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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재의 시시각각] 위기란 무엇인가

중앙일보 2018.12.27 00:11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연말이면 밀린 숙제 하듯 해치우는 것 중 하나가 건강검진이다. 심장·간·위·대장 오장육부는 물론 당뇨·혈압·갑상샘·체질량 지수까지 모든 숫자가 말짱해야 ‘정상’ 판정을 받는다. 간이나 위에 암이 걸렸다면? 혈압이나 당뇨 수치가 확 올라갔다면? 열 일 제쳐놓고 치료에 집중해야 한다. 일이 어떻고 공부가 어떻고는 한가한 소리다. 살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이때 어떤 의사도 “뇌는 멀쩡합니다”라거나 “펀더멘털(기본 체력)은 튼튼하다”고 말하지 않는다. 오장육부 중 한 곳이 크게 망가지면 다른 곳 멀쩡해봐야 소용없다는 걸 잘 알기 때문이다.
 

경제가 보내는 이상 신호
무시할 때 찾아오는 재앙

경제도 그렇다. 주가·환율·금리·물가·(가계·국가)부채는 물론 고용·실업·성장률까지 모든 숫자가 말짱해야 ‘정상’ 판정을 받는다. 환율이나 주가가 폭락한다면? 고용이나 성장이 확 쪼그라든다면? 열 일 제쳐놓고 경제 살리기에 집중해야 한다. 제대로 된 의사라면 수십만 자영업자가 줄폐업하고 노약자부터 무더기로 일자리를 잃는 현실을 앞에 두고 “최저임금 인상 긍정 효과는 90%”라고 말해선 안 되는 것이다. 최저임금의 급격한 인상 하나만으로도 경제는 언제든지 사망할 수 있다. 요즘 같으면 굳이 베네수엘라나 아르헨티나를 예로 들 것도 없다.
 
위기설이야말로 경제 위기를 막는 최고의 처방이다. 지방간 수치가 조금만 올라도 의사가 “간암에 걸릴 확률 6배 증가”라며 환자를 겁주는 것과 같다. 하지만 이 정부는 위기설엔 아예 귀를 막고 있다. 김현철 청와대 경제보좌관은 “경제 성장률이 3.1%나 되는데도 위기론이 반복된다”며 “기승전기업 살리기를 요구하는 위기론이 개탄스럽다”고 했다. 야당이 경제 실정을 공격하자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경제가 언제 위기 아닌 적 있었나”고 받아쳤다. ‘경제 위기설=야당의 음모’쯤으로 보는 것이다. 그러니 내로라하는 경제학자들의 진단도 외면한다. 김광두 국민경제자문회의 부의장은 “위기 논쟁은 한가한 소리”라며 “나라 경제의 뿌리가 흔들린다”고 했다. 장하준 영국 케임브리지대 교수는 “현 상황은 국가 비상사태”란 표현까지 했다.
 
이럴 때 리더의 선택이 중요하다. 문재인 대통령은 일방적으로 청와대 참모들 손을 들어줬다. 그는 지난 11일 “거시지표는 견조하다”고 했으며 지난달 국회 시정연설 때는 “세계가 우리의 경제성장에 찬탄을 보낸다”고 했다.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란 말까지 나왔다. 간암 환자에게 “폐는 멀쩡하다”고 하는 것과 뭐가 다른가. 이런 동떨어진 현실 인식의 결과가 24일 정부가 확정한 최저임금 시행령 개정안이다. 대통령 스스로 “최저임금 속도 조절”을 말해놓고 연봉 5000만원 넘는 대기업도 지키지 못할 정도로 기준을 강화했다. 정부는 “(기업의) 추가 부담은 없다”지만 산업 현장에선 “현실 모르는 소리”라며 혀를 찬다. 도무지 ‘위기의식’이 없기 때문이라고밖에 해석할 수 없다.
 
그러는 사이 진짜 위기가 오고 있다. 홀로 버티던 미국마저 심상치 않다. 다우지수는 이달 들어 16%가 빠졌다. 24일엔 2.91% 급락해 검은 성탄절을 맞았다. 국제 유가는 이날만 6% 넘게 급락했다. 앨런 그린스펀 전 미국 연방준비제도(fed) 의장은 “스태그플레이션이 올 수 있다”며 “피난처를 찾아 뛰어야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은 “미국의 성장 약화 신호를 확인했다”고 했다. 바야흐로 안전벨트를 단단히 맬 때다.
 
그런데 우리는 거꾸로 가고 있다. 한다던 속도 조절은커녕 최저임금을 더 올리는 쪽으로 밀어붙였다. 몸이 보내는 이상 신호를 무시한 것과 같다. 결과는 누구나 안다. 잘해야 반신불수, 잘못하면 사망이다.  
 
이정재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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