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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의 아픔 품고 명태의 추억 담고…삶을 비추는 등대

중앙선데이 2018.12.29 01:00 616호 21면 지면보기
 ‘대한민국 바다에서 가장 뛰어난 절경은 등대 아니면 해안초소다.’  
 주강현 국립해양박물관장이 쓴 농반진반의 문장이다. 농담처럼 들리지만, 농담만은 아니다. 등대가 있는 풍경은 하나같이 절경이다. 해안절벽 위에 위태로이 서 있거나 비죽 비어나온 곶에서 바닷바람 맞고 있는 주인공이 등대다. 저 먼바다에서도 깜빡이는 불빛이 보여야 하니 등대 들어선 자리는 조망도 빼어나다. 바다 보러 가는 여행은, 등대 가는 길의 다른 말일지 모른다. 
 하여 등대가 있는 풍경만으로 명소가 된 곳이 허다하다. 경북 포항 호미곶, 경남 통영 소매물도, 제주도에 딸린 마라도, 부산 앞바다 오륙도 등등 헤아리기도 버겁다. 전국의 명소 등대 중에서 겨울 여행에 어울리는 4곳을 추렸다. 헌 해를 정리하기에, 나아가 새 해를 꿈꾸기에 이만한 여행지도 없지 싶다. 
 
 최초의 빛 - 인천 팔미도등대  
1903년 점등한 국내 최초 근대식 등대인 인천 팔미도등대. [중앙포토]

1903년 점등한 국내 최초 근대식 등대인 인천 팔미도등대. [중앙포토]

 해양수산부에 따르면 전국에 등대는 1307기가 있다. 많고 많은 등대 중에서 역사·문화적 가치를 인정받아 ‘문화재’가 된 등대는 9기밖에 없다. 그중 하나가 인천 앞바다의 팔미도등대다. 1903년 6월 1일 점등한, 우리나라 최초의 근대식 등대다. 2002년 인천시유형문화재 제40호로 지정됐다. 
 팔미도등대는 전사(戰史)와 관련이 깊다. 일제가 러일전쟁에 대비해 인천항 길목에 세운 항로표지가 팔미도등대였다. 한국전쟁 당시에는 맥아더 장군의 특명을 받은 켈로부대가 팔미도등대를 점령하면서 인천상륙작전이 개시됐다.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된 팔미도에는 지금도 대한민국 해군이 주둔하고 있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이용해야 팔미도에 입도할 수 있다. 양보라 기자

인천 연안부두에서 출발하는 유람선을 이용해야 팔미도에 입도할 수 있다. 양보라 기자

 팔미도는 일반인 접근이 불가능한 섬이었지만, 2009년 제한적으로 개방됐다. 인천 연안부두에서 매일 오전 10시, 오후 1시와 4시에 뜨는 유람선 금어호(200t급)를 타는 게 팔미도에 들어가는 유일한 방법이다. 유람선 뱃길은 1시간 정도 걸리며, 섬에서 1시간 머문 뒤 돌아온다. 왕복 운임 어른 2만2000원, 어린이 1만5000원. 승객이 50명을 넘지 않으면 결항한다. 결항이 잦은 편이어서 선사(현대마린개발·032-885-0001)에 미리 물어보는 게 좋다.
 팔미도에는 등대 2기가 서 있다. 지금은 현역에서 은퇴한 팔미도등대와 팔미도등대의 임무를 물려받은 100주년 기념 등대다. 100주년 기념 등대는 팔미도등대 점등 100년을 기리기 위해 2003년 세워졌다. 새해 첫날에는 오전 6시 출발하는 유람선이 편성된다. 배에서 새해 첫날을 맞고 떡국도 먹을 수 있다. 
 
 하얀 쇠뿔 - 우도등대
우도 어디에서도 우도 등대가 보인다. 손민호 기자

우도 어디에서도 우도 등대가 보인다. 손민호 기자

 우도는 제주도에 딸린 62개 섬 중에서 가장 큰 섬이다. 소가 누운 꼴이라고 해서 우도(牛島)다. 먼 옛날 화산이 터졌고, 화산에서 흘러내린 용암이 빨래판처럼 평평한 섬을 빚었다. 그 화산의 이름이 우도봉(132m). 옛 자료에는 우두봉(牛頭峰)이라는 표기가 더 많았다. 제주 사람은 쇠머리오름이라고 불렀다. 쇠머리를 닮은 오름 꼭대기에 쇠뿔처럼 생긴 우도등대가 돋아 있다. 
 우도에는 해마다 관광객 200만 명이 몰려든다. 섬에 들어오면 누구나 우도등대를 바라볼 수 있다. 섬 어디에서도 등대가 보여서다. 그러나 등대에서 내다보는 절경은 아무나 누리지 못한다. 1시간 가까이 우도봉을 올라야 해서다. 여행사 패키지상품 대부분이 기껏해야 반나절 우도에 머물다 나온다. 이 여정으로는 우도 전망을 경험하기에 빡빡하다. 
우도등대 주변에 등대 공원이 조성됐다. 손민호 기자

우도등대 주변에 등대 공원이 조성됐다. 손민호 기자

 따라서 우도등대에서 바다를 내려봤다는 건, 우도를 제대로 여행했다는 의미다. 여행사 일정에 쫓기지 않고 소처럼 느리게 소섬을 걸어 다녔다는 뜻이어서다. 제주올레 1-1코스가 우도등대를 올랐다 내려온다. 등대 가는 길 아래가 깎아지른 해안절벽이다. 절벽 아래에 고래가 살았다는 동굴이 숨어 있다. 우도봉 꼭대기, 다시 말해 등대에 올라서야 비로소 우도가 보인다. 다 보인다. 
 우도등대도 구한말 일제가 세웠다. 1906년 처음 불을 밝혔다. 아담한 옛날 등탑은 현역에서 물러났고, 지금은 16m 높이의 새 등탑이 불을 밝힌다. 우도등대 주변으로 등대 공원이 꾸며져 있다. 지구촌 명물 등대 모형도 배치했는데, 눈에 띄는 건 소녀처럼 해맑은 설문대할망 조각상이다. 
 
 포구 따라 등대 따라- 부산등대투어  
부산시가 세계인구총회를 기념해 세운 젖병등대. 손민호 기자

부산시가 세계인구총회를 기념해 세운 젖병등대. 손민호 기자

 부산은 등대 도시다. 100기가 넘는 등대가 앞바다에 서 있다. 부산시는 등대를 관광 콘텐트로 활용하는 전국 자치단체의 모범 사례라 할 만하다. 특히 기장 해안을 따라 놓인 ‘관광 등대’가 포구마다 색다른 풍경을 자아낸다. 이미 몇몇 등대는 인증샷 명소로 통한다.  
 해운대 달맞이언덕을 넘으면 조개구이 집 늘어선 청사포다. 여기에서 등대 투어가 시작된다. 똑같이 생긴 빨강과 하양 등대가 방파제 양쪽에 서 있어 ‘쌍둥이등대’로 통한다. 바다 앞 카페에서 내다보는 풍경이 곱다.  
 다음 여정은 전복죽이 유명한 연화리 포구다. 여기서부터 기장군이다. 연화리 앞바다에 젖병등대와 닭벼슬등대가 있다. 두 등대 모두 생김새에서 이름이 비롯됐다. 젖병등대에는 사연이 있다. 2009년 부산시가 세계인구총회 유치를 위해 세웠고, 마침내 2013년 대회를 개최했다.  
드라마 세트장이었던 죽성성당과 등대. 손민호 기자

드라마 세트장이었던 죽성성당과 등대. 손민호 기자

 연화리 포구 바로 위에 대변항이 있다. 기장 멸치 대표 산지다. 대변항에도 관광 등대가 있다. 우선 월드컵등대. 한일월드컵 개최를 기념해 우리 대표팀의 붉은 색 유니폼과 월드컵 공인구를 모티브로 삼았다. 포구 앞바다 방파제 위에 나란히 서 있는 하얀색과 흰색 등대는 장승등대다. 천하대장군과 지하여장군을 본떴다는데, 태권V등대와 마징가Z등대로 더 알려져 있다.
 등대 투어는 울산 직전까지 이어진다. 죽성리 해안절벽 위에는 죽성성당등대가, 칠암항에는 야구등대·갈매기등대·붕장어등대가, 임랑항에는 물고기등대가 있다. 이들 등대 중에서 죽성성당등대만 가짜다. TV 드라마 세트다. 나머지는 모두 항로표지로서 배를 인도한다. 
 
 등대 아랫마을 - 동해 묵호등대
1963년부터 불을 밝힌 묵호등대는 해발 67m 언덕 위에 서 있다. 등대 보러 오르는 길에 등대마을 ‘논골’의 역사를 담은 벽화를 볼 수 있다. 최승표 기자

1963년부터 불을 밝힌 묵호등대는 해발 67m 언덕 위에 서 있다. 등대 보러 오르는 길에 등대마을 ‘논골’의 역사를 담은 벽화를 볼 수 있다. 최승표 기자

 강원도 동해시 묵호등대는 1963년 처음 불을 밝혔다. 포구나 방파제가 아니라 갯마을 뒤편 언덕 꼭대기에 서 있다. 등대가 마을 안에 들어와 있어 여느 등대보다 이야깃거리가 많다. 묵호등대 가는 길은 여느 등대 여행과 사뭇 다르다.  
 60년대 묵호항은 전국에서 가장 번성한 포구였다. 명태와 오징어 덕분이었다. 고기가 넘치니 사람과 돈이 몰렸다. 항구는 전국 각지에서 모여든 사람으로 북적였고, 등대마을 ‘논골’ 에는 가파른 골목을 따라 판잣집이 빼곡히 들어섰다. 화장실도 대문도 없는 집이 태반이었다.  
 그 시절 수협 경매사로 일했던 김인복(68)씨가 “여인네들이 생선 나르면서 흘린 물 때문에 골목이 늘 질척거렸다. 논골에선 신랑은 없어도 장화 없이 못 산다고 할 정도였다”며 옛 시절을 떠올렸다. 지금은 몇 남지 않은 마을 덕장에서 러시아산 명태를 해풍에 말려 ‘묵호태’란 이름으로 판다.
'등대오름길'에 있는 벽화. 60년대부터 일을 마치고 온 뱃사람들은 코가 비틀어지도록 주막에서 술을 마셨다. 최승표 기자

'등대오름길'에 있는 벽화. 60년대부터 일을 마치고 온 뱃사람들은 코가 비틀어지도록 주막에서 술을 마셨다. 최승표 기자

 80년대 1만8000명에 달했던 논골 인구는 현재 3700명으로 줄었다. 이번에도 명태와 오징어 때문이었다. 그러나 시방 마을은 썰렁하지 않다. 2010년 조성한 논골담길 덕분이다. 마을 주민과 동해시 예술가들이 이야기가 있는 벽화 사업을 벌이면서 등대 마을은 관광 명소로 거듭났다. 벽화 구경하며 골목을 오르다 보면 등대가 나타난다. 등대에 올라서면 발아래 묵호항뿐 아니라 강릉·삼척까지 한눈에 들어온다. 해발 67m가 무색한, 넓고 깊은 조망이다. 
 묵호항에서 곰치국을 먹어야 한다. 포구 난전에 큼직한 곰치가 깔리는 요즘이 제철이다. 동해에서는 묵은지와 함께 곰치를 끓인다. 시원한 맛이 일품이다.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그래픽=박춘환 기자 park.choonhwan@joongang.co.kr

 
손민호·최승표·양보라 기자 ploves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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