 아들 잘못될까봐 병원 못 옮기는 슬픈 모정

중앙일보 2018.12.31 09:00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10)
중환자실에 몇 달째 누워있는 한 환자의 어머님은 더 이상 치료할 게 없는 상태인데도 병원을 옮기지 않았다. 사진은 한 병원 로비 1층 대기석.(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중앙포토]

중환자실에 몇 달째 누워있는 한 환자의 어머님은 더 이상 치료할 게 없는 상태인데도 병원을 옮기지 않았다. 사진은 한 병원 로비 1층 대기석.(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중앙포토]

 
"보호자 오늘 안 왔나요?"
"그럴 리가요. 면담 시간을 절대 빼먹을 리 없는 분이잖아요. 단 한 번도."
"근데 왜 안 보이죠?"
"글쎄요. 조금 전까지 계셨는데. 어디 가셨지? 아! 저기 가시네요!"
 
간호사가 문 쪽을 가리켰다. 종종걸음을 재촉하는 아주머니가 보였다. 큰 소리로 불러도 못 들은 척 발걸음을 옮긴다. 그녀를 붙잡아야 했다. 나는 체면도 잊고 뛰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눈살을 찌푸렸다. 중환자실에서 뜀박질이라니. 어쩔 수 없었다. 오늘은 어떻게든 결판을 내야만 한다.
 
"어머님, 왜 저를 피하시는 거죠?"
"선생님이랑 더는 얘기하고 싶지 않아요. 보나마 나죠. 또 병원 옮기라는 소리 하러 온 거죠?"
"이 정도면 충분히 시간을 드렸잖아요? 벌써 몇 달째에요. 대체 언제까지 중환자실 자리를 차지하고 계실 건가요?"
"우리 아이가 다 나아야 병원을 옮기죠!"
 
아이는 목을 맸다. 심장이 멎었다. 몸은 겨우 살려냈지만 결국 머리는 살리지 못했다. 흔히 말하는 식물인간. 창창한 젊은 아들이 이리됐으니 그 맘이 오죽하랴. 찢어지는 맘을 모르는 바 아니지만, 그렇다고 물러설 수는 없었다. 나는 내게 주어진 일을 해야 하니까.
 
"백번도 넘게 말씀드렸잖아요. 이 이상 좋아질 수는 없어요. 지금이 최선이에요. 의식을 되찾을 가능성은 없어요."
"그런 말 하지 마세요. 우리 아이는 반드시 일어나요. 그건 엄마인 내가 더 잘 알아요."
"그래요. 10년, 20년 기다리다 보면 기적이 일어나지 말란 법은 없지요. 그니까 작은 병원으로 옮겨서 기적을 기다리시자고요."
 
"선생님 말씀 듣고 여기저기 알아봤는데, 하나같이 우리 아이를 받지 않겠다는 걸 어떡하라고요!"
"서울에 있는 대학병원을 찾으시니 그렇죠. 아드님은 작은 병원으로 옮겨야 해요. 대학병원에서 더 치료할 게 없는 상태래도요."
"작은 병원은 싫어요. 몇 군데 가봤는데, 시설도 환경도 여기와 비교하면 너무 떨어져요. 제 아이를 그런 곳으로 데려갈 수는 없어요. 그런 데 갔다가 까딱 잘못되면 어떡해요?"
 
벌써 몇 달째, 대화가 도돌이표다. 내 모습을 보고 누군가는 악덕 집주인 같다고 했었다. 불쌍한 세입자에게 방 빼라고 윽박지르는 집주인. 그 소릴 듣고 울고 싶었다. 누구는 좋아서 이러고 있는 줄 아나? 싫은 소리 달고 사는 내 마음도 괴롭긴 매한가지인데.
 
한 대형 병원 외상센터 중환자실이 환자들로 꽉 차 있다. 중환자실에 빈자리가 없다면 새로운 환자를 받을 수 없다. 장진영 기자

한 대형 병원 외상센터 중환자실이 환자들로 꽉 차 있다. 중환자실에 빈자리가 없다면 새로운 환자를 받을 수 없다. 장진영 기자

 
"어머님 제발요. 제가 못 살겠어요. 이렇게 몇 달씩 계시면 나라님들은 제가 일 안 하는지 알아요. 지원금도 끊겨요. 병원 높으신 분들까지 나섰어요. 우리 교수님들은 절 죽이겠대요. 저 좀 살려주세요. 제발 다른 병원으로 옮겨주세요."
 
"선생님은 어떻게 자기 몸만 걱정하세요? 우리 아이는 걱정되지도 않나요? 선생님만 살려고 우리 애는 죽어도 좋단 거에요? 우리 애 주치의 맞나요?"
 
"아니, 그게 지난 몇 달간 아드님을 돌본 저에게 할 소리예요? 이미 죽어서 들어온 아드님을 이만큼이라도 살린 게 누군데요? 제가 잠 안 자고 봤던 거 벌써 다 잊으셨어요?"
 
"알지요. 선생님 은혜를 어찌 잊겠습니까? 그러니 끝까지 좀 돌봐주세요."
 
어머니는 울면서 아들 얘기를 꺼냈다. 한 번도 속 썩인 적이 없고, 어릴 때 어떤 상을 받아왔고, 첫 월급으로 무슨 선물을 사 왔고 등등. 귀에 못이 박이게 들었던 얘기다. 어머니는 질리지도 않고 추억들을 또 끄집어낸다.
 
"제가 병원비를 밀리고 있는 것도 아니잖아요. 아시잖아요. 저 하루 벌어 하루 살아요. 내일도 돈 벌러 가야 해요. 그런 제게 유일한 낙이 이 아이예요. 하루 한 번 아이 얼굴 보는 낙으로 살아요. 이 아이 죽으면 저도 더 못 살아요. 돈은 제가 어떻게든 벌어올게요. 병원비 절대 밀리지 않을게요. 그러니 제발 나가라는 말만 하지 마세요."
 
"돈 때문에 그러는 거 아니잖아요. 저 월급 받는 사람이에요. 병원비 받는다고 제 주머니로 들어오는 거 없어요. 돈 때문에 이러는 거 아니잖아요. 대학병원에서 특별히 하는 치료가 없으니 옮기라는 거잖아요. 지금 하는 치료는 작은 병원에서도 똑같이 할 수 있다고요"
 
"제 남은 삶은 이 아이 것이에요. 저는 어찌 돼도 좋아요. 이 아이에게만은 해줄 수 있는 모든 걸 해주고 싶어요. 최고의 치료를 해주고 싶어요. 그래야 죽어도 여한이 없을 거 같아요. 계속 여기 있을 거예요."
 
오늘도 설득하기는 틀렸다. 무슨 말을 해도 꿈쩍도 안 할 테지. 내일도 모레도 이 대화를 또 해야 할 것이다. 그것이 너무 고통스럽다. 영겁의 쳇바퀴를 끊으려면 나는 더 악독해져야만 한다.
 
"어머님, 여긴 대학병원이에요. 보세요. 중환자실이 환자로 가득 차 있죠? 빈자리가 하나도 없죠? 이게 무슨 말인지 아시겠어요? 새로운 환자를 더 받을 수 없단 거에요. 중환자실에 들어오려고 줄을 서 있는 환자가 많아요. 여기서 집중치료를 받으면 살 수 있을지도 모르는 중환자들. 자리가 나기만 오매불망 기다리다가, 결국 제대로 치료받지 못하고 죽는 중환자들. 그런 사람들이 있어요. 아니 그런 사람들이 많아요.
 
오늘도 작은 병원에서 그런 환자를 의뢰하겠다고 연락 왔어요. 그런데 자리가 없어서 받지 못했다고요. 무슨 뜻인지 아시겠어요? 어머님과 아드님은 지금 다른 사람들의 치료 기회를 박탈하고 있다고요. 누군가 살 수 있는 생명이 그 때문에 꺼진다고요. 깨어날 가능성이 하나도 없는 아드님 때문에요."
 
어머님은 내 얘기를 듣지 않았다. 자식이 쓰러진 어미다. 이런 얘기가 귀에 들어올 턱이 없지. 누굴 탓하랴. 우린 이런 운명인 것을. 그러니 내일도 싸울 테지. 끝없이.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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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수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필진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이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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