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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후 남은 동전 기부, 여가 통한 봉사의 첫걸음

중앙일보 2018.12.25 11:00
[더,오래]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13)
국가부도의 날이라는 영화가 상영되고 있다. 1997년 IMF 사태로 통칭하는 국가부도사태를 다룬 이 영화는 내용의 사실 여부를 떠나 출연진의 연기력과 최근 우리의 어려운 경제 사정을 반영해서인지 큰 관심을 끌고 있다.
 
IMF 사태를 생각하면 함께 떠오르는 일이 하나 있다. 전 국민이 하나가 된 금 모으기 운동이다. 장롱 속 금을 모아 국가부도사태를 극복하자고 나선 이 운동은 일제강점기 국채보상운동과 함께 나라를 위한 우리 국민의 애국심과 단결을 보여 줘 전 세계의 부러움을 산 사례로 영원히 기억될 일이다.
 
그때 내가 다니던 회사에서도 서랍 속 동전 모으기라고 해서 여행 중, 출장 중 쓰고 남아 처치 곤란(?)한 외국 동전을 모아 기부한 일이 있었다. 그때 산처럼 쌓인 동전 더미를 생각하면 지금도 만감이 교차한다.
 
여행에서 돌아오는 현지공항에서 기부금으로 쓸 외국동전을 모으고 있다. [사진 한익종]

여행에서 돌아오는 현지공항에서 기부금으로 쓸 외국동전을 모으고 있다. [사진 한익종]

 
한국 국적의 어느 항공사도 귀국하는 항공편에서 승무원이 봉투를 들고 모금을 하는데 유니세프에 기부하고자 함에서이다. 모금실적은 차치하고라도 십시일반, 여행 후 남는 동전을 불우한 이웃을 위해 쓰자고 모으는 일을 보며 문득 우리의 1997년과 영화 국가부도의 날을 음미해 본다.
 
발룬투어리즘, 여행으로도 충분히 봉사할 수 있다
여행과 관련해 봉사하는 일을 예시하려다 보니 IMF와 영화까지 거론케 됐는데 사실 여행을 통해 이웃에게 봉사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그것은 취미와 놀이와 여가를 통해서도 충분히 봉사할 수 있다는 점을 말해 주고 있다.
 
여행을 통해 알게 된 어떤 여성은 동남아국가를 여행할 때면 자신의 짐만큼이나 많은 양의 학용품을 별도로 꾸린다. 아직도 1달러, 1달러를 외치며 외국 여행객을 쫓아다니는 현지 아이들에게 돈 대신 주고자 해서다. 
 
그의 말씀은 불쌍하다고 돈을 주면 그들을 영원히 거지로 살게 하는 일이지만 학용품을 주면 그들에게 공부하는 분위기를 줄 수 있으니 그게 더 나은 기부라는 얘기다. 소위 생선을 주기보다는 생선 잡는 방법을 가르치는 게 낫다는 논리다. 전적으로 공감한다.
 
엄홍길 대장은 봉사활동으로 해외여행을 자주 떠난다. 그가 여행으로 에베레스트 산 환경정화 활동을 했다든가, 히말라야의 오지마을에 학교를 세워주기 위해 여행을 떠난다든가, 혹은 불우청소년에게 호연지기를 키워주기 위해 동반산행을 한다든가 하는 일은 모두 취미와 여가와 본인이 즐기는 여행을 통해 봉사하는 행위이다.
 
여행경비중 일부를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부하자고 나선 차마고도에서 일행들의 모습. 발룬투어리즘의 일종이다. [사진 한익종]

여행경비중 일부를 불우이웃돕기 성금으로 기부하자고 나선 차마고도에서 일행들의 모습. 발룬투어리즘의 일종이다. [사진 한익종]

 
발룬투어리즘이란 용어가 있다. 봉사의 발룬티어와 여행이라는 투어리즘을 합친 용어다. 쉽게 표현하면 여행을 통한 봉사이다. 내 본업은 여행업이다. 해외여행을 자주 하는 편인데, 어느 시점부터 일행과 함께 하는 해외여행 시에는 현지 공항을 출발하기 전 일행들에게서 외국 동전을 모두 걷는다.
 
어차피 한국 들어가서는 사용할 수 없는 동전이니 불우어린이들을 위한 기부금으로 쓰겠다는 취지에서이다. 많은 사람이 흔쾌히 주머니를 비운다. 이 또한 일종의 발룬투어리즘 아닌가.
 
여가선용이 꼭 자신만을 위해서 필요한 것은 아니다
최근 통계청의 조사에 의하면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가가 생기면 하고 싶은 일이 여행·관광과 자기계발, 문화예술관람, 스포츠 순이다. 유심히 살펴보아야 할 점은 함께하는 활동보다는 자기만의 활동을 선호한다는 점이다.
 
내가 강의를 나가는 어느 기업의 생애재설계과정 중 여가활동과 관련한 강좌를 보면 여행과 사진찍기이다. 물론 여행작가를 초빙해 여행을 통한 여가선용에 대해, 사진작가를 초빙해 사진 잘 찍는 방법 등에 대해 강의를 듣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모 기업의 생애재설계과정에서 여가와 봉사, 그리고 인생후반부의 삶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모습. [사진 한익종]

모 기업의 생애재설계과정에서 여가와 봉사, 그리고 인생후반부의 삶에 대해 강의하고 있는 모습. [사진 한익종]

 
그런데 내 생각은 조금 다르다. 인생후반부 여가는 진정 자신이 좋아하고 즐길 수 있는 일, 거기에 사회의 일원으로서 자존감을 이어나가는 일, 인생후반부 영위할 수 있는 직업과의 연계라는 관점에서 여가와 일이 함께 될 수 있는 것을 준비하는 게 좋지 않을까 생각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여가가 생긴다면 하고 싶은 일 1위가 관광·여행이니 여행과 관광과 관련된 봉사활동에 참여해 보고 자신만의 여행 관련 봉사를 해 보는 건 어떨까? 이거야말로 일거양득 아닐까?
 
산을 좋아해 귀촌한 뒤 산불감시 요원으로 매일 산을 찾는 사람을 화천의 산에서 만난 적이 있다. 내가 만들어 인솔하는 걷기 봉사모임이 있다. 회원들은 한 달에 한 번 모여 걸으며 건강, 환경보호, 관광, 기부 봉사를 한 번에 하게 된다. 자신의 취미와 여가를 일종의 발룬투어리즘으로 승화시킨 훌륭한 일이라고 회원들에게 칭찬을 아끼지 않는다.
 
여행과 봉사, 여행을 즐기면서도 봉사할 수 있는 일은 얼마든지 있다. 여행을 통한 봉사가 뭐 얼마나 효과적이고 성과가 있느냐고 반문하는 이들이 있다. 달을 쳐다보라고 가리켰더니 손가락 끝만 본다고 한탄한 기업 총수가 계셨다. 성과도 중요하지만 정작 중요한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일을 혼자 하지 않고 함께 하는 계기를 만든다는 것, 내가 좋아하는 일을 통해 이웃과 사회에 기여할 수 있다는 뿌듯함을 갖는 것이 인생후반부 무척 중요한 일이다.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immagic59@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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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익종 한익종 푸르메재단기획위원 필진

[한익종의 함께, 더 오래] 봉사는 자기애의 발현이다.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는 자만이 남에게 봉사할 수 있다. 사람은 나이가 들수록 사회적 연대가 줄면서 자존감이 떨어지는데 봉사는 나를 필요로 하는 대상을 찾아, 내 존재를 확인하게 해준다. 내 존재를 확인하고 나를 사랑할 수 있는 것이 봉사다. “봉사하라, 봉사하라! 오래 가려면 함께 하자”고 외치는 필자의 봉사 경험을 통해 봉사가 어렵고 거창한 것이라는 편견을 버리고 새로운 인연을 만들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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