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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디터 프리즘] 유능한 진보, 일머리 진보

중앙선데이 2018.12.29 00:20 616호 33면 지면보기
박신홍 정치에디터

박신홍 정치에디터

불과 6개월 전만 해도 상황은 달랐다. 6·13 지방선거에서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17개 광역단체장 중 대구·경북(TK)과 제주를 제외한 14곳을 차지했다. 서울 25개 구청장 선거에서는 서초구를 제외한 24곳을 싹쓸이했다. 역대급이라 불리던 2006년 5·31 지방선거도 이 정도는 아니었다. 12년 전엔 야당인 한나라당이 전국을 휩쓸며 이듬해 대선 승리의 발판을 마련했다면, 이번엔 정반대로 여당이 압승하고 야당은 전멸하면서 문재인 정부에 더욱 큰 힘이 실릴 것이란 전망이 지배적이었다.
 

지방선거 압승 반년 새 지지율 급락
‘일도 잘하는 진보’ 기대 저버린 탓

총론 옳아도 각론 약하면 소용없어
깊이 반성하고 새해 대오각성해야

지방선거 하루 뒤 한국갤럽 조사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잘하고 있다’는 응답은 79%에 달했다. ‘잘못하고 있다’는 12%에 불과했다. 그랬던 지지율이 지난 18~20일 조사에서는 45% 대 46%로 오히려 역전됐다. 이른바 ‘데드크로스’ 현상이 반년 만에 현실로 다가온 것이다. 지지율 급락은 올여름 폭염과 세밑 겨울 혹한의 기온 차이만큼 극적이다. 그뿐인가. 경제를 좀 살려달라는 서민들의 아우성은 갈수록 커져만 가고, 청와대와 여당 곳곳에서는 삐걱거리는 소리가 끊이질 않으며, 고사 직전까지 몰렸던 자유한국당은 그새 원기를 되찾고 연일 공격의 고삐를 죄고 있다.
 
도대체 뭐가 문제였나. 뭐가 잘못된 건가. 촛불의 힘으로 등장한 문재인 정부에 대한 국민적 기대는 그 어느 정부 못지않게 컸다. 적폐 청산과 남북, 북·미 정상회담에 대한 지지 또한 절대적이었다. 아, 이제야 국민 요구에 부응하는 대통령과 정부를 만났구나 싶었다. 그런데 왜 이리 급격히 휘청거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인가. 자만인가, 태만인가. 아니면 무능 탓인가.
 
청와대 인사들은 억울함을 호소했다. 경제 악화가 지지율 급락의 주된 요인으로 꼽히지만 이는 이전 정부 때부터 누적된 잘못된 경제 구조의 여파 때문이라고 했다. 그러면서 소득주도 성장을 기반으로 혁신성장과 공정경제를 함께 추진하면 조만간 해결될 문제라고 했다. 하지만 현실은 어떤가. 가계 소득을 늘려 양극화와 불평등을 해소하겠다고 나섰지만 취업률은 더 떨어지고 고용지표는 더 나빠졌다. 자영업자와 영세 소상공인은 이미 한계 상황에 봉착했다. 총론의 방향성이 아무리 옳다 해도 각론이 약하면 변명의 여지가 없다. 학자나 연구원은 그럴 수 있지만 정부는 책임을 져야 한다.
 
문재인 정부가 출범할 때 많은 국민의 생각은 이랬을 것이다. 좀 잘해줬으면 좋겠다. 말만 진보가 아니라 일도 잘하는 능력 있는 진보, 현실의 장애물도 능숙하게 헤쳐 나가는 유능한 진보의 모습을 보여주면 좋겠다. 국민의 피부에 가장 와닿는 먹고 사는 문제도 깔끔하게 해결해 내는 ‘일머리 진보’였으면 좋겠다. 그런데 정작 아마추어다, 여전히 미숙하다, 뒷북 대책만 낸다는 비판을 받고 있으니 2년 전 촛불을 들었던 시민들 보기엔 기가 찰 일이다. 심지어 같은 진보 진영 내에서도 올해 하는 것 보니 내년 집권 3년 차 개혁은 이미 물 건너갔다는 회의론이 나올 정도다.
 
하지만 아직 3년 반이나 남아 있는 문재인 정부가 실패하면 나라도 불행해진다. 우리네 삶이 망가지지 않으려면 위정자들의 대오각성이 필요한 때다. 이제라도 잘못한 것은 솔직히 인정하고, 깊이 반성하고, 진심으로 죄송하다며 고개를 숙여야 한다. 경제야말로 감성이다. 통계와 이론보다 진심이 먼저 통해야 국가경제도 풀어갈 수 있다. “곤경에 빠지는 건 뭔가를 몰라서가 아니라 뭔가 확실히 안다는 착각 때문”이란 마크 트웨인의 경구는 지금도 유효하다.
 
권력이 공간을 지배할 순 있지만 시간을 지배하진 못한다. 영화 ‘관상’의 마지막 장면에서 “파도가 일렁이는 것만 바라보느라 정작 바람이 어디서 불어오는지를 놓쳤다”는 송강호의 한탄이 오늘날 되풀이되지 않도록 “새해에는 좀, 잘 좀 해보라”고 말해주고 싶다. 자영업자와 영세업자들, 그리고 목소리조차 내지 못하는 수많은 사회적 약자들을 생각해서라도 “쫌, 쫌!”
 
박신홍 정치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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