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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를 많이 쓰는 사람이 등산하면 좋은 까닭

중앙일보 2018.12.20 13:00
[더,오래] 윤경재의 나도 시인(24)
강원 태백산국립공원의 한 자락인 함백산에 전날 내린 눈으로 멋진 설경이 연출되고 있다. [뉴시스]

강원 태백산국립공원의 한 자락인 함백산에 전날 내린 눈으로 멋진 설경이 연출되고 있다. [뉴시스]

 
산은 지름길이 없다
 
땅이 주름지고 굽어 산은 산이다
 
우람한 바위와 뿌리 긴 나무
말없이 피어난 들꽃들 모두
한숨을 쉬어 봤냐고 묻고는
발걸음을 굽히어 느리게 한다
 
산에서 가쁜 한숨은
지름길 찾는 나를
안으로 굽은 곳으로 질문하듯 맞아들인다
 
가파른 오르막 내리막이 편안치 않아
산이고
한숨이고
평생이다
 
어릴 적 어머니에게 흠씬 회초리 맞고
품 안에서 실컷 울고 나서 내쉰 한숨
시원해서 느낄 것이 많았다
가끔은 꺽꺽거리고 울음을 삼켜야
아픈 곳에 그의 마음이 있었다고 깨닫는다
 
산자락 품에 안겨 멀리 산머리를 그리며
찡하게 아랫배를 굽어 나온 한숨은
낯선 듯해도 참 따사롭다
내고 들이쉬는 사이
주름진 한평생이 잠시 용서받는다
 
[해설]
등산하면서 자주 받는 질문이 있다. 다시 내려와야만 하는 산을 왜 땀 흘려가며 오르는가 하는 질문이다. 솔직히 이런 질문을 받으면 막상 무어라 말할지 답이 떠오르지 않는다. 흔히 영국 등산가인 조지 말로리가 에베레스트 등반에 앞서 말한 “산이 거기에 있으므로”라는 대답을 대신 인용하곤 한다. 그러나 그런 위대한 등반가의 어록을 아무 반성 없이 되뇌어도 되는지 부끄러워진다.
 
예수가 사용한 '수사학적 질문’
질문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답을 몰라서 알고자 묻는 공손한 질문, 상대방이 답을 아는지 모르는지 시험해 보는 질문, 이런 것도 몰라 하면서 꾸짖는 질문이 그것이다. 이밖에 아주 특별한 성격의 질문이 하나 더 있다. 즉답이나 어떤 정답을 요구하는 게 아니라 한 번 그 질문의 내용에 대해 생각하고 자신만의 견해를 정리해보라고 고민하게 하는 질문이다. 이런 질문을 ‘수사학적 질문’이라고 한다.
 
수사학적 질문을 받으면 무언가 다시 한번 숙고하게 되고 그 결과 자기 나름의 정리가 이루어진다. 철학적으로 영적으로 성숙하게 된다. “산을 왜 타는가”하는 질문이 바로 그런 근원적인 질문이다. 이런 질문은 결국엔 ‘나는 누구이며 왜 살아가는가’ 하는 의문으로 귀결된다.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백인백색의 결과가 나와야 한다. 자신의 상황에서 자신만의 견해를 내놓아야 한다. 수사학적 질문은 부처와 예수 같은 뛰어난 영적 스승이 제자들을 가르치고 이끄는 데 사용되었다. 그러므로 하나의 정답을 앵무새처럼 따라 해서는 스승의 의도를 만족시킬 수 없다.
 
역으로 어떤 대답을 통해 제자를 이끄는 것도 가능하다. 그리스 철학자 탈레스는 제자에게 질문을 받고 이렇게 대답하였다.
“무엇이 가장 어려운가요.”
“자기 자신을 아는 것이지.”
“무엇이 가장 쉬운가요.”
“다른 사람에게 충고하는 것이지.”
 
강원 설악산 오색~대청봉구간 등 고지대 탐방로가 개방된 16일 오전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 한계령 휴게소를 찾은 등산객들이 산을 오르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는 가을철 산불 예방을 위해 통제했던 고지대 95.98㎞ 구간을 이날부터 개방했다. [뉴스1]

강원 설악산 오색~대청봉구간 등 고지대 탐방로가 개방된 16일 오전 강원도 양양군 서면 오색리 한계령 휴게소를 찾은 등산객들이 산을 오르고 있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설악산국립공원사무소는 가을철 산불 예방을 위해 통제했던 고지대 95.98㎞ 구간을 이날부터 개방했다. [뉴스1]

 
요즘 등산 인구가 부쩍 늘었다. 대개 퇴직하고 남아도는 시간과 건강을 위해 시작했다가 동호회에 가입해 전국에 유명한 산을 찾아 나선다. 아쉽지만 개업 한의사인 나는 공휴일과 일요일에만 시간을 내 서울근교 산에 다닌다. 서울근교에도 멋지고 훌륭한 산이 많아 짬이 나는 대로 배낭을 메고 훌쩍 떠난다. 요즘은 등산지도 애플이 잘 갖추어져 큰 어려움 없이 혼자서도 산을 즐길 수 있게 됐다. 고맙다.
 
등산하면 우선 머리가 맑아진다. 숲에서 나오는 피톤치드와 같은 휘발성 물질이 인체 내 유해물질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또 다리와 팔 근육을 움직여 전신 혈액순환이 좋아진다.
 
현대인은 주로 사무실에 앉아 근무한다. 인체 무게의 10%도 안 되는 머리가 전신 혈액량의 20~30%를 사용한다. 그러다 보니 두뇌에 과부하가 걸려 쉽게 피로해지고, 혈관 확장성 두통 증상이 나타나기 쉽다. 두뇌에 과부하가 걸리면 멍한 상태가 되어 잘 잊고, 이해력과 창조력이 저하되는 부작용이 생긴다. 소위 머리가 열 받은 상태이다. 그러면 즉시 머리를 식혀야 한다.
 
머리를 식히는데 제일 좋은 방법은 반대로 하체 근육을 사용하는 것이다. 허벅지와 종아리 근육이 수축, 이완하면 심부 혈관을 짜내게 된다. 가만히 앉아 있을 때 중력에 의해 하지로 쏠렸던 혈액이 근육운동으로 모세혈관 현상이 원활해져 심장으로 분수처럼 솟구치게 된다. 그러면 두뇌에는 닫힌 창문을 여는 ‘환기효과’가 난다.
 
이때 번뜩이는 아이디어가 떠오르게 된다. 많은 과학자와 철학자들이 산책하며 생각을 정리했다고 한다. 나도 등산하면서 엉킨 실타래 같던 고민거리가 한순간에 해소되는 개운함을 체험한 적이 많았다.
 
내 평생에 몸과 마음이 가장 개운했던 기억은 초등학교 저학년 때의 일이다. 나는 서울 토박이로 마포 나루에서 자랐다. 그때는 서울에서도 배급 쌀을 사 먹고 살던 어려운 시절이었다. 어머니께서는 부업으로 봉제 인형을 받아다가 꿰매고 바느질해 강아지 완구를 만들었다.
 
어린 나도 틈틈이 검은색 단추로 강아지에 눈을 만들어 달았다. 그러다 솜씨가 좋은 어머니는 스웨터에 수를 놓거나 구슬을 달아 공장에 납품하셨다. 그때는 모두 그런 식으로 열심히 살았다.
 
어느 날 만화방에서 정신없이 만화를 보다가 그만 저녁 시간도 한참 지나 집에 들어갔다. 늦었다는 걸 알았을때 들어갔으면 괜찮았을텐데 야단맞을게 두려워 뭉그적거렸다. [중앙포토]

어느 날 만화방에서 정신없이 만화를 보다가 그만 저녁 시간도 한참 지나 집에 들어갔다. 늦었다는 걸 알았을때 들어갔으면 괜찮았을텐데 야단맞을게 두려워 뭉그적거렸다. [중앙포토]

 
어느 날 만홧가게에서 정신없이 만화를 보다가 그만 저녁 시간도 한참 지나 집에 들어갔었다. 시간이 늦었다는 걸 깨달은 순간 바로 집에 들어갔으면 그래도 나았을 터인데 야단맞을 게 두려워 공연히 뭉그적거리고 말았다.
 
집에서는 나를 찾고 난리가 났었다. 평소에 그런 일이 없다가 밤늦도록 들어오지 않으니 온 동네를 이 잡듯이 찾으셨을 거다. 그러다가 배를 쫄쫄 굶어 해쓱해진 몰골로 들어온 아들이 얼마나 반갑고 또 괘씸했을지 짐작이 됐다. 어머니께서는 버르장머리를 단단히 고칠 심산으로 정말 호되게 매를 드셨다.
 
나는 그때 당연히 맞을 짓을 했다는 죄책감에 닭똥 같은 눈물을 흘렸을지언정 엄살을 부리거나 회초리를 피하지 않았다. 그런 내 태도가 어머니 부아를 돋웠는지 급기야 날 부둥켜안고 우셨다. 눈물을 흘리시는 어머니에 놀란 나는 더 서글피 울었다. 얼마나 울었는지 나중에는 깊은 한숨이 연거푸 뱃속부터 솟아올랐다.
 
신기하게도 꺽꺽거리며 한숨을 들이쉬고 내쉬고 나니 도리어 아주 시원하고 개운해졌다. 회초리 자국이 또렷한 종아리 통증도 사라졌다. 어머니 품에서 내 잘못을 용서받고 받아들여졌다는 느낌이 또렷하게 인식됐다. 누군가에게 용서받는 느낌이 그렇게 개운할 줄 몰랐다. 그 뒤로는 그런 개운한 느낌을 한 번도 받은 적이 없다. 신에게 죄를 용서받는 게 그런 기분일까 하는 생각이 든다.
 
혼자 걸으며 하는 산과의 대화
나는 혼자서 하는 종주 산행을 좋아한다. 혼자 하는 산행은 내 보조에 맞추어 속도 조절을 할 수 있다. 쉬는 시간과 사진 찍는 여유를 마음껏 가질 수 있다. 상황에 따라 등산로도 바꿀 수 있으며 굳이 정상에 올라갈 필요도 없다. 그리움의 거리를 남겨둔다. 그래야 다시 찾아볼 이유가 될 것이다. 한 송이 들꽃과 인사말을 나누기만 해도 하루 치 여유로는 충분하다.
 
그날 조건에 맞추기만 하면 되는 혼자 산행은 최소한의 장비와 음식물만 필요하다. 무엇보다 좋은 건 생각을 정리하거나 시심을 떠올리는데 그만이다. 그때 산이 내게 말을 걸어온다. 이 길로 들어와 보라고 이런 거 처음 봤지 하고 속삭인다. 장소마다 산이 보여주는 경치도 매번 다르다.
 
가끔은 숨이 턱에 찰 정도로 속도를 내기도 한다. 하루에 20~30km 거리를 종주하고 나면 내 정신과 몸은 찌꺼기가 다 휘발하고 텅 빈 그릇처럼 느껴진다. 산과 화해하고 용서받았다는 느낌을 담고 내려온다.
 
평생 산처럼 내 곁을 지키며 안아주실 줄 알았던 어머니가 지난 4월 초에 양수리 산자락에 안기셨다. 만발한 벚꽃이 꽃비 되어 내리던 날이었다. 무려 16년 동안 무의식을 헤매시며 식물인간으로 생명의 마지막 촛불을 견디셨다가 내 품에서 떠나셨다. 사람도 나무가 된다면 뿌리가 그리 길고 깊게 내릴 것이라 가르쳐주면서.
 

윤경재 한의원 원장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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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경재 윤경재 윤경재 한의원 원장 필진

[윤경재의 나도 시인] 시를 시인의 전유물이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많습니다. 그래서 시쓰기를 어려워들 합니다. 그러나 시인이 따로 있는 것은 아닙니다. 작품이든 아니든 시를 쓰면 모두 시인입니다. 누구나 그저 그런 일상을 살다가 문득 자신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그것이 오래 기억에 남는 특별한 체험이라면 감정을 입혀 쓰는 것이 바로 시입니다. 시인으로 등단한 한의사가 연재하는 시를 보며 시인이 되는 길을 가보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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