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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늘고 길게 참가해주세요" 봉사자들에게 항상 부탁

중앙일보 2018.12.20 07:00
[더,오래]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11)
공부방 첫날 모습. 학습자와 지원자가 처음 얼굴을 맞댄 날.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였다. 어쩌면 학습자인 아이들보다 지원자들이 더 긴장하지 않았나 싶다. [사진 양은심]

공부방 첫날 모습. 학습자와 지원자가 처음 얼굴을 맞댄 날. 정신없이 지나간 하루였다. 어쩌면 학습자인 아이들보다 지원자들이 더 긴장하지 않았나 싶다. [사진 양은심]

 
2015년 3월 22일 도쿄 기타구(北区)에 일본어 교육이 필요한 아이들을 위한 ‘렛츠 스터디(Let's Study)’라는 봉사단체 공부방이 문을 열었다. 대상은 초등학생과 중학생까지로 2014년 가을 기타구의 NPO 볼런티어 플라자가 개설한 강좌였다.
 
외국에서 부모를 따라 일본으로 온 뒤 학교 수업을 따라갈 수가 없어 곤란을 겪고 있는 아이들을 지도해 줄 봉사단체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강좌였다. 4주 동안의 강좌를 마치고 그때 강사였던 중학교 교사를 고문으로 모시고 한국인인 나와 일본인 3명이 발기인이 돼 4개월간의 준비를 거쳐 봉사단체 설립에 이르렀다.
 
강좌를 개설했던 NPO 볼런티어 플라자의 전면적인 지원으로 장소를 확보했고, 매주 일요일 오전 10시부터 12시까지 두 시간 동안 봉사활동이 전개됐다. 운영 자금은 기타구의 봉사단체 지원금에 의존했다. 이 지원금은 3년이 한도여서 내년부터 500엔씩 받는 돈으로 운영해야만 한다.
 
공부방 학생 중엔 한국인 없어
1년에 한 번 다다미방을 이용할 때가 있다. 지원자인 일본인 대학생에게 중국인 출신 중학생이 질문하고 있는 모습. 이런 모습을 볼 때 흐뭇해진다. [사진 양은심]

1년에 한 번 다다미방을 이용할 때가 있다. 지원자인 일본인 대학생에게 중국인 출신 중학생이 질문하고 있는 모습. 이런 모습을 볼 때 흐뭇해진다. [사진 양은심]

 
봉사단체를 시작하면서 아이들에게 회비를 받을 것이냐 말 것이냐에 대한 논의가 있었다. 결론은 ‘무상’이라는 것은 안가도 손해 볼 것이 없다는 마음에 나태해진다는 의견이 있어 월 500엔씩 회비를 받기로 했다. 1000엔은 부담이 될 가정이 있을 수 있지만 500엔이라면 적당하다는 결론에 이르렀다. 그 500엔은 1시간 수업이 끝난 후의 간식 비용과 동네 축제 때에 참가비용 등으로 쓰인다. 지원자들은 교통비를 포함한 일체의 금전적 보상을 받지 않는다.
 
공부방에 오는 아이들의 국적은 일본, 중국, 방글라데시, 필리핀, 미얀마, 베트남 등이 있다. 지금까지 한국인 아이는 본 적이 없다. 오랫동안 성인 외국인을 위한 일본어 교실을 운영해 온 사람의 말에 따르면 예전에는 한국인도 많았으나 최근에는 어른도 한국인 수강자는 없다고 했다.
 
봉사단체를 발족할 때의 에피소드를 하나 소개한다. 강좌는 4주 동안 4회에 걸쳐 무사히 끝났고 봉사단체의 필요성을 호소하는 데도 성공했다. 그러나 필요성을 느끼는 사람은 많아도 내가 해보겠다고 손을 드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럴 때 오지랖 부리는 사람의 존재가 큰 힘을 발휘한다. 강연자를 자청하며 조심스럽게 손을 든 중학교 교사에게 물었다.
 
“선생님, 아이들을 지원할 단체가 당장 필요하다는 것은 알았습니다. 만약 저희 수강생 중에 뜻이 맞는 사람들끼리 봉사단체를 만든다면 조언해 주실 수 있으십니까.” 중학교 교사는 어떤 형태로든 관여할 수 있다고 했고 지금은 정년퇴직해 단체에 몸담고 있다.
 
나는 계속해서 발언했다. “저는 옆 동네에 살고 있기도 하거니와 아직은 현역 부모로서 시간적 정신적 여유가 없어 단체의 장을 맡을 수는 없지만 참가하고는 싶습니다. 참가하고 싶은 분 또 계신가요.”
 
최종적으로 나를 포함한 4명이 발기인으로 참가했다. 회장을 맡은 분은 강좌만 듣고 빠지려고 했는데 기타구에 살고 있다는 이유로 회장이 됐다고 겸손의 말을 하지만, 딱 회장감이다. 한 조직을 이끌어 가는 사람은 타고나는 것인지도 모르겠다.
 
일본 학교에서는 겨울방학 숙제로 붓글씨가 있다. 새해를 맞아 1년의 포부를 쓰는 가키조메(書き初め)라는 것인데, 매해 붓글씨 선생님을 모시고 숙제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사진 양은심]

일본 학교에서는 겨울방학 숙제로 붓글씨가 있다. 새해를 맞아 1년의 포부를 쓰는 가키조메(書き初め)라는 것인데, 매해 붓글씨 선생님을 모시고 숙제를 할 수 있도록 시간을 마련하고 있다. [사진 양은심]

 
내년이면 공부방에 왔던 학습자 중 대학 진학자가 나올 것이다. 대학을 졸업하면 사회인이 돼 이 나라에 사는 사람으로서 세금을 내기 시작할 것이다. 단 한 명이라도 지원자로 돌아와 주지 않을까 살짝 기대하고 있다.
 
공부방 지원자의 구성은 다양하다. 고등학생, 대학생, 고향을 떠나 도쿄에 살면서 지역 사회와의 연결고리를 찾아 시작한 사람, 정년퇴직한 사람, 다른 지역에서 봉사활동을 하다가 도쿄로 전근을 와서 찾아온 사람 등등. 그릇이 있으면 받아낼 수 있다. 봉사단체가 학습자는 물론 지원자의 삶까지도 윤택하게 만들고 있음을 느낀다. 활동은 어디까지나 ‘할 수 있을 때만 하겠다’는 마음으로 충분하다.
 
항상 하는 말이 있다
“부디 가늘고 길게 참가해 주세요. 몇 달 쉬었다고 해서 뭐라고 할 사람 없어요. 가벼운 마음으로 참가해 주시기 바랍니다.”
 
공부방은 학습자의 쉼터
공부방의 목적은 성적을 올리는 일이 아니다. 학습자의 쉼터가 되는 것이다. 우리 지원자만큼은 아이들 편에 서 줄 것이다. 학교에서는 언어가 통하지 않아 갑갑하고, 집에서는 부모가 돈을 버느라 대화가 부족한 아이들이 공부방에 오면 공부는 일본어로 하지만, 같은 나라에서 온 친구들을 볼 수 있고 모국어로 이야기할 수 있다. 일주일 동안 쌓인 모국어에 대한 그리움을 풀게 해 주자. 나를 귀여워해 주는 사람이 있다는 것을 느끼게 해 주자. 이것이 우리 공부방의 기본 정신이다.
 
2015년 3월. 아이들을 가르칠 지원자가 궁했던 나는 마침 대학입시를 마친 큰아들에게 공부방 참가를 권했고, 아들은 4년 동안 지원자로 활동해 왔다. 내년이면 사회인이 되는데 앞으로도 계속 활동하고 싶다고 한다.
 
발기인인 나는 2017년은 둘째가 고3이라는 이유로, 2018년은 시아버지를 모신다는 이유로 쉬고 있다. 2년 동안 송년회에만 참가했다. 내년부터는 한 달에 한 번이라도 얼굴을 내밀어야지 싶다.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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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은심 양은심 한일자막번역가·작가 필진

[양은심의 도쿄에서 맨땅에 헤딩] 일본인과 결혼해 도쿄에 살림을 꾸린지 약 25년. 일본으로의 이주는 성공적이라고 자부한다. 한일자막 번역가이자 작가이며, 한 가정의 엄마이자 아내다. ‘한일 양국의 풀뿌리 외교관’이라는 기분으로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다. 한국보다도 더 비빌 언덕이 없는 일본에서 그 사회에 젖어 들고, 내 터전으로 만들어가는 이야기를 연재한다. 그야말로 ‘맨땅에 헤딩’과 같은 이야기가 독자의 삶에 힌트가 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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