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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킹은 ‘불가항력’이라 KT 탓 아니다”…화재로 인한 통신 두절도 면책될 수 있을까?

중앙일보 2018.12.30 06:00
서울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로 사흘째 통신·금융대란이 이어진 26일 서울 충정로의 한 식당에 'KT 화재사고로 카드결제가 안됩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있다. [뉴스1]

서울 KT 아현지사 통신구 화재로 사흘째 통신·금융대란이 이어진 26일 서울 충정로의 한 식당에 'KT 화재사고로 카드결제가 안됩니다'라는 안내 문구가 붙어있다. [뉴스1]

신종 해킹은 ‘불가항력’이라 KT에 책임을 물을 수 없다는 취지의 판결이 나왔다. 불가항력이란 ‘모든 방법을 동원해도 손해의 발생을 막을 수 없는 일’이라는 뜻이다. 그렇다면 지난 11월 화재로 인해 통신 두절 피해 역시 ‘불가항력’이니 KT가 책임을 안 져도 되는 걸까?
 

대법, 해킹 피해 "KT 관리 소홀이라 볼 수 없어"
"신종 해킹 수법은 천재지변과 같아, 불가항력"
11월 KT 화재, 통신 먹통 피해도 책임 없나 분분
"KT 관리 부실, 책임져야" vs "상인 피해 예측 못해"

해킹으로 인한 고객 정보 유출 소송에서 28일 대법원이 KT의 손을 들어줬다. 해커의 공격으로 고객 개인정보가 빠져나가긴 했지만, KT가 주장한 ‘해킹 공격을 막는 것은 불가능했기 때문’이라는 점이 인정돼서다.
 

KT 고객 강모씨 등은 2012년 7월 발생한 해킹 사고로 인해 개인정보가 유출됐다며 관리 의무를 소홀히 한 KT에 1인당 50만원씩을 배상하라는 소송을 제기했다. 당시 약 870만명의 KT 고객 개인정보가 유출된 것으로 조사됐다.
 
하지만 대법원은 최종적으로 ‘KT의 관리 의무 소홀로 볼 수 없다’고 결론 내렸다. 대법원은 “적어도 국내에서는 이같은 해킹 방식이 성공한 적이 없었던 만큼, KT가 개인정보 확인·감독을 게을리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밝혔다.
 
KT가 홈페이지 해킹으로 1200여 만 명의 고객정보를 무더기로 유출당한 지난 2014년 황창규 KT 회장이 서울 세종로 KT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며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스1]

KT가 홈페이지 해킹으로 1200여 만 명의 고객정보를 무더기로 유출당한 지난 2014년 황창규 KT 회장이 서울 세종로 KT 본사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대국민사과문을 발표하며 침통한 표정을 짓고 있다. [뉴스1]

법원은 해킹으로 인한 개인 정보 유출 소송에서 주로 이와 같은 근거를 들어 정보 관리자인 회사의 손을 들어주고 있다. 2011년 해킹으로 네이트와 싸이월드 이용자 약 3500만명의 개인정보가 유출된 건에 대해서도 지난해 대법원은 SK커뮤니케이션즈가 이를 배상할 책임이 없다고 판결했다.
 
당시 재판부는 “인터넷 시스템은 불가피하게 취약점이 있어 해커들의 불법 침입행위에 노출될 수밖에 없다”며 “서비스 제공자의 의무 위반 여부는 ‘합리적으로 기대 가능한 정도의 보호조치를 다했는지’를 기준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밝혔다.
 
판사 출신의 한 변호사는 “신종 해킹 공격은 마치 천재지변과 같아, 사측에서 미리 대응·예측할 수 없었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말했다. 사고는 났지만, 당시의 기술력으로는 사고를 방어할 능력이 없었기에 과오가 ‘면책’된다는 설명이다.
 
이 같은 판결 근거가 KT의 화재 사건 손해배상 소송에도 적용될 수 있을까. 지난달 24일 KT 아현빌딩 지하 통신구에서 화재가 발생해 대규모 통신 장애가 발생한 바 있다. 인근 상인들은 KT 서비스가 ‘먹통’이 되면서 전자 결제는 물론 전화 주문까지 제대로 받지 못해 영업 활동에 지장을 받았다고 주장했다. 현재 KT를 상대로 한 손해배상 청구 소송을 준비 중이다.
 
지난 14일 서울 KT 광화문지사 앞에서 KT아현지사 화재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KT의 피해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지난 14일 서울 KT 광화문지사 앞에서 KT아현지사 화재로 피해를 본 소상공인들이 기자회견을 열고 KT의 피해 보상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여러 쟁점이 있지만, 해킹으로 인한 손해배상 때와 마찬가지로 이번 사건에서도 KT가 사고를 방어할 수 있는 능력이 있었는지가 중요 사안이 될 전망이다. 여기서 사고는 화재사고 자체가 아니라 화재로 인해 발생한 통신 두절 피해를 말한다.
 
차상익 변호사는 “화재 자체보다 화재로 인해 서비스가 중단됐을 때 KT가 대비책을 갖추고 있었는지가 쟁점이 될 것”이라며 “KT가 대비책을 갖추고 있었느냐, 혹은 갖출 수 있었느냐 여부에 따라 손해배상 책임 유무가 가려질 것”이라고 말했다. 화재 등 불가항력적 사고로 인해 발생한 고객 피해를 KT가 미리 방어할 수 있었는데도 못 한 것이라면 KT의 책임이 인정된다는 설명이다.
 
일단 현재까지 KT 측은 도의적인 ‘위로금’은 지급할 수 있다고 밝혔다. 이는 법정 소송으로 이어질 경우 KT 측은 법적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지 않을 확률이 높다는 얘기다. 로펌의 한 변호사는 “상인들의 결제 시스템 마비 등으로 인한 손해는 KT에서 예상하지 못한 ‘특별손해’에 해당한다”며 “그 지점까지 KT가 미리 피해를 예측해 방어할 능력은 없을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소상공인연합회는 “KT가 충분히 예측할 수 있었던 손해”라고 주장했다. 소상공인연합회 측을 대리하는 엄태섭 변호사는 “상인들이 통신서비스를 통해 결제나 전화 주문을 받는다는 사실을 KT 측이 몰랐을 수가 없다”며 “통신장애로 인해 상인들이 입을 피해를 예측할 수 있었고, 이를 예측해 방어할 능력이 충분히 있기에 KT의 법적 손해배상 책임이 인정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후연 기자 lee.hooye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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