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중앙시평] 미꾸라지와 불순물은 우연히 생기지 않는다

중앙일보 2018.12.21 00:25 종합 35면 지면보기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권력형 사건을 접했을 때 오는 감(感)이 있다. 역사와 경험이 그 감을 소환한다. 청와대 특별감찰반이 민간인에 대해 사찰성 정보 수집을 했다는 의혹 사건(특감반 사건)이 주는 압도적 감은 불길함이다. 청와대가 뭔가 이상하게 굴러가고 있다는 직감이다. ‘재앙의 징후는 미리 조금씩 찾아온다’는 하인리히 법칙이 적중할 것 같은 불안감이 겹쳐진다.
 

대통령의 ‘정의로운 나라’가 몸살
진실 알려는 대중의 원초적 본능
충족해 줄 때 정의는 바로 설 것
청와대 미꾸라지들이 물고 온
불순물이 뭔지 알 권리가 있으며
국민 인권·정권 도덕성 달려 있다

권력형 사건의 탄생에 우연은 없다. 다 그럴 만한 이유가 있다. 재판도 끝나지 않은 제주 강정마을 사건 관계자들을 사면·복권하겠다는 대통령의 사법 무력화 발상, 장관들을 대동하고 시찰하는 대통령 비서실장의 위세, SNS에서 현직 판사를 망신 주는 민정수석의 훈계는 힘의 과시였다. 권력의 감시와 상호 견제가 느슨해지면서 도지는 권력의 집중과 도취 현상이라고 해석했다. 누군가는 “제왕적 청와대”라고 풍자했다. 그게 어두운 전조였다. 특감반 수사관이 사방을 헤집고 다니며 민간인을 뒷조사하는 무절제한 ‘완장권력’은 그렇게 해서 잉태된 것이라고 본다. 특감반 비위와 폭로 사건은 개인의 공직기강 해이 차원이 아니라 오염된 청와대의 공기가 그 원인이다. 청와대는 ‘한 마리 미꾸라지의 일탈’(윤영찬 국민소통수석)이라고 일축한다. 그런 권력의 교만이 불길하다.
 
제논의 궤변이었다. 청와대의 궁색한 해명이 그랬다. 그리스의 영웅 아킬레스는 앞서 출발한 거북이를 결코 따라잡을 수 없다는 게 제논의 역설이다. 거북이가 인간보다 100m 앞에서 경주하면 간격이 좁혀질 수는 있다. 하지만 10분 1m, 100분의 1m, 1000분의 1m…식으로 분절 구간을 무한대로 나눌 경우 거북이가 인간을 영원히 앞선다는 논리다. 그럴듯하지만 진실을 왜곡하는 억지일 뿐이다.
 
고대훈칼럼

고대훈칼럼

청와대는 불법적이지만 불법은 아니라는 희한한 논리를 폈다. 전 총리의 아들 등 민간인 조사는 “정책 수립을 위한 정보 수집”이고, ‘공항철도 비리’(생활적폐) 감찰은 민영화된 철도공사를 “공기업으로 잘못 알았던” 실수라고 했다. 정치인·민간 은행장·교수·언론인 등에 대한 사찰성 동향 보고는 ‘불순물’로 걸러내 폐기했다고 했다. 딱히 잘못이 없다는 투다. 특감반은 고위 공직자와 공공기관 등에 한해 비리를 감찰할 수 있다. 그렇다면 변명의 여지가 없는 위법이다. 미꾸라지가 민간인 정보를 캤지만 “문재인 정부에 민간인 사찰 유전자는 없어”(김의겸 대변인) 불법의 구성요건을 갖추지 못했다는 건 일종의 왜곡이다. 선한 의도를 내세운 무오류의 확신이 불길하다.
 
지금의 청와대 풍경은 낯설지 않다. ‘적폐 정권’에서 벌어졌던 권력형 사건의 패턴과 놀라울 정도로 유사하다. 이명박 정부의 공직윤리지원관실 민간인 사찰 사건(2010), 박근혜 정부의 정윤회 문건 유출 사건(2014)을 돌아보자. 사건이 언론에 터지면 일단 잡아뗀다. 그러다 불리하다 싶으면 반박과 형사 고발로 폭로자와 언론을 압박한다. 그래도 들통나면 몸통은 놔둔 채 ‘개인 일탈’로 꼬리 자르기를 시도한다. 이명박 정부는 한때 “도덕적으로 완벽한 정권”이라고 했다. 박근혜 정부는 비선 실세 최순실과 ‘문고리 3인방’의 존재를 “찌라시 같은 이야기”라며 둘러댔다. 현 정부의 청와대는 폭로 수사관을 공무상 비밀 누설 혐의로 고발했다. 과거에 대한 의도적 무시가 불길하다.
 
민간인 첩보를 생산하도록 방치했다면 누군가 책임져야 마땅하다. 그런 불법을 몰랐다면 무능죄이고, 알고도 제지하지 않았다면 직무유기죄를 달게 받아야 한다. 폭로자 김태우는 “다른 특감반원도 다 민간인 보고서를 썼다”고 주장한다. 여러 명의 미꾸라지떼가 합법과 불법의 경계선을 넘나들며 방대한 불순물을 생성했을 개연성이 농후하다. 누군가 사건의 전모와 실체를 숨기고 있다. 참과 거짓, 옳고 그름을 아직 단정할 수 없다. 시중에선 일개 6급 수사관이 미치지 않고서야 살아 있는 권력을 상대로 없는 일을 꾸며낼 수 있겠느냐며 혀를 찬다. 그런 민심이 불길하다.
 
문 대통령은 특감반 사건이 터졌을 때 “믿어 달라. 정의로운 나라를 꼭 이뤄내겠다”고 했다. 그 정의가 몸살을 앓는다. 진실을 알고자 하는 대중의 원초적 본능을 충족해 줄 때 정의는 바로 선다. 청와대 미꾸라지들이 물고 온 불순물이 뭔지 알 권리가 있다. 국민의 인권과 정권의 도덕성이 달려 있다. “정의를 빙자해 권력을 지탱하는 게 공권력의 습성이다. 정의라는 가면부터 벗어던져야 진정으로 미더운 정부가 된다.”(김광웅, 『좋은 정부』)  
 
지금의 정의는 특감반의 부적절한 활동과 불순물의 실체를 스스로 밝히는 지혜로운 포기다. 그게 불길함을 부질없는 기우로 끝내는 길이다.
 
고대훈 수석논설위원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