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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상의 시시각각] 문 정부 유전자엔 산업이 있을까

중앙일보 2018.12.21 00:26 종합 34면 지면보기
이현상 논설위원

이현상 논설위원

문재인 대통령은 수소차에 꽂혀 있다. 지난 2월 경호팀 만류에도 불구하고 현대차 ‘넥쏘’를 기반으로 한 자율주행차에 몸을 싣고 경부고속도로를 달렸다. 10월 프랑스 방문 때는 숙소에서 파리 시내까지 넥쏘를 이용한 뒤 충전하는 모습까지 지켜봤다. 국내외 행사에서 수소 기반 경제 활성화를 언급한 적이 여섯 번이나 된다. 대통령의 관심을 반영하듯 며칠 전 산업부 업무보고는 수소차 보급 확대가 주요 내용이었다. 2022년까지 수소차 6만5000대 보급, 충전소 310곳 설치를 목표로 내걸었다.
 

기업의 이기심을 인정할 때
제대로 된 산업정책 나온다

수소차 생태계 수립은 만만찮은 과제다. 돈이 많이 든다. 현재 넥쏘의 출시 가격은 7000만원 선이지만 구매자 부담은 4000만원이 채 안 된다. 중앙정부와 지자체로부터 최대 3500만원의 보조금이 나오기 때문이다. 수소차 6만5000대 보급에 2조원 이상의 보조금이 든다는 이야기다. 이게 다 세금이다. 충전소 하나 세우는 데는 30억원 정도 든다. 민간이 뛰어들기 버겁다. 그래서 최대 15억원의 설치비를 지원해 준다. 310곳 설치에 세금이 5000억원 가까이 들어간다는 이야기다. 충전소 운영도 문제다. 수소차 6만5000대가 일주일에 한 번씩 충전한다고 치자. 각 충전소에 하루 평균 30대 정도가 찾아온다는 계산이 나온다. 충전소 수지를 맞추려면 최소 100대는 와야 한다는 게 업계 관계자의 말이다. 한 해 수백억원의 보조금이 들어갈 수밖에 없다. 이런 계산을 종합해 보면 최소한의 수소 생태계를 갖추는 데 3조원 가까운 세금이 든다.
 
골치 아픈 계산을 굳이 한 이유는 따로 있다. 올해 현대차는 자사주 매입에 5700억원을 썼다. 자사주 소각에도 9700억원가량 들였다. 실적 악화에도 불구하고 최근 몇 년간 한 해 1조원 가까운 돈을 배당금으로 썼다. 말은 ‘주주 환원’이었지만 엘리엇의 경영권 위협이 없었어도 이랬을지는 의문이다. 경영권을 의식해 미래 투자에 써야 할 돈을 단기 주주 환심을 사는 데 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사주 소각에 들일 돈을 차라리 수소차 충전소 확보에 쓰라”고 노조가 반발할 정도였다.
 
개별 기업을 위해 왜 정부가 나서느냐는 특혜 시비를 하자는 게 아니다. 산업정책은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기업은 경영권 수호에 온통 신경이 가 있고, 그 빈틈을 정부가 메워주느라 세금을 쓰고 있다면? 만일 정부가 지배구조 개선 압박 대신 투기 자본으로부터 경영권 방어를 돕는 정책을 폈다면 상당한 세금을 아꼈을 것이다.
 
현대차뿐만 아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와 올해 자사주를 남김없이 소각했다. 현재 주가로 계산하면 40조원 규모다. 자사주를 소각하면 대주주 지분이 높아진다는 것은 어려울 것 없는 산수 문제다. 지금 삼성은 대주주 지분 0.1%가 아쉽다. 계열 금융사가 보유한 삼성전자 지분을 줄이는 쪽으로 법 개정이 추진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이라는 이름을 내건 정부·정치권의 서슬에 기업은 미래 대신 산수에 매달리고 있다.
 
문 대통령은 산업부 업무보고 자리에서 “산업정책이 없다는 비판에 뼈아픈 자성이 필요하다”고 했다. 뒤늦은 각성이 다행스럽지만 실천이 문제다. 실천의 중심엔 당연히 기업이 있어야 한다. 기업 혁신의 동기는 이윤이고, 그 근원은 이기심이다. 이런 이기심을 인정하고 제대로 결실 맺게 하는 것이 산업정책의 요체다. 정의라는 명분만으로 기업과 기업주를 억지로 분리하는 순진한 발상으로는 제대로 된 정책이 나올 리 없다. “우리 저녁거리는 정육업자·양조업자·제빵업자들의 자비심이 아니라 이들의 이기심에서 나온다.” 애덤 스미스가 묻는다. 문 정부의 유전자엔 애초에 산업이 있는지. 
 
이현상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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