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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산 다 주고 쓰러지니 전화번호 바꿔 이사 간 자식들

중앙일보 2018.12.23 07:01
[더,오래]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2)

희망과 절망은 한 몸이고, 동전의 양면이다. 누구는 절망의 조건이 많아도 끝까지 희망을 바라보고, 누구는 희망의 조건이 많아도 절망에 빠져 세상을 산다. 그대 마음은 지금 어느 쪽을 향해 있는가? 우리는 매 순간 무의식 속에 희망과 절망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은 눈금 하나 차이지만, 뒤따라오는 삶의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희망도 습관이다. 절망을 극복하게 만드는 희망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최대 원동력이다. 그동안 길 위에서 본 무수한 절망과 희망을 들려드린다. <편집자>

 
벽에 걸린 2018년 12월 달력이 오 헨리의 마지막 잎새 같다. 연말이라 그런지 한 해가 가기 전 얼굴이라도 한 번 더 보자고 가족들이나 지인들 모임도 잦다. 창밖을 보면 겨울바람에 앙상한 나무들이 눈에 들어온다. 나무를 보면 나는 종종 쓸쓸해진다. 오래전 내가 만났던 어느 노부부의 사연이 나무를 보면 떠오르기 때문이다.

느티나무 밑에서 매일 누군가 기다리던 노부부

 
내가 한 주에 두 번씩 트럭에 과일을 싣고 용인으로 장사를 다니던 어느 봄날이었다. 이동 낚시터 근처로 장사를 갔다가 우연히 어떤 노부부를 보았다. 노부부는 항상 마을 느티나무 아래 앉아있었다.
 
과일을 싣고 용인으로 장사를 다니던 어느 날 어떤 노부부를 보았다. 노부부는 항상 마을 느티나무 아래 앉아있었다(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중앙포토]

과일을 싣고 용인으로 장사를 다니던 어느 날 어떤 노부부를 보았다. 노부부는 항상 마을 느티나무 아래 앉아있었다(내용과 연관없는 사진). [중앙포토]

 
그날도 마을회관 느티나무 아래 차를 세우고 과일 사라고 방송을 틀었다. 그때 나이 지긋하신 할아버지 한 분이 손가락으로 한 집을 가리키시며, 할망구가 혼자 있을 테니 그 집에 딸기 한 바구니 가져다줄 수 있냐고 물으셨다. 나는 딸기를 들고 그 집으로 갔다. 낡은 대문 입구로 들어서니 바싹 말라죽은 화분과 녹슨 농기구들이 어수선했다.
 
“계세요?” 한참 뒤 힘겹게 방문이 열렸다. “뉘시유?” “과일 장수인데요. 어느 노신사분이 딸기 가져다 드리라고 하시던데요?” 할머니는 손으로 바닥을 밀며 문 쪽으로 가까이 오셨다. “보다시피 내가 병신이라 걷지를 못해. 우리 집 양반이 읍내 나가면서 보냈나 보네.” 그 모습을 본 나는 딸기를 싱크대로 가져가 깨끗이 씻어 앞에 놓아 드렸다. “할머니, 심심할 때 잡수세요.”
 
처음 두 분과 그렇게 인연이 되었다. 그 후 나는 시간 날 때마다 장사를 마치고 그 집에 잠깐씩 들렀다. 언제부턴가 두 분은 내가 그곳에 장사 가는 요일만 손꼽아 기다린다고 하셨다. “할아버지, 앞으로 제 과일은 별도로 사지 마세요. 그 대신 제가 가끔 뵙고 갈게요. 제가 올 때마다 과일을 사시면 두 분이 너무 부담돼서 제가 불편해요” 했더니 “알았으니 잠깐씩 들러 커피라도 마시고 가요. 자식 같아서 그래” 하셨다.
 
할아버지 부탁으로 딸기 한 바구니를 집에 가져다 드렸다. 집에는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가 계셨다. 나는 가져간 딸기를 씻어 앞에 놓아 드렸다. [중앙포토]

할아버지 부탁으로 딸기 한 바구니를 집에 가져다 드렸다. 집에는 거동이 불편하신 할머니가 계셨다. 나는 가져간 딸기를 씻어 앞에 놓아 드렸다. [중앙포토]

 
그러던 어느 날 할머니는 봄볕이 드는 마루에 앉아 속사정을 털어놓으셨다.
“아기 엄마, 우리 집 양반은 평생 농사꾼으로 살았어. 힘든 삶이었지만 착실하게 살아오는 동안 자식 사 남매 시집·장가들이고 작지만 노후에 쓸 돈까지 조금 남더군…. 그 거면 저승 갈 때까지 애들한테 짐은 안 되겠거니 생각했지.”
 
나는 노점장사로 검게 그을린 손으로 그 할머니 손을 가만 잡아드렸다. 할머니가 가늘게 한숨을 쉬시더니 다시 말씀하셨다.
“그런데 그 후 아들놈이 사업한다고 몇 푼, 사위가 점포 확장한다며 몇 푼, 막내가 아파트 늘려간대서 또 보태고. 그 양반 인생이랑 바꿔온 이 논 저 논 다 팔았지만, 아깝지 않았어. 늘 더 못 주는 게 미안했지.”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가만히 들었다.
“세월이 가면서 논은 다 남의 손에 넘어갔고 빈손이 되었지. 그런데 언제부턴가 이놈들은 점점 소식이 뜸해지더군. 내가 이 꼴로 쓰러졌을 때 다급히 전화해보니 한 놈도 연락이 안 되지 뭐야. 내가 쓰러진 그 날 우리 두 늙은이는 병실에서 밤새 울었지. 한날에 목숨을 끊을까 생각도 했지만, 그놈들도 뭔가 사정이 있겠지 하고 소식 올 때만 기다리며 살고 있어. 아침 먹고 느티나무 아래 앉아 자식 놈들 기다리다 해 떨어지면 하루를 접는 게 일이 돼버렸지…. 
 
그런데 그 후 알게 되었다우. 자식 놈들 모두 전화번호를 의도적으로 바꾸고 이사 가버린 사실을 말이야. 이런 기막힌 내 사정을 세상 누가 믿겠나? 아마 다 거짓말이라 할지도 몰라. 이제 우리 두 늙은이는 자식들을 찾지 않기로 했다우. 다만, 그놈들이 행여 마음이 변해 우리 두 늙은이를 찾아주려나 해서 이렇게 이사도 못 가고 있다우.”
 
할머니는 눈물을 훔쳤다. 밤중에 집으로 돌아와 차에서 내려서는데, 어린 두 남매가 나를 반겼다. “엄마, 카네이션 사러 언제 갈 거야?” 생각해보니 어버이날이 내일이었다. 나는 두 녀석과 꽃을 사러 가면서 용인의 두 분이 생각났다. 그 집에는 오늘도 내일도 카네이션은 피어나지 못할 것 같았다.
 
어버이날, 나는 노부부의 집을 찾았다. 두 분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더니 기뻐 웃으시는데 슬퍼 보였다. 그분들이 낳고 기른 사 남매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중앙포토]

어버이날, 나는 노부부의 집을 찾았다. 두 분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더니 기뻐 웃으시는데 슬퍼 보였다. 그분들이 낳고 기른 사 남매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중앙포토]

 
나는 다음 날 아침 일찍 부모님께 들러 꽃을 달아드리고, 카네이션 두 개를 더 사서 용인으로 트럭을 몰았다. 웬일인지 느티나무 아래 계셔야 할 두 분이 보이지 않았다. 나는 얼른 그 집으로 가 보았다. 기척이 없었다. 너무 조용해서 대문을 밀며 들어갔다.
 
“할머니, 할아버지 저 왔어요.”
“아요, 아기 엄마 왔네. 어서 와. 우리 두 늙은이가 병이 나 누워있네그려.”
하필 어버이날, 두 분은 자리에 누워계셨다. 마음이 먼저 탈이 나신 게 틀림없었다.
 
“어버이날이에요. 축하드려요. 얼른 건강 찾으세요.”
두 분 가슴에 카네이션을 달아드렸더니 기뻐 웃으시는데 슬퍼 보였다. 그분들이 낳고 기른 사 남매는 어디에 있는 것일까? 일주일 후 그 마을에 장사하러 다시 찾아갔다. 두 분은 느티나무 아래서 가장 먼저 나를 반겨주셨다. 기약 없는 기다림의 슬픔을 감추고 밝게 웃으시며, 감기는 이제 다 나았다고 하셨다. 두 분 드시라고 과일 봉지를 건네 드리고 차를 돌리는데 두 분 가슴엔 아직도 내가 드린 카네이션이 달려있었다.
 
나는 평택 쪽으로 화물차를 몰면서 백미러 속으로 멀어져가는 두 노인을 봤다. 두 분의 애타는 기다림이 하루빨리 끝나기를 빌었다. 그리고 몇 년 후 나는 직업이 바뀌었고 핸드폰도 분실해 그분들 소식을 전혀 듣지 못했다. 지금쯤 소식 끊었던 자식들 연락은 오는지 궁금하다.
 
김명희 시인·소설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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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희 김명희 시인·소설가 필진

[김명희의 내가 본 희망과 절망] 희망과 절망은 한 몸이고, 동전의 양면이다. 누구는 절망의 조건이 많아도 끝까지 희망을 바라보고, 누구는 희망의 조건이 많아도 절망에 빠져 세상을 산다. 그대 마음은 지금 어느 쪽을 향해 있는가? 우리는 매 순간 무의식 속에 희망과 절망을 선택하며 살아간다. 그 선택은 눈금 하나 차이지만, 뒤따라오는 삶의 결과는 엄청나게 다르다. 희망도 습관이다. 절망을 극복하게 만드는 희망이야말로 인간이 가진 최대 원동력이다. 그동안 길 위에서 본 무수한 절망과 희망을 들려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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