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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 칼럼] 노무현을 어설프게 배운 비극

중앙일보 2018.12.27 00:10 종합 35면 지면보기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노무현의 멋진 순간이다. 2007년 평양 10·4선언 때다. 전날 정상회담 도중 북한 김정일은 뜬금없었다. “오늘 회의를 내일로 하시고 ~ ~ 모레 아침에 가시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기습적인 일정 연기 제안이다. 노 대통령은 잠시 머뭇거렸다.  
 
김 위원장의 말투는 압박하듯 이어졌다. “그거 못하십니까. 대통령이 결심하시면 되지 않나요.” 김정일의 표정은 굳어졌다. 노무현은 다소 당황스러운 낯빛을 거뒀다. “큰 것은 제가 결정하지만 작은 일은 제가 결정하지 못합니다.”
 
협상 무대의 연장은 북한의 수법이다. 돌출과 허 찌르기는 수단이다. 노무현의 말은 절묘한 거절이다. 북한에서 김정일의 말은 절대다. 그 지위는 무(無)오류의 신성함이다. 노무현의 순발력은 그 언어의 위상과 감각을 헝클어뜨렸다. 세습독재와 자유민주 체제의 차이가 극명해졌다. 그 장면의 상징성은 유쾌하다.  
 
그 회담 결과에 대한 평판은 갈렸다. 2018년 문재인-김정은 정상은 10·4선언을 계승했다. 대다수 보수층은 불만이다. 그것은 ‘우리 민족끼리’의 거친 질주 때문이다. 하지만 노무현의 유산은 선명하다. 그의 멋진 순간은 휘둘리지 않는 자존심이다. 그것은 거래의 노하우다. 하지만 문재인 정권에 제대로 전수되지 않고 있다.
 
노무현의 그 순간은 다른 풍광과 결합한다. 2007년 그의 마지막 임기 때다. 그는 제주 해군기지 계획을 내놓았다. 바탕은 ‘무장(武裝)평화론’이다. 그는 단언했다. “중립국 스위스의 평화는 무력 없이 지켜지지 않는다. 무장은 국가의 필수 요소다. 힘이 없는 평화는 유지되지 않는다.” 스위스의 기반은 자립 안보다. 중립은 평화의 구호로 작동하지 않는다. 스위스는 이웃 국가의 자선을 믿지 않는다.
 
제주 해군기지는 지정학적 보배다. 그 앞 먼바다에서 강대국 함정들이 움직인다. 제주기지의 가치는 그 동태의 파악이다. 지난 10월 기지에서 국제 관함식이 있었다. 문 대통령의 축하 연설은 두 메시지를 묶었다. ‘평화와 번영을 위한 강한 국방력’ ‘강정마을 주민의 고통 치유’다. 비중은 강정마을 쪽에 두어진 인상이다.  
 
박보균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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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무현의 ‘무장평화론’은 제대로 기억되지 못했다. 김정은 정권은 비핵화를 실천하지 않는다. 북한은 어느 순간 핵무장의 위세를 과시할 것이다. 평화의 자선을 베푼다고 할 것이다.
 
26일 남북 철도·도로 착공식이 열렸다. 북한의 개성 판문역에서다. 북한 철길은 망가졌다. 실상은 일제 강점기보다 후퇴다. 일제 때 경의선은 시속 65㎞의 복선이다. 지금의 평양~개성은 시속 20㎞의 단선이다. 이선권 조평통위원장의 북한 대표단은 그 부끄러움을 감춘다.
 
북한 철길은 부활해야 한다. 그 염원의 조건은 명쾌하다. 여행 자유와 개방이다. 그것으로 경제성을 확보한다. 그 전제 없는 철도는 독재자의 장식물이다. ‘동아시아 철도 공동체’도 환상이다. 세금 퍼주기로 타락한다. 하지만 북한 사회는 감시·통제다. 지금 장관들은 북측에 충고하지 못한다. 노무현이면 어땠을까. 우회적이라도 말했을 것이다. “주민 여행이 수월해야 철도가 번영을 가져온다.”
 
그 멋진 순간은 이어진다. 김대환 인하대 명예교수는 최근 이렇게 공개했다(니어재단 포럼). 그는 노무현 시대 노동장관이다. 2004년 탄핵 정국 때다. 노 대통령은 칩거했다. 김대환은 노동계 인사들을 청와대로 데려갔다. 만남은 노무현의 지시였다. 거기서 노무현은 이렇게 말했다. “제가 변했다고요. 고백하건데 저는 변했습니다. 하루하루 국정을 챙기다 보니까… 제가 변하지 않고는 안 되겠습디다.”
 
그 무렵 노조의 불만이 터졌다. “친(親)노동의 좌회전 깜빡이를 켜고 우회전한다.” 노무현의 변신은 한·미 자유무역협정(FTA)으로 이어졌다. 노무현은 노조와 기업의 균형을 추구했다. 지금 정권에선 균형이 깨졌다. 기업하기 힘든 나라다.  
 
‘문재인 사람들’은 노무현을 격찬한다. 하지만 어설프게 배웠다. 노무현의 매력은 복잡·다층적이다. 문재인 경제의 구호는 ‘사람 중심’이다. 현장은 역설의 비극이다. ‘사람’ 중 사회적 약자들이 힘들다. 서민 정책은 서민을 괴롭힌다. 소상공인, 자영업자 대다수가 고통스럽다.
 
문 대통령은 “새로운 정책은··· 국민의 공감 속에서 추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했다. 그 말은 속도 조절을 예고한 듯했다. 하지만 24일 최저임금법 시행령(개정 수정안)은 그런 기대에서 벗어났다.  
 
김대환은 지적한다. “노 대통령은 국정 기조의 변화를 두려워하지 않았다. 문재인 정권은 그런 용기가 부족하다.” 리더십의 변신은 용기를 요구한다. 노무현 리더십의 결정적 요소는 용기다. 변신의 파괴력은 혁신을 낳는다.
 
박보균 칼럼니스트·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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