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항공기 비즈니스석, 마일리지 다 털어 이용해보니

중앙일보 2018.12.24 11:00
[더,오래]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9)
50인승 소형 항공기 내부. 다소 좁은 느낌은 있지만 쾌적했고 비행 도중에도 안정감이 느껴졌다. [사진 박헌정]

50인승 소형 항공기 내부. 다소 좁은 느낌은 있지만 쾌적했고 비행 도중에도 안정감이 느껴졌다. [사진 박헌정]

 
작은 비행기로 제주에 왔다. 한 신설 항공사가 50인승 소형기를 운항한다고 해서 호기심이 발동했다. 작아도 아주 작아서 무서울 정도로 흔들리는 비행기 아닐까 생각했는데 꽤 크고 안정감도 있었다.
 
기체가 작으니 3열 배치였고 창가 자리는 한 쪽 발 놓는 곳이 둥그렇게 되어 약간 불편했다. 그것만 빼면 흔들리지도 않았고 기내 서비스나 승무원들의 업무시스템도 기존 대형항공사와 똑같았다. 이 회사는 저비용 항공사(LCC)가 아니란다. 기대했던 귀엽고 뒤뚱거리는 꼬마 비행기 여행은 멀어졌지만 앞으로 상용할 선택지는 하나 더 늘어난 셈이다.
 
저비용항공(LCC)이 많이 생겨 내게도 항공여행이 일상화되었다. 신규 LCC의 시장 진입에 대해 공급과잉을 우려하지만 안전만 보장된다면 시장의 판단에 맡겨야 하지 않을까. [사진 박헌정]

저비용항공(LCC)이 많이 생겨 내게도 항공여행이 일상화되었다. 신규 LCC의 시장 진입에 대해 공급과잉을 우려하지만 안전만 보장된다면 시장의 판단에 맡겨야 하지 않을까. [사진 박헌정]

 
나는 저비용 항공사를 좋아한다. 잦은 지연, 어수선함, 비좁은 좌석 같은 것은 피곤하지만 저가항공들 덕분에 항공여행이 일상화되었다. 제주도를 좋아해 그동안 50번 넘게 오가며 부족함 없이 힐링했다. 처음 비행기를 타봤던 1989년 당시 제주 편도요금이 4만5000원, 그러나 요즘은 3만원이면 된다. 몇 년 전에는 아내와 왕복 4만원도 안 되는 비용에 다녀왔다. 그 정도면 강남역에서 용인 정도 택시할증요금 아닐까. 티켓값은 편도 4800원, 내 평생 가장 놀랍던 ‘득템’이었다.
 
물론 저가항공만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나의 항공 취향은 말 그대로 ‘잡식성’이라 저가항공은 싸서 좋고, 대형항공사(FSC) 중 국적기는 편해서 좋고, 외국항공은 이국적이라 좋다. 그 반대편의 부정적인 면을 보지 못하는 것은 사람을 너그럽고 붕 뜨게 만드는 여행의 힘 덕분이다.
 
저가항공의 이벤트 티켓을 잡는 행운이 찾아왔다. 제주까지 두 명 왕복 요금이 39,600원이었다. 제반 비용 제외한 1인 편도요금은 4,800원. [사진 박헌정]

저가항공의 이벤트 티켓을 잡는 행운이 찾아왔다. 제주까지 두 명 왕복 요금이 39,600원이었다. 제반 비용 제외한 1인 편도요금은 4,800원. [사진 박헌정]

 
그런데 여행을 준비할 때 가장 신경 쓰이는 것은 비행기 표 구매다. 여행의 핵심은 공간의 이동이니 이동시간에 느끼는 묘한 즐거움도 중요하고 단 한 번의 이동에 큰 비용이 지출되니 싸면서 좋은 표를 구하는 것이 기분 좋은 여행의 시작이다. 그런데 ‘싼 게 비지떡’이라는 말이 가장 실감 나는 것 역시 비행기 표였다.
 
맛없는 비지떡이라도 실컷 먹어보고 싶어 무조건 싼 티켓만 찾던 때도 있었다. 역시 ‘싼 게 비지떡’이었다. 취소나 일정 변경은 물론, 마일리지 적립, 스톱 오버, 좌석 업그레이드가 안 되고 심지어 수하물까지 제한할 때는 정말 치사하다는 생각도 들었다.
 
경유지에서 초주검이 된 채 긴 시간을 보내거나, 새벽이나 자정에 도착해 택시비가 더 나올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도 전혀 생각지도 못한 요상한 계절 한가운데 내려주고 떠나가는 비행기…. 비행기 표에는 이미 전문가들이 수많은 요소를 반영해놓은 정확한 시장가격이 형성되어 있었다.
 
비즈니스석에도 몇 번 타봤다. 회사 임원들이 비즈니스석 타고 출장 다니는 게 너무 부러워 신용카드와 연계해서 열심히 모은 마일리지를 털어 몇 번 타봤고, 국내 마케팅을 확장하려는 외국 항공사의 특가상품도 이용해보았다. 유럽까지 규정요금은 700만~800만원, 시중 판매가격은 200만~300만원 정도인 것 같았다. 일등석은 1200만원이라고 한다.
 
비즈니스석에서 받아든, 테이블보 깐 근사한 코스요리. [사진 박헌정]

비즈니스석에서 받아든, 테이블보 깐 근사한 코스요리. [사진 박헌정]

 
비즈니스석 경험은 짜릿했다. 일반석 요금의 3~4배이지만 품격, 등급 같은 말이 붙으면 사람의 마음이 요동친다. 참 묘하다. 그 서비스를 정리해보면 기내식은 테이블보 깔고 사기 접시에 여러 와인과 치즈, 스테이크처럼 고급 음식을 정성스레 서빙해주었다.
 
탑승 전에 라운지에서 먹을 만한 건 별로 없는 샐러드바를 이용하고, 집에서 질리도록 먹던 라면을 1만m 상공에서 부탁해서 얻어먹을 수 있다. 처음에는 라면 먹으면 기내식 먹을 자격이 상실되는가 싶어 아무 소리도 하지 않았고, 그다음부터는 좀 너절하다는 생각이 들어 그만두었다.
 
짐가방에 신분을 나타내는 표식을 붙여주고 탑승구에서 다른 이들의 시선을 못 본 척하며 먼저 탑승한다. 아, 비행 전에는 사무장이 손님한테 다가와 일일이 인사한다. 인사받으면서도 ‘과연 이게 무슨 인연인가?’ 싶다.
 
너무 과도한 친절 때문에 손님이 자기가 산 상품의 범위를 착각하지는 않을까, 잊을 만하면 나오는 기내 진상 승객 뉴스도 그것 때문 아닐까. 그런데 몇 번 이용하고 보니 그 서비스라는 것도 거기에서 거기였다. 만족감은 저하되고 반대로 내 분수를 넘는다는 자각이 되었다. “비즈니스 대신 이코노미석에서 열 시간만 버티면 현지 한 달 체류 비용인데...” 현실감이 느껴졌다.
 
50인승 소형항공기에서 제공해 준 앙증맞은 간식과 커피. 제주까지 2만 원대 요금이었다. [사진 박헌정]

50인승 소형항공기에서 제공해 준 앙증맞은 간식과 커피. 제주까지 2만 원대 요금이었다. [사진 박헌정]

 
여행 비용, 그 가운데 항공 비용에 대한 생각은 갈팡질팡하기 쉽다. 어떨 때는 ‘이동만 하면 되지’, 어떨 때는 ‘좀 편하고 격조 있는 여행을...’, 나 자신도 두 마음을 갖는다. 항공여행의 본질은 속도와 안전이지만 거기에 서비스 요소가 너무 많이 들어가, 때로는 그 자체가 즐거움의 대상일 수도 있어서 그런 것 같다.
 
그래서 얻은 결론은 내 주관과 소신으로 기준을 마련해두고 선택하는 것이다. 가령 유럽은 왕복 100만원, 동남아는 50만원, 제주도는 10만원을 기준으로 그 이내에서는 쾌적한 여행을 위해 비상구 좌석 구매, 수하물 추가, 기내 유료서비스 등의 부대비용은 미련 없이 지출하기로 했다.
 
중요한 건 밸런스다. 상대적 기준(여행을 너무 구질구질하게 하려면 뭐 하러 하나?)과 절대적 기준(내 분수를 넘어가면 안 되지)을 잘 버무려야 한다. 항공권 이야기만 나오면 꼭 염장 지르는 사람이 등장한다. 아무리 싸고 좋은 항공권을 구매해도 더 싸게 구매했다거나 무료 업그레이드 받았다며 김 빼는 사람들 말이다. 그래도 흔들리지 말자. 그건 그 사람의 여행이고 나는 내 여행을 떠나야 하니까.
 
박헌정 수필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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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헌정 박헌정 수필가 필진

[박헌정의 원초적 놀기 본능] 25년간의 회사생활을 정리하고 50세에 명퇴금 챙겨 조기 은퇴해서 책 읽고, 글 쓰고, 여행하는 건달이자 선비의 삶을 현실화했다. 은퇴 후 도시에 뿌리 박혀버린 중년의 반복적이고 무기력한 삶에 저항하기로 했다. 20대는 돈이 없어 못하고, 30-40대는 시간이 없어 못하고, 60대는 힘과 정보가 없어 못하던 일들, 꿈만 같지만 결코 꿈이 아닌 현실이 되어야 할 일들, 50대의 전성기인 그가 그 실험에 도전하고 그 과정과 결과를 인생 환승을 앞둔 선후배들과 공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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