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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의 퍼스펙티브] 현역 의원과 거대 정당에만 유리한 정치자금법

중앙일보 2018.12.27 00:06 종합 29면 지면보기
정치자금법 개정 쟁점
‘원숭이는 나무에서 떨어져도 원숭이지만 국회의원은 선거에 떨어지면 사람도 아니다.’ 정치인들이 흔히 하는 말이다. 일반 시민 입장에서야 별난 소리로 들린다. 떨어지고도 빤질빤질하게 잘도 돌아다니더니 무슨 엄살이냐는 생각이 들 법도 하다.

“기회는 평등, 과정은 공정하게”
선거법 정치자금법 그렇지 못해
원외였던 노회찬 비극 출발점

정치가 아무리 믿을 수 없어도
이대로 하면 돈 있는 사람만 정치
불공정 고치고, 철저히 감시해야

 
가까이서 보면 다르다. 어깨부터 축 처져 있다. 4년 뒤 다시 도전하려면 더 열심히 뛰어야 한다. 그렇지만, 국회의원 배지가 떨어지는 순간 손발이 꽁꽁 묶인다. 떨어진 국회의원은 그나마 낫다. 새로 국회의원에 도전하려는 신인에게는 절벽이 가로막고 있다. 할 수 있는 게 없다.
 
현역 국회의원들이 법을 그렇게 만들어 놨다. 의원들은 무엇이든 할 수 있다. 그러나 정치 신인이나 떨어진, 그래서 현역 의원을 위협하는 경쟁자들은 아무것도 할 수 없다. 그래야 다음 선거에서 의원이 유리하다.
 
1인 미디어 시대다. 유튜브를 통해 1인 방송도 할 수 있다. 1인 유튜브의 영향력이 무시무시한 수준으로 커졌다. 트위터·페이스북을 통해 한꺼번에 수만 명에게 메시지를 전달할 수 있다. 그런데도 의원이 아닌 출마 희망자들은 명함을 돌리는 것마저 할 수 없다.
 
문재인 대통령은 “기회는 평등하게, 과정은 공정하게, 그리고 결과는 정의롭게”라고 말했다. 그러나 선거법과 정치자금법은 전혀 그렇지 않다. 거대 정당과 현역 의원에게 너무 기울어 있다. 법을 만드는 주역들이다. 그러니 개정도 어렵다. 정치자금 문제로 가면 더 심하다.
 
 
# 나부터 불법 정치자금 수사해야 한다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그래픽=차준홍 기자 cha.junhong@joongang.co.kr]

박명호 동국대 교수는 지난달 국회 정치개혁특위 공청회에서 “정당 국고보조금과 기탁금을 독식하는 거대 정당과 정치 신인을 차별하는 불평등 정치자금 구조는 개선돼야 한다”면서 이것이 ‘노회찬 비극’의 출발점이라고 지적했다.
 
국회의원이 아닌 정치인은 후원회를 둘 수 없다. 선거가 있는 해 예비 후보자로 등록한 뒤에나 가능하다. 고(故) 노회찬 의원은 당시 현역 의원이 아니었다. 20대 총선 출마를 준비할 때다. 친구인 ‘드루킹’의 측근으로부터 4000만원을 받았지만, 회계 처리를 하지 않았다. 예비 후보로 등록하고 모금할 수도 있었지만, 후원회가 구성되지 않은 상태에서 쉬운 길을 선택한 것이다.
 
유인태 국회 사무총장도 비슷한 주장을 했다. 그는 필자와의 인터뷰에서 2004년 개정한 “‘오세훈법’은 아무도 지키지 않는 엉터리 법”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오세훈법을 유지하려면 “나부터 검찰이 조사해야 한다”고 고백했다.
 
“국회의원에서 떨어지면 그때부터 상속세와 증여세를 내는 돈이 아니면, 누구한테도 단돈 10원을 못 받게 되어 있어요. 어떤 방법도 안 돼. 후원회가 없기 때문에…. 법대로 지키려면 우선 나부터 검찰에서 조사해야 한다고. 내가 18대 총선에서 떨어졌잖아. 그리고 19대 국회에 다시 들어왔잖아. 그 사이 4년 동안 내가 먹고살고, 어쨌든 지역구 관리를 해 왔잖아. 그런데 18대 국회에 들어오면서 신고한 재산이랑 19대 국회에 들어오면서 신고한 재산이 똑같아. 그동안 내가 수입이 하나도 없었어. 뭐 소득세·증여세·상속세도 낸 것이 없어. 그런데 재산이 그대로다. 그러면 ‘4년 동안 너 어디 가서 도둑질해 먹고 살았느냐?’ 이렇게 된다. 조사해야 원칙이다. 그러니까 지금 (정치자금법을) 아무도 안 지키고 있는 겁니다.”
 
유 총장만 그런 게 아니다. 많은 정치인이 선거에 나서 떨어졌다. 당선되는 사람보다 떨어진 후보가 훨씬 더 많다. 그런데 한번 떨어졌다고 포기하는 정치인은 보기 어렵다. 배우자가 돈을 잘 버는 경우라면 그나마 낫다. 정치 활동과 병행할 수 있는 직업인 경우나 물려받은 재산이 넉넉한 경우는 걱정이 없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도 다음 선거에 또 나선다.
 
정치 신인은 더 하다. 현역 의원을 이기려면 몇 배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 먹고 사는 것을 걱정해야 하는 일반 시민이라면 엄두가 안 나는 일이다. 결국 이런 구조라면 걱정 없는 자산가, 떨어져도 돌아갈 일이 있는 변호사·의사 같은 전문 직업인만 정치할 수 있다.
 
 
# 원외 차별이 노회찬 희생시켜
 
박명호 교수는 정치자금법이 ‘담합’ 구조라고 지적했다. 그는 담합을 ‘현역 의원 우선’과 ‘거대 정당 우선’ 두 가지로 구분했다.
 
현재 정치자금법으로는 현역 의원이 절대 유리하다. 현역 의원은 임기 내내 정치자금을 모을 수 있다. 1년에 1억5000만원까지. 더 모아도 상관없다. 초과한 만큼 그다음 해 모금 한도액에서 빼면 된다.
 
원외 경쟁자들은 모금할 수 없다. 정치자금은 후원회를 통해서만 모을 수 있다. 그런데 후원회를 만들 수 있는 사람은 국회의원뿐이다. 국회의원 예비후보, 지방자치단체장 후보, 대통령 후보와 예비후보도 후원회를 만들 수 있다. 그러나 예비후보 등록을 해야 가능하다. 국회의원 예비후보는 선거 전 120일부터 등록할 수 있다.
 
후원회를 구성하고, 모금까지 하기에는 촉박하다. 더군다나 그 돈을 사용해 선거운동을 하고, 현역 의원과 경쟁하는 정책을 만들고, 공약을 다듬고, 홍보물을 돌리려면 경쟁력이 떨어질 수밖에 없다. 현역 의원은 선거가 있는 해에 모금 가능액이 2배로 늘어난다. 현역 의원만의 특혜다.
 
받을 수 있는 건 없고, 나갈 곳만 많으니 검은돈의 유혹을 받게 된다. 유인태 사무총장은 국회의원 선거에서 떨어지면 바로 차별이 시작된다고 말했다.
 
“국회의원에 당선된 사람은 선거 때 들어온 후원금, 나중에 선관위로부터 보전받은 1억원 정도의 선거 비용을 모두 후원회로 옮길 수가 있어요. 가지고 가. 떨어진 사람은 그 돈 한 푼도 못 받게 되어 있어요. 우리 제도가. 떨어지는 순간 후원회가 없거든. 근데 후원금은 받았잖아. 또 선거 비용 보전을 받잖아요. 그러면 이 돈을 어디다 기부를 해야 해.”
 
기부하지 않으면 국고로 환수한다. 한 전직 의원은 “그 돈을 제대로 기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말했다. 형식적으로만 다른 기관에 기부하고, 사실상 자기가 쓴다는 것이다. 편법을 조장한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는 반환기탁금과 보전 비용을 정치자금으로 쓸 수 있도록 개정 의견을 국회에 제출했다. 공직 선거 당선자와 낙선자가 계속해서 정치 활동을 하려고 하면 선관위에 계획을 신고하고 쓸 수 있게 한다는 것이다. 다만 선관위에 신고된 예금 계좌로 관리하고, 회계 보고를 하도록 했다. 허위·부정 신고자는 지출 비용의 2배를 국가에 반환하게 한다는 것이다.
 
 
# 거대 원내정당이 국고 보조금 독식
 
중앙선관위는 올해 884억여 원의 국고보조금을 정당에 지급했다. 더불어민주당 296억6935만원(33.6%), 자유한국당 274억4150만원(31%), 바른미래당 173억2467만원(19.6%), 정의당 53억7059만원(6.1%), 민주평화당 50억6683만원(5.7%), 국민의당(1분기 지급) 23억2168만원(2.6%), 민중당 5억9466만원(0.7%), 바른정당(1분기 지급) 5억9003만원(0.7%), 대한애국당 5억7891만원(0.1%).
 
국고보조금은 먼저 절반을 뚝 떼어 원내 교섭단체에 똑같이 나누어준다. 20석이 안 돼 교섭단체를 구성하지 못한 정당 가운데 5석이 넘는 정당은 국고보조금 전체의 5%씩, 5석이 안 되는 정당에는 국고보조금 전체의 2%씩을 나누어준다. 그러고 남은 돈은 의석이 있는 정당을 대상으로 절반은 의석수 비율, 절반은 가장 최근 국회의원 선거 득표율에 따라 나누어준다.
 
김윤철 경희대 교수는 정개특위 공청회에서 국고 보조금의 기득권 독점 구조를 개선하기 위해 절반을 교섭단체를 구성한 정당에 균분하는 방식을 폐지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앙선관위가 국회에 제출한 개정안도 교섭단체 우선 배분 방식을 폐지하는 것이다. 국민의 지지에 비례한 지원이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다.
 
또 선관위는 정당이 과도하게 국고에 의존하는 것을 개선하고, 정당의 자구 노력과 진성당원 중심 정당 운영 기반을 조성하기 위해 당비 납부액과 납부자 수 비율에 연동한 국고보조금 지급 방안을 제안했다.
 
시민단체들은 기탁금 반환과 선거비용 보전 기준도 정치 신인에게 불리하다고 지적한다. 현재는 유효투표의 15% 이상을 얻으면 전액 보전, 10% 이상을 얻으면 절반을 보전한다. 기탁금도 같은 기준으로 돌려준다. 그러나 시민단체들은 이 기준이 지나치게 높아 정치 신인의 도전을 가로막는다는 것이다. 이것을 10% 이상은 전액, 5% 이상은 75%, 3% 이상은 반액을 보전하라는 의견을 제시하고 있다.
 
 
# ‘돈 먹는 하마’는 어떻게 하나
 
유인태 총장은 지구당 사무소를 ‘돈 먹는 하마’라며 금지한 것도 눈 가리고 아웅이라고 지적했다. 당원협의회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지구당 사무소를 운영하고 있다는 것이다.
 
“주요 정당은 전국에 다 당원협의회 사무실을 가지고 있어요. 그런데 거기서 당원협의회 회의를 하면 정당법 위반이에요. 그래서 벌금 문 사람도 몇 명 있어요. 70만원. 거기서 모이더라도 회의는 커피숍에서 하고 와야 해요. 말도 안 되죠.”
 
‘오세훈법’은 정치권에 대한 불신에서 출발했다. ‘차떼기’에 대한 반발이다. 그러나 정치인을 믿을 수 없다고 정치의 숨통을 막아버릴 순 없다. 민주주의를 포기하지 않는 한 정치는 필요하다. 정치에는 돈이 든다. 필요한 돈은 제공해야 한다. 대신 철저히 감시해야 한다. 중앙선관위는 국회에 제출한 정치자금법 개정 의견에서 정치자금의 출납을 선관위 홈페이지에 실시간 공개하자고 제안했다. 누구나 언제든 조회할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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