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꼰대 소리 듣기 싫은가? 그럼 페미니즘이 뭔지는 알아야

중앙일보 2018.12.17 15:00
[더,오래] 김성희의 천일서화(15)
나이가 들었다는 징후의 하나는 호기심이 줄어드는 것이다. 그것이 기술이든, 사상이든, 트렌드든 새로운 것이 궁금하지 않다면. 게다가 관습이나 ‘상식’에 얽매여 거부감을 느낀다면 스스로 ‘늙었다’란 진단을 내려도 크게 틀리지 않는다.
 
'스쿨미투' 집회 모습. 끊임없이 시빗거리를 낳는 페미니즘은 왜 그런 주장이 나왔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등을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김정연 기자

'스쿨미투' 집회 모습. 끊임없이 시빗거리를 낳는 페미니즘은 왜 그런 주장이 나왔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등을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김정연 기자

 
‘한남충’이니 ‘메갈’이니 해서 끊임없이 시빗거리를 낳는 페미니즘은 이런 판단을 내리는 시금석이라 할 만하다. 자기 딸을 위한 남녀평등이라면 쌍지팡이를 들고 나서면서도 정작 그것이 사회적 이슈가 되면 일단 거부감부터 표하는 남성이 많다. 남편의 형제들을 두고 도련님 아가씨 하는 것은 용납하기 어렵다는 주장에 일면 고개가 끄덕여지다가도 ‘투쟁적’ 여권론에 이르면 고개가 갸웃해지는 것이다.
 
그러니 특히 남성의 경우, 시대에 발맞추고 꼰대 소리를 듣지 않으려면 페미니즘이란 것을 찬찬히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왜 그런 주장이 나왔는지, 어떤 문제가 있는지 등을 알아야 받아들일 것은 받아들이고, 반론을 펼 대목은 반론을 펼 수 있으니 말이다.
 
이런 이들이 놓칠 수 없는 책으로 베티 프리단의 『여성의 신비』를 맨 앞자리에 두어야 마땅하리라.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가 “역사의 방아쇠를 당겼다”고 평할 만큼 20세기 여성운동의 시발점으로 꼽히는 현대의 고전이기 때문이다. 실제 이후 전개된 여성운동은, 과장해서 말하면 ‘베티 프리단 잇기’ 또는 ‘베티 프리단 뛰어넘기’로 정리할 수 있을 정도다.
 
1963년 미국에서 출간된 이 책은 3년 만에 300만 부가 팔렸고, 13개국에서 번역, 출간된 세계적 베스트셀러이기도 하다. 그뿐만 아니라 해마다 각 대학과 매체가 선정하는 ‘필독 논픽션 100선’에 거의 매번 포함되는 한편 일각에서 꼽는 ‘세상에서 없어져야 할 위험한 책 10선’ 등의 리스트에도 단골손님인 ‘문제적’ 저술이기도 하다.
 
한데 대부분의 고전이 그렇듯, 이 책은 만만하지 않다. 50년도 더 전의, 미국 상황을 배경으로 한 탓도 있지만 사실 이 책만으로는 베티 프리단이 여성운동사에서 베티 프리단이 차지하는 위치나 책의 가치나 영향을 파악하기 힘든 면이 있어서다.
 
 『여성의 신비(Feminine Mystique)』베티 프리단 지음(왼쪽)과 『페미니즘의 방아쇠를 당기다』 김진희 지음, 푸른역사(오른쪽). 페미니즘의 실체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은 이들에겐 '페미니즘의 방아쇠를 당기다' 이 책을 추천한다.

『여성의 신비(Feminine Mystique)』베티 프리단 지음(왼쪽)과 『페미니즘의 방아쇠를 당기다』 김진희 지음, 푸른역사(오른쪽). 페미니즘의 실체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은 이들에겐 '페미니즘의 방아쇠를 당기다' 이 책을 추천한다.

 
그러니 페미니즘의 실체를 조금이라도 알고 싶은 이들에겐 『페미니즘의 방아쇠를 당기다』(김진희 지음, 푸른역사)가 맞춤이라 여겨진다. 베티 프리단의 인생행로를 따라가면서 책을 쓰게 된 배경, 이론적 틀을 소개하면서 문제적 고전 『여성의 신비』의 내용과 한계 그리고 이후 여성운동 흐름을 대표적 저서 중심으로 설명해주기 때문이다.
 
유대계 2세로 학창시절 인종차별을 겪어야 했던 ‘경계인’, 최우등으로 대학을 졸업하고 진보적 노동신문의 기자로 활동하다 둘째의 출산으로 사직해야 했던 베티 프리단의 생을 좇아가다 보면 우선 인간적 흥미가 생긴다. 미국사 연구자인 지은이가 무조건적 찬양을 피하면서도 “백인 중산층의 시각”이란 베티 프리단 비판론에 대해 담담히 설명하는 덕도 크다.
 
책 내용 설명도 촘촘하다. 베티 프리단의 초고를 수장한 하버드대학교 슐레징거도서관을 직접 방문해 수정 원고까지 섭렵한 저자의 남다른 노고 덕분이다. 학문적 성장과정부터 들춰가며 에이브러햄 매슬로의 ‘욕구 5 단계설’ 등 이론적 토대를 밝히는 한편 당대의 냉전 문화가 어떤 영향을 끼쳤는지 등 사회적 맥락도 짚어내는 안목도 한몫했다.
 
여권시위 1968혁명 모습.『여성의 신비(Feminine Mystique)』(1963)를 쓴 베티 프리단이 설립한 여성전국조직(NOW)은 '여성권리장전'을 미 의회에 냈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어떻게 와 있는지 역사를 알려면 이 책 만한 '입문서'가 없지 않을까 싶다. [중앙포토]

여권시위 1968혁명 모습.『여성의 신비(Feminine Mystique)』(1963)를 쓴 베티 프리단이 설립한 여성전국조직(NOW)은 '여성권리장전'을 미 의회에 냈다. 우리가 지금 어디에, 어떻게 와 있는지 역사를 알려면 이 책 만한 '입문서'가 없지 않을까 싶다. [중앙포토]

 
“나는 가족에게 음식을 제공하고 옷을 입혀주고 침대를 정리해줍니다. 언제든 가족이 원할 때 요청할 수 있는 그런 사람이죠. 그런데 나는 누구죠?” 책에 인용된, 베티 프리단의 설문조사에 응답한 20세기 중반의 미국 여성들의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은 무엇인가.
 
더불어 베티 프리단의 이런 진단, “여성지, 광고, 텔레비전, 영화, 소설, 결혼과 가족 전문가, 아동심리학과 성 상담과 사회학과 심리분석 전문가들의 칼럼과 저서들에 의해 만들어진 ‘여성의 신비’ 이미지가 오늘날 여성들의 생활을 틀 짓고 그들의 꿈을 반영한다”에 대한 반론은 어떻게 가능할 것인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어떻게 와 있는지 알려면 역사를 아는 것이 지름길이다. 그러기에 페미니즘의 과거와 미래를 아는 데는 고전 해설서의 전범이라 할 이 책 만한 ‘입문서’가 없지 싶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김성희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필진

[김성희의 천일서화] 책생책사(冊生冊死). 책을 읽고 기자를 꿈꿨고, 출판팀장으로 기자 생활을 마무리했다. 닥치는 대로 읽었지만 핵심은 ‘재미’였다. 공연히 무게 잡는 책은 싫기도 하고 읽어낼 깜냥도 못 되었으니. 이 경험을 바탕으로 ‘재미있는 책’ 이야기 또는 재미있는 ‘책 이야기’를 쓰려 한다. 실타래가 풀려나가는 듯한 아라비안나이트식 책 이야기를 꿈꾸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