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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공공병원 많아져야 영리병원 논란 사라진다

중앙일보 2018.12.19 00:19 종합 33면 지면보기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50병상도 안 되는 작은 병원 하나를 둘러싸고 온 나라가 떠들썩하다. 제주도에 새로 생긴 ‘투자개방형 의료법인(속칭 영리병원)’인 녹지국제병원 말이다. 영리병원을 찬성하는 측은 환자에게 고급 의료서비스를 선택할 기회를 줘야 하고 의료산업이 발전하면 일자리도 늘어날 것이라고 주장한다. 반대하는 측은 영리병원을 허용하면 결국 건강보험체계가 무너지고 국민은 비싼 영리병원에서 진료받을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작은 영리병원 하나가 한국의 건강보험체계를 무너뜨릴 것이라는 주장은 기우다. 하지만 이런 주장에 많은 국민이 고개를 끄덕이는 것은 그만큼 우리나라 의료의 공공성이 취약하기 때문이다. 병원의 약 90%는 민간병원이고, 이들은 대부분 동네 의원으로 시작해 번 돈으로 큰 병원으로 성장했다. 의료가 공공적이라고 생각하지만, 돈을 벌어 몸집을 불려야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는 생각이 본능처럼 의식 깊숙한 곳에 새겨져 있다. 얼마 안 되는 공공병원도 중앙정부의 경영평가와 지방정부의 예산 압박 때문에 적자를 안 내는 게 중요한 일이 돼 버렸다.
 
제주도에 생긴 영리병원이 잘되면 민간병원이 앞다퉈 영리병원을 세우고, 좋은 의사들이 빠져나가 버린 비영리병원은 질 낮은 이류 병원으로 전락하고, 일류 영리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서 국민은 울며 겨자 먹기로 비싼 보험료를 내고라도 민간보험에 들 수밖에 없으리라는 것이 영리병원에 반대하는 논리다. 이런 최악의 시나리오가 그저 음모론이 아닐지도 모른다는 생각을 국민이 하는 이유는 의료의 공공성이 그만큼 취약하기 때문이다.
 
새는 좌우의 날개로 난다. 한국사회가 영리병원을 둘러싼 극단적인 대립에서 벗어나려면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해야 한다. 영리병원이 전체 병원의 약 10%를 차지하는 선진국 의료체계가 한국보다 훨씬 공공적인 이유는 나머지 90% 병원이 매우 공공적이기 때문이다. 돈 걱정하지 않고 환자를 진료해도 잘 운영될 수 있도록 정부가 보장해주는 공공적인 병원이 대부분이라면 영리병원 몇 개가 생긴다고 국민이 불안해하지는 않을 것이다.
 
시론 12/19

시론 12/19

고급 의료로 돈을 버는 영리병원의 고객은 외국인이거나 소득 기준으로 한국의 상위 10%에 속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상위 10%의 고급 의료서비스에 대한 선택권을 보장하기 위해 영리병원이 필요하다면 나머지 90% 국민이 아플 때 치료받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불안감에서 벗어나게 해줘야 한다. 영리병원 1개를 허가할 때마다 공공적인 병원을 9개를 늘리면 된다. 공공병원을 새로 지어도 좋고 프랑스처럼 민간병원을 ‘공익적 민간병원’으로 지정하고 정부의 지원을 늘려도 좋다.
 
첫째, 의료취약지에 공공병원을 세우자.  전국 56개 진료권 4곳 중 1곳꼴로 큰 종합병원이 없어 입원환자 사망률이 높은 지역이다. 전국 진료권 중 경기도 이천·시흥, 강원도 영월·속초·동해, 충북 진천, 충남 서산·당진·홍성, 경북 문경·김천, 경남 거제·사천, 전남 여수 진료권이 모두 입원환자 사망률이 높은 의료취약지다.
 
둘째, 응급의료와 어린이 병원같이 공공성이 높지만 수익성이 낮은 의료를 담당하는 민간병원에 대한 정부 지원을 확대하자. 중증외상센터처럼 정부가 의사와 간호사 인건비를 지원해서 수입에 연연해 하지 않고 병원을 운영할 수 있도록 하자. 응급의료를 시장에 맡긴 결과 대도시가 신종 의료취약지로 전락해가는 문제도 해결할 수 있다. 수익을 좇아 심장병원, 뇌졸중 병원이 우후죽순처럼 늘어난 대도시에는 밤에 문만 열어놓고 환자를 제대로 진료하지 않는 병원이 수두룩하다. 병원은 많은데 정작 중증 응급환자는 갈 곳이 없어 안타깝게 사망하는 일이 곳곳에서 반복되고 있다.
 
셋째, 민간병원이 공공적으로 운영될 수 있도록 의료체계도 바꿔나가자. 무너진 의료전달체계는 민간병원이 지나치게 이윤을 추구하게 하는 주범이다. 대학병원과 동네병원이 고혈압·당뇨병 환자를 놓고 경쟁하고,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해 몸집을 불리고, 불린 몸집을 유지하기 위해 과잉진료와 비급여 진료를 늘리는 악순환이 벌어지고 있다. 대학병원은 중증환자를, 동네병원은 경증환자를 진료하도록 의료전달체계를 구축해야 한다.
 
애초에 영리병원을 허용하는 법은 노무현 정부 시절에 제정됐다. 노무현 정부를 이어받은 문재인 정부가 해야 할 일은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해서 영리병원을 둘러싼 소모적인 논쟁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다. 의료의 공공성을 강화해 영리병원 몇 개 생긴다고 국민이 불안해하지 않는 튼튼한 나라를 만드는 것이 현 정부의 역사적인 책무다.
 
김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 외부 필진 칼럼은 본지 편집 방향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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