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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진국 칼럼] 반복하는 정권, 전진하는 역사

중앙일보 2018.12.24 00:04 종합 35면 지면보기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한 해가 저물어간다. 5년 단임 제왕적 대통령제에서 2년 차가 중요하다. 무언가를 해내기에 가장 좋은 때다. 그런데 희망이 넘치는 일보다 아쉽고, 안타까운 일이 더 많은 한 해였다.
 

아쉬움 남기고 저무는 2년차
적폐 청산, 사람보다 제도 바꿔야
역사 반복 넘어서 전진할 수 있어
새해엔 귀 열고, 손 잡아 함께 가길

여론조사 결과 그대로다. 지난주 한국갤럽 조사는 ‘데드 크로스’를 지났다고 한다. 문재인 대통령 직무에 대해 부정평가(46%)가 긍정평가(45%)를 처음 앞지른 것이다. 절대 떨어지지 않을 것 같았는데, 세상에 변하지 않는 건 없나 보다.
 
심지어 핵심 지지층인 20대 남성이 반란을 일으켰다. 리얼미터 주간 조사로는 전체 남녀 연령대 가운데 가장 낮은 29%다(이상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 홈페이지 참고). 여론조사가 모든 걸 말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만 체감지수와 그리 다르지 않다.
 
문재인 대통령은 “우리 정부의 가장 중요한 과제가 적폐청산”이라고 말했다. 사람을 바꾼 것은 알겠는데, 과거의 낡은 관행이 고쳐졌는지는 모르겠다. 특히 수사는 과거 정부마다 반복한 정치보복으로 오해받을 만큼 거칠다. ‘별건(別件)’에서 ‘별건’으로 먼지를 털어도 번번이 영장이 기각되는 망신도 당했다. 적폐의 분명한 정의, 뚜렷한 명분을 세우지 못했다. 부처마다 적폐청산위를 설치해 이전 정부 사람을 쫓아내는 것 외에 무슨 성과를 거뒀는지 모르겠다.
 
파격적인 대법원장 교체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과거의 틀 그대로다. 또 다른 세력의 독점과 갈등, 신뢰도 추락만 남았다. 남북 정상의 만남 그 이상 어떤 확신도 주지 못한 채 답답한 국면이 이어지고 있다. 이러다 남는 게 있을까 걱정이다. 미국과 일본, 중국과의 관계만 불안하다.
 
경제로 눈을 돌리면 더 할 말이 없다. 말이 앞선다. 갑자기 폭풍처럼 내달리다 주춤주춤, 우왕좌왕하는 정책들만 즐비하다. ‘탈원전’, 근로시간 단축, 최저임금 상향조정…. 방향은 공감하지만, 전략이 없다. 저질러 놓고 감당을 못 한다. 세금을 쏟아부어도 일자리 늘리는 데는 실패했다. 이제 그마저도 자신감을 잃었다. 국민연금 개혁안은 네 가지를 던져놓고 선택하라고 한다.
 
김진국칼럼

김진국칼럼

문 대통령은 지난 6월 수석비서관들에게 “이제 1년의 경험을 가졌으니 처음 해 보는 일이어서 서툴 수 있다는 핑계가 더는 통하지 않는다”고 했다. 그러나 ‘무능’에 ‘무책임’까지 더하는 건 아닌가.
 
문 대통령은 6월 지방선거 대승에도 불구하고 “정말 등골이 서늘해지는, 등에서 식은땀이 나는 두려움”을 느낀다고 말했다. “우리 정치사를 보더라도 앞의 선거에서의 승리가 그다음 선거에서 아주 냉엄한 심판으로 돌아왔던 경험들을 많이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 “역대 정부를 보더라도 2년 차, 3년 차에 도덕성이라는 면에서 늘 사고들이 생기곤 했다”고 말했다. 실제로 데자뷔가 많다.
 
박근혜 대통령도 2년 차 말에 데드 크로스를 경험했다. 한번 데드 크로스를 거치면 뒤집은 경우가 드물다. 이명박 대통령은 형님 이상득 의원의 ‘영포라인’ 공직자들이 민간인을 사찰한 사실이 폭로돼 파문이 일었다. 박근혜 정부에서는 ‘비선 실세 정윤회’에 관한 민정수석실 정보보고서가 공개됐지만, 힘으로 틀어막았다. 험한 일을 당하지 않게 미리 막을 기회를 놓쳤다.
 
안전사고들도 이 시기에 많이 터졌다. 자신감이 생기고, 권력을 즐기기 시작한다. 측근들이 사고 치고, 계파 갈등이 벌어진 시기다. 김대중 정부에서는 옷 로비 사건, 진승현 게이트가 터졌다. 이명박 정부에서는 친박 세력과의 갈등으로 세종시 수정안이 부결되고, 친이 세력 내에서도 분란이 일었다. 박근혜 대통령이 김무성 대표, 유승민 원내대표와 갈등을 빚은 것도 2, 3년 차 때다.
 
청와대 측근들의 음주운전, 민간인 폭행, 사찰 의혹…. 제조업을 살리자는 취지였겠지만 “물 들어올 때 노 저어라”는 문 대통령의 말은 일반의 인식과는 너무 큰 괴리를 느끼게 했다. 김태우 전 청와대 특감반원은 각 부처 공무원에게 전화로 “청와대가 독주하느냐”고 조사했다고 주장했다. 괴리감의 뿌리가 여기 있는 게 아닌지 의심된다.
 
대통령의 ‘혼밥’ 논란은 “독대가 필요합니까”라는 박근혜 대통령의 반문을 떠올리게 한다. 정권을 저주하며 못 되기를 비는 사람도 있다. 그렇지만 안타까워 충언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믿는다. 설령 정치적 반대자라도 들어주고 설득해 같이 갈 수는 없을까.
 
『삼국지』는 ‘분구필합 합구필분(分久必合 合久必分)’이란 말로 시작한다. 정권의 부침은 되풀이된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것으로는 민주주의의 발전을 설명하기 어렵다. 사람이 아니라 낡은 제도를 바꾸면 느려도 앞으로 나갈 수 있다.
 
김진국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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