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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이 먹었던 삼치 구이는 '진짜 삼치'가 아니다

중앙일보 2018.12.24 01:00
삼치는 겨울 남도 갯마을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다. 갯마을에서는 길이 1m, 몸무게 3㎏가 넘어야 '삼치'로 부른다. 우리가 흔히 먹는 손바닥만한 삼치는, 삼치의 아종인 '고시'다. 김경빈 기자

삼치는 겨울 남도 갯마을에서 맛볼 수 있는 별미다. 갯마을에서는 길이 1m, 몸무게 3㎏가 넘어야 '삼치'로 부른다. 우리가 흔히 먹는 손바닥만한 삼치는, 삼치의 아종인 '고시'다. 김경빈 기자

감히 말한다. 당신은 삼치 맛을 모르는 사람이다. 어제만 해도 고소한 삼치구이 반찬에 밥 한 그릇 뚝딱 비웠는데 도대체 무슨 소리냐고 반문할 수도 있다. 나 역시 그랬다. 단단하고 담백하고 고소한 그 생선을 삼치로 알고 먹어 온 육지 사람이었다.  

삼치의 고장 거문도의 별미 삼치회
구이로 즐기는 생선은 삼치 새끼 '고시'
갯사람은 길이 1m 넘어야 삼치 대접
부드럽고 기름진 맛…돌김과 찰떡궁합

정확히 얘기하자면, 우리가 먹은 삼치는 삼치의 새끼 ‘고시’다. 몸길이 30㎝에 몸무게 600~800g 정도 나가는 어린 삼치다. 반면 갯마을에서는 고시와 삼치를 구분한다. 키가 1m를 훌쩍 넘고 몸무게도 최소 3㎏ 정도 나가는 것을 진짜 삼치로 부른다. 훤칠하게 뻗은 삼치를 본 적 없는 우리야 고시와 삼치가 크기 말고 별반 다를 게 없다고 지레짐작하지만, 고시와 삼치는 다른 식재료다. 올챙이가 개구리와 같지 않고 병아리가 닭과 다른 것처럼 말이다.  
거문도 풍경. 거문도에서는 삼치를 낚시로 낚는 배 40척이 있다. [중앙포토]

거문도 풍경. 거문도에서는 삼치를 낚시로 낚는 배 40척이 있다. [중앙포토]

본 적도 먹어본 적도 없는 삼치를 만나기 위해 12월 셋째 주 남도의 끝자락 거문도로 향했다. 전남 여수에서 2시간 배를 타고 들어가야 하는 섬 거문도에서는 낚시로 삼치를 낚는 고깃배 40척이 있다. 겨울철 거문도수협에서 거래되는 삼치는 적게는 하루 200㎏, 많게는 1t에 달한다.
“전남 여수나 제주도에서도 삼치를 잡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안강망(자루 모양의 그물)으로 낚는 게 대부분이죠. 한 마리 한 마리 정성스럽게 낚시로 길어 올린 거문도 삼치와 같을 수가 없죠.”  
거문도가 속한 여수시 삼삼면사무소 강성수(60) 면장은 전국의 삼치 중에서 거문도 삼치를 윗길로 치는 이유를 설명했다. 거문도에서 나고 자란 삼삼면사무소 박인호(53) 부면장은 아예 거문도 삼치는 맛도 다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삼치는 남해뿐만 아니라 서해, 동해에서도 나요. 삼면에서 난 삼치는 눈으로 봐서는 다를 게 없어요. 근데 거문도 사람들은 거문도 삼치를 구분해요. 맛을 보면 짙은 바다 향이 납니다. 구로시오(黑潮) 난류의 영향을 받는 거문도 바다에서 난 삼치는 지방 함유량이 많아 더 부드러워요. 삼치가 봄·여름 산란기를 앞두고 몸집을 불리는 겨울철이야말로 삼치 제철이죠.”
 삼치는 양식이 불가능하고, 잡자마자 죽는다. 거문도와 일부 갯마을에서만 회로 맛볼 수 있다. [중앙포토]

삼치는 양식이 불가능하고, 잡자마자 죽는다. 거문도와 일부 갯마을에서만 회로 맛볼 수 있다. [중앙포토]

거문도 사람들이 입에 침이 마르게 자랑하는 삼치 맛이 궁금해 거문도항구 근처 횟집으로 한 달음 달려갔다. 거문도는 3개 섬 고도·서도·동도로 이뤄졌는데 가장 번화한 섬이 항구를 끼고 있는 고도다. 고도에는 여행객을 상대하는 횟집 30여 군데가 있는데 삼치를 다루지 않는 집이 없다. 한데 거문도에서도 삼치를 만나기가 쉽지 않았다. 며칠째 파고가 높은 탓에 거문도 횟집에도 참치 씨가 말랐다. 수소문 끝에 ‘번지횟집식당’에서 거문도 삼치를 만날 수 있었다. “오늘 날이 좋지 않아서 해경이 어업 금지령을 냈는데, 해경이 막기 전에 한 어부가 3마리 낚아왔대.”
거문도 별미 삼치회.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김경빈 기자

거문도 별미 삼치회. 고소한 맛이 일품이다. 김경빈 기자

식당 주인 김현임(62)씨는 아쉬움이 섞인 목소리로 “식구들과 먹으려고 어부에게 딱 한 마리 받아놨던 것”이라며 육지 손님에게 삼치를 내줬다. 김씨는 당일 아침 잡힌 삼치를 가지런하게 회로 떴다. 이 메뉴가 바로 신선한 삼치를 수급할 수 없는 곳에서는 구경도 못 하는 ‘삼치회’였다. 어디서부터 어떻게 손을 댈지 몰라 주춤대고 있는데, 문화해설사 마광현(69)씨가 거문도식 삼치회 먹는 법을 일러줬다. 우선 돌김을 한장 손바닥에 깔고, 쌀밥을 김 위에 얇게 편다. 그 위에 초간장에 푹 찍은 삼치회 한 점을 올려 함께 맛본다. 삼치회는 씹을 것도 없이 입속에서 사르륵 녹아내렸다. 참치회나 방어회보다 더 고소했다.  
돌김에 싸먹는 삼치회. 양보라 기자

돌김에 싸먹는 삼치회. 양보라 기자

느지막이 삼치회 맛에 눈을 뜨고 체면 차릴 것 없이 연신 젓가락질을 했다. 갈치속젓을 넣은 거문도식 김치에 싸 먹기도 하고, 여수산 갓김치를 곁들이기도 했다. 감칠맛을 뜻하는 전라도 방언 ‘게미’가 바로 이런 것이구나, 무릎을 탁 쳤다. 거문도에서는 어느 횟집을 가도 삼치회 가격이 같다. 작은 것은 3만원, 큰 것은 5만원이다. 큰 것은 삼치회 2㎏ 정도로 어른 셋이 배부르게 먹을 양이었다.
삼치는 구이나 조림으로만 먹는 것이라고 알아온 지난 세월이 아쉽다고 말하자, 마 해설사는 “거문도 사람들도 삼치회 맛을 알게 된 지 30년도 채 되지 않는다”는 얘기를 들려줬다. 90년대 후반까지 거문도에서 잡히는 삼치는 죄다 일본으로 수출됐던 터라 거문도에서도 상처가 있어 상품성이 떨어지는 삼치를 겨우 맛봤단다. 삼치는 신선도가 조금만 떨어져도 회로 뜨지 못하니 거문도에서도 하릴없이 삼치를 굽거나 조려야 했다. 중국산 저가 삼치가 일본에 공급되면서 일본의 거문도 삼치 수요가 줄었고, 대신 거문도산 삼치의 90%는 여수로 건너간다.  
회를 뜨고 남은 삼치 껍질과 대가리는 찌개로 끓안다. 김경빈 기자

회를 뜨고 남은 삼치 껍질과 대가리는 찌개로 끓안다. 김경빈 기자

이튿날 아침이 되자 바람이 잦아들고, 거문도 앞바다도 잠잠해졌다. 이날 새벽에 잡은 삼치가 진즉 여수로 실려 갔다는 거문도수협 직원의 말을 듣고 삼치의 여정을 따라 여수수산시장으로 향했다. 쏨뱅이에 갈치에 통통한 갯것이 가득 찬 어물전은 신바람이 났다. 거문도에서 올라온 삼치는 겨울철 수산시장의 활기를 북돋는 일등공신처럼 보였다. 점포마다 널찍한 얼음판 위에 사람 키 절반에 달하는 큼직한 삼치를 내놨다. 30년간 거문도 삼치를 다뤘다는 사랑이네 여순진(60) 사장이 능숙한 칼질로 삼치회를 떴다.  
깔끔하게 정비된 여수수산시장. 양보라 기자

깔끔하게 정비된 여수수산시장. 양보라 기자

삼치회 뜨는 모습. 4㎏ 짜리 삼치를 잡으면 삼치회 큰 사이즈 두 그릇이 나온다. 양보라 기자

삼치회 뜨는 모습. 4㎏ 짜리 삼치를 잡으면 삼치회 큰 사이즈 두 그릇이 나온다. 양보라 기자

여수수산시장 2층에서 상차림 비 7000원(2인)을 내면, 시장에서 갓 뜬 회를 맛볼 수 있다. 거문도 삼치회 가격은 매일 달라지는데, 보통 거문도 수협에서 거래된 경매가에 20%를 붙여 판다. 이날 여수수산시장에서 삼치는 1㎏에 1만원에 팔렸다. 
“다루기 가장 어려운 고기가 삼치야. 날이 조금만 따뜻해도 삼치살이 물러서 손가락 한 마디 정도로 두껍게 썰어야 해. 겨울에는 살이 단단해서 얇게 썰 수 있지. 회가 얇아야 입에서 더 살살 녹지. 겨울 삼치 맛을 못 잊어서 해마다 찾아오는 손님도 많아.”  
여씨가 썬 삼치회는 곧장 겨울 삼치회를 목 놓아 기다린 누군가의 식탁으로 향했다. 삼치회 맛을 알아버렸으니, 찬바람이 불면 입안에 부드럽게 녹아내리던 기름진 그 맛을 떠올리며 입맛을 다시게 될 것 같았다.
 
거문도=양보라 기자 bora@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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