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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현의 문화탐색] 서울의 택지 부족…뉴욕 맨하튼에서 한수 배우라

중앙일보 2018.12.27 00:30 종합 31면 지면보기
서현 건축가·한양대 교수

서현 건축가·한양대 교수

달을 분양합니다. 헛웃음이 나올 것이다. 어수룩한 백성들 대상의 사기행각인 거지.
 

고층건물은 더 많이 허용하되
건물 딛은 토지면적은 줄여야
마천루·광장·공원 공존한 뉴욕
그게 세계 최고 도시 만든 동력

광고자를 바꾸자. 개발업자 출신의 미국 대통령은 세상 중심에 돈을 놓고 있는 사람이다. 백주에 언론인을 죽인 아라비아 왕자라도 무기만 사준다면 거래를 할 셈이다. 그가 연방 재정 적자 해소를 위해 달인들 못 팔겠는가. 논리는 간단하겠다. 달은 우리가 접수한 땅이다. 당연히 국제사회가 반발할 것이다. 깃발 먼저 꽂았다고 달이 너희 거냐. 달을 너희가 만들었느냐. 무단점거 획책하지 마라.
 
대상을 지구로 바꿔 한반도를 들여다보자. 대한민국의 모든 땅은 나뉘어 각각 법적 소유자가 있다. 그들은 이전 소유자에게서 땅을 샀을 것이다. 이전 소유자는 또 전 소유자에게서 샀을 것이고. 그렇게 거슬러 올라가면 우리는 예외 없이 달 분양 행각에서 만났던 불편한 진실 하나와 마주치게 된다. 무단점거.
 
이것이 땅이 갖고 있는 문제다. 자본, 노동과 함께 경제의 기본요소인 토지가 갖고 있는 특이점이다. 그 땅은 만들어지지도 소비되지도 않는다. 처음에 다만 점거되었을 따름이다. 바로 여기가 토지의 공공성이 출발하는 지점이다. 그래서 사회주의 국가가 시행하는 첫 번째 사업이 토지 몰수다.
 
점거와 사유화는 인간 본성의 일부다. 그 본성 발현을 방치하면 도시는 무법 정글이 된다. 그럼에도 우리는 토지 사유와 매매를 허용한다. 점거에서 시작한 토지니 내놓으라고 했을 때 벌어질 혼란을 사회가 감당할 수 없기 때문이다. 그 상태는 다시 무법에 가까워진다. 무단점거의 사적소유 인정 배경에 깔린 것이 법적 안정성이다. 악법보다 큰 사회 위협이 무법이다. 그걸 방지하라고 우리는 정부에 권력을 위임한다. 대한민국은 자본주의 민주공화국이다.
 
토지는 이용과 개발 목적으로 매매한다. 세금으로 지은 건물이 아니라면 사유재산이다. 문제는 그 건물이 토지 위에 서 있다는 점에서 발생한다. 무단점거에서 시작한 그것. 정부가 건축행위에 개입하는 근거다. 건물을 짓는 데 필요한 행정절차는 신고가 아닌 허가다. 해서 안 되는 일을 허용한다는 뜻이다. 그 허가권자가 정부다.
 
서울은 건물들이 빼곡하기는 하나 여전히 용적률이 낮은 도시다. 강남과 한강 변은 지금보다 개발밀도를 훨씬 높여야 한다. [중앙포토]

서울은 건물들이 빼곡하기는 하나 여전히 용적률이 낮은 도시다. 강남과 한강 변은 지금보다 개발밀도를 훨씬 높여야 한다. [중앙포토]

서울의 아파트값이 문제다. 수요와 공급의 가격 결정은 경제학 교과서 맨 앞에 나오는 서술이다. 자금이 충분한데 공급이 부족하면 가격은 당연히 오른다. 그래서 가격이 오르겠다고 짐작되면 더 오른다. 여기부터는 투기라고 부른다.
 
거듭, 누구도 땅을 마음대로 만들지 못한다. 택지가 부족하니 주택공급이 어렵다. 빈 땅을 찾든지 있는 땅을 재활용해야 한다. 빈 땅을 찾아 지도를 보면 서울에서 가장 큰 것이 그린벨트다. 산업유산, 기피시설 이전적지도 보인다. 이걸 헐어 택지로 개발하면 간단하겠다. 손쉬운 대안이다. 그러나 보이는 빈 땅을 다 채워 넣는다면 다음 세대가 받을 것은 택지로 가득한 도시다. 그것이 공공택지여도 사적으로 점유되는 것은 마찬가지다.
 
남은 방법은 기존 노후 택지 밀도를 높여 재개발, 재건축하는 것이다. 역시 쉽지 않은 길이다. 대한민국 사회의 쟁점으로서 난이도 최고는 입시문제고 그다음이 주택문제다. 전 국민의 이권이 빼곡하게 얽혀서 어디를 흔들어도 회심의 미소와 절규의 아우성이 부딪힌다.
 
해결의 원칙은 두 가지다. 작은 단위의 개발과 고밀도 개발. 사업의 최소 규모가 1만㎡이던 뉴타운 시대가 있었다. 민주주의의 원칙은 소수를 존중하는 다수의 지배다. 사업 규모가 커지면 지배되는 소수의 규모도 커진다. 의견수렴이 어렵고 갈등은 커지고 사업이 오래 걸린다. 다수의 재산권 행사가 소수의 생존권을 억압한다. 사업 기간 중 고발·분쟁 없는 사업도, 준공 후 갈등·소송 없는 사업도 찾아보기 어렵다. 그리고 역사가 담겼던 도시조직들이 사라진다. 도시는 작은 단위로 유연하게 변화해야 한다. 소규모 도시정비는 예외가 아니고 원칙이 되어야 한다.
 
서울시가 주거용적률을 높이겠다고 선언했다. 방향이 옳다. 서울은 건물들이 빼곡하기는 하나 여전히 용적률이 낮은 도시다. 문제는 여전히 토지다. 높은 건물을 허용하는 대신 건물이 딛고 선 토지 면적을 줄이고 그 부분의 개방을 요구해야 한다. 1층은 주거로 어차피 기피하는 곳이다.
 
땅은 변수가 많다. 경관이 중요한 곳에 삐죽한 건물을 세울 수는 없다. 단 하나의 숫자로 용적률을 일괄 적용할 수도 없다. 환수와 기부채납의 비율도 위치에 따라 달라야 한다. 그중 말 많은 서울 강남과 한강 변은 지금보다 개발밀도를 훨씬 높여야 한다. 주민, 개발업자의 환호성이 나올 일이다.
 
그러나 끼어있는 중요한 조건은 개발수익에 맞는 기부채납과 공공임대주택 조성이다. 대한민국이 정글 자본주의 사회가 아니라는 증거는 복지다. 최소한의 주거보장은 복지고 사회의 책임이다. 공공임대주택이야말로 논밭 주변이 아니고 대중교통수단 가까운 곳에 세워야 한다. 개발수익이 생길 테니 본인들의 아들딸 아닌 흙수저 세대를 위해 양보도 하라는 요구다. 양보할 생각 없으면 아침마다 주차장에서 앞차 뒤차 미는 생활을 계속해야 한다.
 
돈만 되면 악당과도 거래하겠다는 대통령의 나라로 돌아가자. 뉴욕시 맨해튼은 자본주의로 똘똘 뭉친 공간이다. 거기서 면적별 지주의 순위에 뉴욕시 정부, 가톨릭 교회, 컬럼비아대학이 줄을 서 있다. 이들의 외부공간은 모두 시민들이 마음대로 출입할 수 있는 열린 공간이다. 끔찍하게 높은 건물들 사이로 공원, 광장이 빼곡한 상황의 설명이 이렇다. 공적 개방과 사적 자유의 공존. 뉴욕이 세계 최고의 도시라고 이름을 올리는 동력이 바로 거기 있다.
 
서현 건축가·한양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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