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딸 키워보니 알겠네, 엄마에게 내가 준 상처들

중앙일보 2018.12.18 11:01
[더,오래] 장윤정의 엄마와 딸 사이(4)
딸아이는 이제 4살이다. 곧 있으면 5살이 된다. 육아가 처음이다 보니 당연히 모든 게 서툴고 어설프다. 아이가 갑자기 열이 39도를 넘어 40도까지 올랐을 때, 이유 없이 잘 자다 깨서 아무리 달래도 달래도 엉엉 울던 날 등 여러 에피소드가 많다.
 
마냥 아기일 줄 알았는데 고작 세돌이 지나는 사이에 키는 태어났을 때보다 두배는 커지고 이제는 못하는 말이 없다. 어른이 먹는 음식을 똑같이 먹고 때로는 엉뚱한 말로 어른들을 깜짝 놀라게 하기도 한다. 아침에 혼자 부스스 일어나 화장실 문을 열고 변기에 앉아 능숙하게 소변을 보고 나오는 딸 모습에 흠칫 놀라기도 했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똑똑하고 귀여운 말로 주변을 웃음바다로 만들 때도 있지만 반면에 버릇없이 굴 때도 있고 말대꾸를 해 정말 내가 할 말이 없게 할 때도 있고 고집을 심하게 피울 때도 있다.
 
아이가 그럴 때마다 고작 4살이 이래도 되나? 벌써 내가 아이에게 휘둘리면 초등학교에 가면 그땐 어떡하지? 사춘기가 오면 그땐 이 아이와 나의 사이가 어떨까 하는 생각을 최근에야 처음으로 진지하게 하게 되었다. 더는 귀엽기만 한 아기가 아니니까.
 
아이에게 사춘기가 와서 반항을 좀 하더라도 정말 힘든 일이 있을 땐 엄마를 믿고 마음속 이야기를 해주면 좋겠다. 고민이 있을 땐 친구도 좋지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엄마라는 믿음이 아이에게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과연 그게 내 바람처럼 쉬울까? 내가 너무 좋은 쪽으로만 생각하는 것 아닐까 하는 불안감이 스쳤다. 나는 그 나이 즈음에 어땠더라….
 
그러면서 잊고 있던 나의 사춘기 시절을 떠올려봤다. 일부러 생각하지 않으면 평소엔 절대 생각할 일이 없는 오래전 이야기가 조각조각 떠올랐다. 그 시절을 ‘사춘기였구나~ 어렸네~ 다들 그런 시기가 있지~’라고 누구나 겪는 성장통처럼 이야기하기엔 돌이켜 보면 엄마를 너무 미워했고 엄마의 기분은 조금도 생각하지 않았다. 정말 모든 게 내 중심이고 내 멋대로였다.
 
4살 난 딸아이가 장난스러운 표정으로 “난 엄마가 미워”라고만 해도 가슴이 철렁하고 애써 웃으며 “정말? 정말 엄마가 싫어? 왜?” 하고 매달리듯 묻게 되는데 열여섯 열일곱 된 커다란 딸이 인상을 쓰며 노려보고 “아 몰라!” 하고 짜증을 내는 그런 순간들이 너무 많았다. 내 기억 속 그 시기 엄마는 정말 제법 나를 유하게 잘 기다려주고 크게 터치를 안 했다. 딱히 그런 행동으로 혼난 기억이 없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그렇게 기억을 더듬어 가다가 나는 언제쯤 사춘기가 끝났을까 생각했다. 22살쯤 일본에 6개월 정도 살다가 온 적 있다. 그때도 여전히 내 멋대로여서 학업도 관광도 어학도 딱히 명확한 목적도 없이 그냥 가고 싶어서 갔다. 그렇게 일본에 간 딸에게 엄마는 하루에 꼭 한 번씩 전화했다. 그때는 스마트폰이 없어서 국제전화가 꽤 비쌌다. 그래서 통화는 항상 용건만 간단히 했다.
 
집에 잘 들어갔는지 힘든 건 없는지 그때도 나는 철이 덜 들어서 그저 외국에 나가 혼자 사는 것이 즐거운 날들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보고 싶다, 네가 없으니 너무 허전하다”는 말을 자주 했다. 어떤 날은 걸려온 엄마의 전화는 간혹 귀찮아 받기 싫기도 했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어느 날 밤늦게 전화가 왔는데 엄마는 울고 있었다. 그냥 나에게 연신 미안하다고 했다. 어제오늘 일로 하는 사과가 아니라 나에겐 너무 어릴 적 일이라 이제는 잘 기억도 안 나는 아주 예전 일, 예를 들면 자식들 앞에서 크게 아빠랑 싸웠던 일, 그래서 며칠 집을 비웠던 일, 아빠 사업이 부도가 나서 일을 하러 다니느라 자식들을 제대로 보살피지 못했던 아주 오래된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다. 나에게 사춘기라는 것이 오기 훨씬 전의 일들이었다.
 
내가 엄마에게 사춘기 시절을 내 입으로 말하지 않듯이 엄마에게도 “너희 어렸을 때 엄마가 그래서 미안해”라는 말을 입 밖으로 꺼내기 힘들었을 것이다. 누르고 눌러 가슴 깊이 꾹꾹 눌러 놓은 마음이 가끔 툭 하고 튀어나와 엄마 마음을 괴롭힌 날도 있었을 것이다. 그때의 일은 진심이 아니었다고 알려주고 싶었던 거겠지. 잊어달라고 하고 싶었겠지. 상황이 그랬다고 오해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얘기하고 싶으셨겠지….
 
그날 전화에서 나는 엄마를 위로할 줄 몰랐다. 그런 경험도 방법도 몰랐으니까. 어색하게 “엄마, 울지마. 나는 괜찮아~” 하고 서둘러 통화를 마무리했다. 그 당시에는 다시는 엄마랑 그런 이야기를 안 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그 뒤로 한 번도 그날의 일이나 비슷한 이야기를 다시 꺼낸 적은 없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요즘의 딸아이를 보고 있자니 나는 내가 인상을 쓰고 엄마를 노려보거나 친구들에겐 하지도 못하는 직설적인 표현들로 엄마 마음을 아프게 할 때, 엄마는 모를 거라고 생각한 게 너무 한심하다. 몰랐을 리가 없다. 느껴지지 않았을 리 없다.
 
엄마가 자식에게 미안했던 시간 때문에 애써 지적하지 못하고 넘어간다고 생각하지 못했다. 당당하지 못해서 그냥 꾹 혼자 삼켜냈던 거라고는 정말 상상조차 하지 못했다.
 
내 아이를 보니 알겠다. 아이의 표정, 하다못해 특정 단어를 쓸 때만 콧구멍이 벌렁거리는 순간까지 눈썹을 어느 각도로 올리는지 나는 다 알고 있는데 왜 엄마는 내가 짓는 표정, 무시 등 모든 것을 모를 거라고 생각했을까. 자식에 대한 미안함에 당당하게 훈육하지 못하는 마음을 엄마 말대로 꼭 나 같은 딸을 낳아보니 알겠다.
 
[그림 장윤정]

[그림 장윤정]

 
엄마에게 “어릴 적 내가 참 못됐었지”라는 말을 단 한 번도 꺼낸 적이 없다. 내 입에서 말로 나오는 순간 엄마가 ‘네가 좀 심했지’라며 이제는 역으로 나에게 날릴 팩트 폭격을 견딜 자신이 없다.
 
하지만 10년 전쯤 엄마가 용기 내 꺼낸 것처럼 나도 조만간에 더 늦지 않게 엄마에게 ‘미안해. 그때 너무 철없이 엄마를 너무 당연하게 미워하고 상처 줘서 미안해’ 하고 꼭 이야기해야지 다짐했다.
 
내 아이를 보며 과거의 나를 돌아보고 반성하고 늦지 않게 고칠 수 있는 시간을 보내고 있다. 아이도 나도 여전히 성장하고 있다. 그리고 그런 시간 속에 나의 엄마도 함께여서 참 다행이다.
 
장윤정 주부 theore_creator@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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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윤정 장윤정 주부 필진

[장윤정의 엄마와 딸 사이] 마냥 아이같은 막내딸로 30년을 편하게 살다가 어느날 갑자기 예고도 준비도 없이 엄마가 된 미술전공자. 철부지 딸이 엄마가 되는 과정을 그림과 글로 그려본다. 엄마에겐 딸, 딸에겐 엄마인 그 사이 어디쯤에서 기록해보는 삼대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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