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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운터어택] 6번 타자 겸 2루수가 있기에

중앙일보 2018.12.31 00:21 종합 28면 지면보기
장혜수 스포츠팀 차장

장혜수 스포츠팀 차장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村上春樹)는, 2005년 펴낸 음악 에세이집 『의미가 없다면 스윙은 없다(意味がなければスイングはない)』에서, 미국 재즈 피아니스트 시더 월턴(Cedar Walton, 1934~2013)을 이렇게 묘사한다. “야구 선수로 치자면, 어디까지나 예이기는 하지만, 퍼시픽리그의 하위 팀에서 2루수를 보고 있는 6번 타자 같은 존재다.”
 
퍼시픽리그 하위 팀 6번 타자 겸 2루수는 어떤 존재일까. 퍼시픽리그는 일본 국민구단 요미우리 자이언츠나 간사이 지역 맹주 한신 타이거즈 등이 속한 센트럴리그보다 인기 면에서 좀 떨어진다. 그런 리그 하위 팀이니 눈길이 잘 가지 않을 수밖에. (2018시즌 퍼시픽리그 순위를 찾아보니, 하위권인 5위는 지바 롯데 마린스, 6위는 라쿠텐 골든이글스다.) 내야수 중 중요하지 않은 포지션이 어디 있겠나. 그래도 2루수는 다른 자리보다 덜 중요한 느낌이긴 하다. 게다가 클린업 트리오(3~5번 타자)를 막 벗어난 6번 타자다. 하루키는 독자가 이 표현을 이해하지 못할까 염려했는지 명확히 정리한다. “전문가들에게는 그 나름대로 평가를 받고 있지만, 어쨌든 눈에 띄지 않는 건 사실이다.”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는 건 눈에 잘 띄지 않지만 움직임을 추동하는 존재가 있어서다. 이들의 존재감은 미미하다. 그렇다 보니 눈에 띄는 것만 본다. 야구에서 퍼펙트게임이 나오면 투수만 본다. 타자 27명을 모두 삼진으로 잡은 게 아닌 이상, 투수 혼자 한 게 아닌데도 말이다. 설령 27명을 삼진 처리했어도, 포수 역시 투수 못지않은 공을 세웠는데 말이다. 축구에서도 늘 골 넣은 선수만 본다. 앞서 공을 터치한 선수들이 아니었다면 골은 없었을 텐데 말이다. 또 많은 골을 넣어도, 한 골이라도 더 먹고 지면 의미 없으니 수비수도 잊지 않아야 하는데 말이다.
 
2018년 마지막 날이다. 해를 넘기기 전 꼭 태안화력발전소에서 숨진 고 김용균 씨 얘기를 하고 싶었다. 그는 어두컴컴한 발전소 연료공급 컨베이어 실에서 세상이 제대로 돌아가도록 묵묵히 일했다. 그의 어깨 위에 올라탄 채 우리 사회는 앞으로 나아갔다. 대기업의 제품 생산라인도, 판교 정보통신기술(ICT) 업체 서버도, 심지어 아이돌 연예인 연습실 조명도, 그렇게 생산된 전기로 작동했다. 김 씨의 희생으로, 우리는 미력하나마 이렇게 세상의 이면에 눈을 뜨게 됐다. 부디 2019년에는 우리 모두 그 이면부터 살필 수 있기를 바란다. 하위 팀 6번 타자 겸 2루수도 얼마나 소중한지 꿰뚫어 볼 수 있기를.
 
장혜수 스포츠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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