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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의도 인싸] 국회의원 갑질 논란 왜 계속되나

중앙일보 2018.12.23 17:12
 ‘여의도 인싸’는 국회 안(inside)에서 발생한 각종 이슈와 쏟아지는 법안들을 중앙일보 정치팀 2030 기자들의 시각으로 정리합니다. ‘여의도 인싸’와 함께 ‘정치 아싸’에서 탈출하세요.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 [연합뉴스]

노무현 대통령 시절 청와대 비서관, 봉하마을 대표이사 등을 지낸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김해을)이 ‘공항 갑질’ 논란에 휩싸였습니다. 지난 20일 저녁, 김포공항에서 김해행 비행기를 탑승하려던 김 의원과 공항 직원 사이에 실랑이가 있었습니다. 직원이 신분증을 보여달라고 하자 김 의원은 평소처럼 스마트폰 투명 케이스 안에 들어 있는 신분증을 보여줬다고 합니다. 직원이 신분증을 꺼내서 보여달라고 하자 김 의원은 “왜 지금까지 안 그러다가 갑자기 왜 이러는지 이해가 안 된다”며 거절했고, 공항 직원은 “규정대로 하는 것”이라고 맞섰습니다.  
 
김 의원의 해명을 바탕으로 이후 대화내용을 재구성해 봤습니다.  
▶김 의원 : “규정대로라면 왜 지금까지는 한 번도 그렇게 안 했나.”
▶공항 직원 : “그때는 혼잡스러워서 안 했고, 지금은 그렇지 않아서 규정대로 하는 거다.”
▶김 의원 : “진짜 근거 규정이 있으면 제시해보라. 필요 이상의 요구는 시민들에게 오히려 갑질하는 것 아닌가.”
▶공항 직원 : (매뉴얼에 규정이 없다는 걸 확인한 후) “상부 지시다.”
▶김 의원 : “규정에 없는데 누가 그런 지시를 하나. 직접 확인해볼 테니 책임자를 불러 달라.”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김포공항 갑질’ 의혹에 대한 해명글. [사진 김정호 의원 페이스북]

김정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이 지난 22일 자신의 페이스북에 올린 ‘김포공항 갑질’ 의혹에 대한 해명글. [사진 김정호 의원 페이스북]

이 논란의 단초가 된 한국공항공사 업무 매뉴얼을 보면 “승객이 오면 인사를 한 뒤에 탑승권과 신분증을 제출토록 안내한다. 두 손으로 탑승권과 신분증을 받고 육안으로 일치 여부를 확인하되, 위조 여부 등도 확인해야 한다”고 돼 있습니다. 공항 관계자들은 “신분증을 빼서 보여주는 게 더 일반적”이라고 하고, 전문가들도 위조여부를 확인해야 할때는 ‘신분증을 꺼내줄 것을 요구할 수 있다’고 해석합니다. 하지만 김 의원 입장에선 이 매뉴얼 어디에도 승객에게 신분증을 꺼내어달라고 요구하라는 내용이 없는데다 해당 직원이 “규정대로→상부지시”로 말을 바꾼 게 화가났던 모양입니다. 김 의원은 “시민의 입장에서 상식적인 문제 제기와 원칙적인 항의를 한 것”이라며 “이 과정에서 언성이 다소 높아진 건 사실이지만 욕설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무엇보다 이 사건이 단순한 해프닝에 그치지 않고 갑질 논란으로 번진 건 김 의원이 해당 직원들의 사진을 찍고, 한국공항공사 최종 책임자에게 전화를 거는 등 국회의원 직위를 활용했다고 볼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김 의원은 한국공항공사를 감사하는 국회 국토교통위원 소속입니다. 그가 이런 사회적 지위를 갖고 있지 않았다면, 논란이 되지 않았을 수도 있는 일입니다. 모든 의원들이 다 김 의원과 같은 생각을 하고 있는 것도 아닙니다. 김포공항을 자주 이용하는 한 민주당 의원에게 똑같은 상황이었다면 어떻게 했을 것 같은지 물었습니다. “저는 항상 신분증을 다 꺼내서 보여준다. 케이스 안에 있는 신분증을 꺼내달라고 하면 당연히 꺼내주는게 맞다”는 답이 돌아왔습니다. 민주당은 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김 의원의 갑질 의혹에 대해 논의할 예정입니다.  
 
야당은 “특권의식에 사로잡혀 공항 근무자들에게 상처 준 행태는 비난받아 마땅하다. (윤영석 자유한국당 수석대변인)” “국회의원 배지를 달고 국토위 의원인데 신분증을 추가로 요구해서 화가 났다는 편이 솔직하겠다.(김정화 바른미래당 대변인)” “불쾌하고 부당한 대우를 받았다고 해서 공항공사 사장에게 전화를 할 수 있는 국민은 매우 극소수. ‘특권’과 ‘반칙’이 맞다.” (정호진 정의당 대변인) 등의 비판 논평을 쏟아냈습니다. 특히 하태경 바른미래당 최고위원은 “어떤 시민이 신분증 꺼내 보여달라는데 직원에게 호통을 치고 사장에게 항의전화까지 하느냐”며 “공항에서 갑질 폭언을 계속하면 공항경찰이 제압ㆍ체포할 수 있게 ‘공항갑질폭언 처벌법(항공보안법 개정안)’을 발의하겠다”고 나섰습니다.  
 
권석창 당시 국회의원(맨 오른쪽)이 지난 1월 4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권석창 당시 국회의원(맨 오른쪽)이 지난 1월 4일 충북 제천 스포츠센터 화재 참사 현장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참사 진상규명과 책임자처벌을 촉구하고 있다. [뉴스1]

 
다만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은, 야당도 이른바 “나 국회의원인데” 논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는 겁니다. 선거법 위반 혐의로 배지를 반납한 권석창 전 자유한국당 의원은, 의원 신분이던 지난해 12월 경찰의 제지에도 불구하고 화재 현장에 들어가서 스마트폰으로 사진을 찍어 지탄을 받았습니다. 충북 제천의 한 스포츠센터에서 불이 나 29명이 목숨을 잃은 사건이었고, 권 전 의원은 당시 해당 지역구 의원이었습니다. 경찰이 현장 검증이 끝나지 않았다며 출입을 막자 권 전 의원은 충북경찰청장에게 전화해 “현장 조사 좀 하겠다는데 왜 못 들어가나. 국회의원이라고 밝혔고 배지도 달고 갔다. 국회 재난안전특위에서 어차피 경찰청장을 부를 거다”라고 항의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경찰 출신인 표창원 민주당 의원은 당시 권 의원을 겨냥해 “국회의원은 법 위에 군림하는 존재가 아니다”라고 비판했습니다.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 [뉴스1]

민경욱 자유한국당 의원. [뉴스1]

같은 당 민경욱 의원은 지역구 주민에게 침을 뱉었다는 의혹에 해명하느라 진땀을 빼고 있습니다. 주민 A씨는 최근 버스정류장에서 민 의원이 ‘잘 지내시죠’ 인사를 건네기에 “이번 정부에서는 잘 지내고 있다”고 했더니 그가 반대쪽으로 고개를 돌려 침을 뱉었고 모욕감을 느꼈다는 내용의 글을 인터넷 카페에 올렸습니다. 민 의원은 지난 21일 입장문을 통해 “‘나를 싫어하는 분이구나’ 생각한 후 돌아섰고, 비염이 도져서 코가 나오길래 돌아서서 침을 뱉은 건 맞다. 모욕을 할 거면 침을 뱉어도 앞에서 뱉었을 것”이라고 반박했습니다. 한 정치권 관계자는 “국회의원이 거리에 함부로 침을 뱉는 행위가 경범죄에 해당한다는 걸 모르진 않았을 것”이라며 “오해든 아니든 부적절한 행동이었고 국회의 신뢰를 깎아먹은 것”이라고 비판했습니다.  
 
이 모든게 국회의원 개개인의 입장에선 다소 억울한 일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사소한 말과 행동일지라도 국회의원이라서 더 크게 논란이 되고 비난을 받는 것일 수 있습니다. 하지만 본인의 의도와 상관없이 상대방에게는 ‘갑질’로 받아들여질 수 언행을 조심 또 조심하는 것 역시 국회의원의 숙명이자 책무라는 생각이 듭니다. 세비를 반납하고, 비행기 이코노미석을 타고, 출판기념회를 하지 않는 것 보다 국민들이 더 바라는 것은 진정한 ‘특권 내려놓기’인지도 모릅니다.  
 
김경희 기자 am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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