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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 논설위원이 간다] 환경단체 표적된 한국 아연 산업의 원류

중앙일보 2018.12.27 00:06 종합 26면 지면보기
낙동강 오염 논란 봉화 석포제련소
경북 봉화군에 있는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경북 봉화군에 있는 영풍 석포제련소에서 직원들이 작업을 하고 있다. [중앙포토]

경북 봉화군 석포면의 석포제련소. ‘영풍문고’로 더 잘 알려진 영풍그룹의 모기업 ㈜영풍에서 운영하는 공장이다. 같은 영풍그룹 계열인 고려아연 온산제련소와 함께 국내 아연 생산의 쌍벽을 이루는 곳이다. 온산제련소보다 8년 앞선 1970년 준공돼 국내 아연 산업의 원조로 꼽혀 왔다. 단일 공장 기준 생산량 세계 4위, 국내 소비의 35%를 담당한다. 지난해 정련아연(순도를 높인 아연) 36만t을 생산해 1조4000억원 매출을 올렸다. 캐나다·페루 등에서 수입된 정광(精鑛·원료)을 가공, 아연괴(塊·덩어리)로 만들어 국내 철강업체로 공급한다. 철제품 부식 방지 도금용으로 주로 쓰이는 아연은 한국에서 자급 가능한 몇 안 되는 비철금속이다. 이곳이 현재 환경단체의 표적이 됐다.

생산량 세계 4위, 아연 자급 기여
환경오염 논란으로 수년 째 몸살

폐수 사고로 20일 조업정지 명령
업체 “6개월 문닫으란 거냐” 반발

시민단체·행정기관 전 방위 압박
관련기관 등 올해 88차례나 방문

 
생각보다 냄새는 나지 않았다. 매캐한 냄새가 코를 자극할 것이란 짐작은 일단 어긋났다. 굴뚝에서 뿜어져 나오는 것은 연기가 아니라 수증기란다. 그러나 공장 바로 뒷산 말라 죽은 소나무들은 이곳이 환경 논란 지역임을 실감케 했다. 서울서 4시간을 달려 도착한 공장 주변의 첫인상이다.
 
석포제련소 폐쇄를 촉구하는 환경단체 시위 모습. [연합뉴스]

석포제련소 폐쇄를 촉구하는 환경단체 시위 모습. [연합뉴스]

환경단체들은 이 제련소가 낙동강을 더럽히는 오염원이라는 이유로 폐쇄 운동을 펼치고 있다. 1970년 가동을 시작한 공장이 환경 시비에 휘말린 것은 수년 전부터다. 2014년 3공장을 증설하는 과정에서 기준 미달 대기 배출 시설이 지적되면서 본격적으로 불거졌다. 이듬해 봉화군이 내린 1, 2공장 부지의 토양 정화 명령을 놓고는 지금도 법적 공방 중이다. 제련소측은 정화기간 연장을 요청했으나 봉화군이 거부하자 행정소송을 냈다. 배상윤 석포제련소 관리본부장은 “건물 아래 땅까지 정화하려면 공장을 뜯어내야 해 어려움이 많다”고 말했다. 최근 토양환경보전법 시행령이 개정되면서 건물 아래 땅의 정화 시기를 늦출 수 있게 됐지만, 공공시설물에 해당할 뿐 민간엔 적용되지 않는다.
 
결정적 사건은 올 2월 터졌다. 토요일 아침, 흰색을 띤 물이 공장 앞 낙동강으로 흘러드는 것을 주민이 신고했다. 폐수처리장 배수펌프가 고장 나면서 정화용 미생물이 섞인 물 70t이 침전조에서 흘러넘친 것이다. 봉화군에서 채취한 시료에서 기준치 10배의 불소, 2배의 셀레늄이 검출됐다. 이틀 뒤 월요일, 행정 기관의 집중 점검이 실시됐다. 불소처리 공정 침전조 벽에서 물이 새 폐수 0.5t이 공장 안 토양에 배출한 사실이 확인됐다. 경북도로부터 조업정지 20일 명령이 떨어졌다. 제련소가 과징금이나 벌금 처분을 받은 적은 있으나, 공장을 세우라는 처분은 처음이다.
 
영풍 측은 “오염물질 유출 책임은 통감하지만 처분이 지나치다”고 항변했다. 조업정지 대신 과징금 처분으로 충분하다는 것이다. 박영민 제련소장(부사장)은 “화학 공정 특징상 20일 조업 중지를 위해선 전후 6개월 가까이 생산을 멈춰야 한다”고 말했다. 사전에 전해액 같은 화학물질을 옮겨야 하고, 가동 재개 후엔 공정 안정화가 필요해 이 정도 시간이 든다는 것이다. 박 소장은 “조업정지가 현실화되면 국내 아연의 자급 기반이 무너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경북도청 강병정 환경지도팀장은 “관리 부실이 실제 사고로 이어진 점, 과거 환경 관련 적발 전력 등을 고려해 내려진 결정”이라고 말했다. 영풍은 행정심판을 청구했지만 기각당하자 다시 행정소송을 냈다. 이 과정에서 석포제련소에 대한 환경단체의 압박은 더 강해졌다. 대구환경운동연합 정수근 생태보존국장은 “석포제련소가 2014년부터 지금까지 수 십건의 불법행위를 한 것은 환경개선 의지가 없다는 방증”이라며 “공장을 옮기거나 닫는 것만이 해결책”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환경단체 주장에 석포면 주민은 반발하고 있다. 주민들에겐 공장 이전·폐쇄가 생존권이 걸린 문제다. 임광길(61) 석포면 현안대책위원장은 “면 주민 2200명 중 80% 이상이 제련소와 직·간접적으로 연관된 생업을 하고 있다”며 “환경 논란이 있긴 하지만, 공장 문을 닫을 만큼 심각한 상황은 아니라고 본다”고 말했다. 환경단체 ‘시민조사단’ 버스 순례에 참가한 한 회원이 주민을 두고 ‘말 잘 듣고 길들여진 개’라고 표현한 시가 문제가 되기도 했다. 주민들은 이 시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정수근 국장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지역경제에 대한 우려는 인근 강원도 태백시에서도 제기됐다. 제련소 직원 1200명 중 400명 정도가 태백시민이다. 태백시 의회는 제련소 조업 정지 명령에 대해 “주민 정주 기반이 무너지고, 인구유출과 지역 공동화를 가속할 것”이라는 입장을 표명했다.
 
환경단체에 맞선 석포면 주민의 시위. [중앙포토]

환경단체에 맞선 석포면 주민의 시위. [중앙포토]

석포제련소와 환경단체의 주장은 사사건건 맞서고 있다. 대표적인 것이 안동댐 바닥의 중금속 오염 논란이다. 안동환경운동연합은 최근 안동댐 붕어에서 크롬·카드뮴·납 같은 중금속이 다량 검출됐다며, 주요 오염원으로 석포제련소를 지목했다. 그러나 제련소 측은 “이미 2012년 환경정책평가연구원 조사 결과, 안동댐 바닥의 중금속 출처는 우리가 쓰는 외국산 원료가 아니라 국산 광석으로 밝혀졌다”고 해명했다. 낙동강 상류 주변에 산재한 폐광산이 원인일 수 있다는 것이 제련소 주장이다. 공장 주변 주민들의 체내에 축적된 중금속도 제련소보다는 이 지역 토양 특성과 관련 있다는 것이다.
 
석포제련소 문제는 국회 환경노동위에서도 수년째 단골 이슈가 되고 있다. 조명래 환경부장관은 국정감사에서 “개인적으로는 석포제련소가 과연 그 위치에 있어야 하는지 자문하고 있다”며 “공장 폐쇄나 이전 조치도 적극적으로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가장 적극적으로 나서는 원내 인사는 자유한국당 비례대표 강효상 의원이다. 강 의원은 가칭 ‘대규모 오염시설 이전 지원에 관한 한시적 특별법’ 제정을 추진하고 있다. 정작 봉화군을 지역구로 둔 같은 당 강석호 의원이 환경단체와 주민 사이에서 말을 아끼고 있는 것과는 대조적이다. 영풍 측은 “공장 이전은 사업을 접으라는 이야기”라는 입장이다. 박영민 소장은 “제련소 특성상 시설을 뜯으면 고철이나 다름없게 돼 완전히 새로 지어야 한다. 2조~3조원이 나 드는 비용도 문제지만, 환경단체나 주민 반대로 국내에서 마땅한 부지를 찾기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말했다.
 
영풍은 2021년 12월 31일까지 받아야 하는 사업 재허가 때문에 긴장하고 있다. 환경부는 대기 수질 폐기물 등으로 나뉘어 있는 기존 환경시설 인허가를 통합한 ‘통합환경관리제도’를 지난해부터 시행하고 있다. 원래 취지는 ‘절차 간소화’지만, 환경단체와 정부·정치권의 압박 속에서 오히려 족쇄로 바뀌지 않을까 하는 것이 영풍 측 우려다. 제련소의 외부인 방문 프로그램을 만들고, 시설 개보수를 강화하는 것은 대응책의 일환이다. 제련소 측에 따르면 올해 도청·군청·환경부·지방환경청·환경공단·환경단체에서 공장을 방문·점검한 횟수는 88차례다. 매년 10차례 정도에서 지난해 40여 차례로 늘더니 올해는 곱절이 됐다. 영풍그룹 관계자는 “우리가 높아진 환경 눈높이에 다소 둔감했던 것은 인정하지만, 과도한 ‘조리돌림’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있다”고 말했다.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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