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누가 말려줘요, 내가 응급실서 노래하려 한다면...

중앙일보 2018.12.17 09:01
[더,오래]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9)
응급실은 극한 상황이 많다보니 의사들이 스트레스 때문에 응급실 문을 걷어 차고 나가버리기도 한다(내용과 연관 없는 사진).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응급실은 극한 상황이 많다보니 의사들이 스트레스 때문에 응급실 문을 걷어 차고 나가버리기도 한다(내용과 연관 없는 사진). <저작권자(c) 연합뉴스, 무단 전재-재배포 금지>

 
응급실은 극한 상황이 많다 보니 스트레스를 못 이기고 폭발하는 의사가 많다. 애인한테 차인 것마냥 펑펑 우는 건 기본이고, 술 취한 대학생처럼 맨주먹으로 벽을 때리기도 하며, 눈알이 뒤집힌 채 키보드나 모니터를 부수기도 한다. 마침내는 단추가 떨어져 나갈 정도로 가운을 벗어 던지며 “XX, 나 이 일 그만 때려치운다!”는 고함을 뒤로 남긴 채, 응급실 문을 걷어차고 나가 버리기도 한다.
 
의사가 하나 줄었다고 환자가 덜 오지는 않는다. 떠난 자 몫의 환자는 남은 자가 나눠서 맡아야 한다. 제 코가 석 잔데 남의 일까지 해야 하니 숨이 턱턱 막힌다. 나도 따라서 탈출하고 싶어진다. 악순환이 시작되는 것이다. 떠난 놈이라고 마냥 마음이 편한 건 아니다. 뻔히 이런 상황을 알고 있기 때문이다. 연대책임의 잔혹성은 반항하는 개인을 가해자로 둔갑시키는 법이니까. 어쩔 수 없다. 결국 제 발로 응급실로 돌아오기 마련이다.
 
명태를 얼렸다 녹이기를 반복해 황태를 만들듯, 응급실을 떠나고 돌아오는 걸 반복하길 3만5000시간. 그제야 비로소 전문의가 된다. 이제 와 생각해보면, 실력이 갖춰져서가 아니라 찬바람에 오랜 시간 참고 버텼다는 훈장으로 전문의 자격증을 주는 건가 싶기도 하다.
 
오늘은 명태 시절을 함께 했던 전공의에 대한 이야기다. 그와 나는 힘든 응급실을 끝까지 버텨냈는데, 그 비결은 노래에 있었다. 당시 하루 근무는 자정이 넘어서야 겨우 끝났으니, 아침에 출근하려면 잠잘 시간만 겨우 남아있는 셈이었다. 그렇다고 바로 잠자리에 들 수는 없는 법. 한참 늦었지만, 저녁 끼니부터 때워야 했다.
 
해장국과 소시지를 가운데 두고 앉으면 술은 자연스레 따라왔다. 하루 내 응급실에서 있었던 일들은 훌륭한 안주였고, 한 시간이면 빈 병 서너 개가 금세 쌓였다. 그러고 나면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며 노래방을 찾았고, 목이 찢어져라 악을 지르고 난 후에야 마침내 하루 일과가 끝났다. 밑바닥까지 쌓인 울분을 다 토해내야 했기 때문이다. 이렇게 가슴을 깨끗이 비워둬야만 내일 또 새로운 스트레스를 받아낼 수 있었다.
 
우리는 응급실에서 하루 18시간쯤 일을 했다. 쉬는 시간이라곤 점심 먹는 10분 정도가 전부였는데, 그마저도 안 좋은 환자가 생기면 사라지기 일쑤였다. 사람으로 가득 찬 비좁은 응급실, 그 몇 평 공간에서 쳇바퀴 돌듯 일을 했다. 하루 대부분을 응급실에 갇혀 있다 보니 어느새 우리는 응급실에서도 노래를 불렀다.
 
스테이션 가운데 나란히 앉아 컴퓨터로 환자의 검사 결과를 확인하면서 누군가가 노래를 흥얼거리면 나머지 한 명도 자연스레 따라 불렀다. 미리 짜기라도 한 듯 전람회의 취중진담을 한 소절씩 번갈아 흥얼거리며 우리는 두부 CT를 한 컷 한 컷 넘겨보는 식이었다. 그러다 뇌출혈이라도 발견하면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환자 곁으로 뛰쳐나갔다.
 
그는 또래 전공의들보다 나이가 많았다. 세상 경험도 많았다. 진중하고 차분한 성격이었다. 환자들에게 친절했고 특히 설명을 잘했다. 그래서 보호자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한 가지 흠이 있다면, 환자를 시술할 때 지나치게 긴장을 했다.
 
특히 연차가 낮아 아직 경험이 적은 시절에는, 칼이나 바늘을 놀릴 때마다 온몸이 땀범벅이 되곤 했다. 한번은 위급한 환자의 중심 정맥 확보 시술을 하던 중, 자기도 몰래 노래를 흥얼거린 적이 있었다. 나쁜 의도는 없었다. 긴장을 이겨내고 마음을 다잡기 위해서였을 뿐. 환자 상태가 안 좋은 터라 시술 실패는 곧 죽음, 그 압박감을 견뎌내다 저지른 실수였다.
 
보호자는 젊은 남자였다. 그는 의사의 사연을 알 턱이 없었다. 그저 위급한 엄마 앞에서 노래를 흥얼거리는 어처구니없는 의사를 보았을 뿐이다. 대체 환자를 얼마나 가볍게 생각하길래 이런 상황에 콧노래가 나온단 말인가? 분노한 남자는 손을 뻗어 의사의 멱살을 움켜쥐었고, 응급실엔 때아닌 몸싸움이 벌어졌다. 안전요원까지 동원되어 한참을 뜯어말리고서야 둘을 떼어 놓을 수 있었는데, 자리로 돌아온 그의 몰골은 처참했다.
 
겉옷은 벗겨졌고, 하얀 러닝셔츠의 목은 어깨까지 늘어나 있었다. “제가 실수했네요.” 그는 긴장감이 심해 자기도 모르게 실수했다며 후회했지만, 엎질러진 물이었다. 보호자는 사과조차 받아주지 않았다.
 
4년의 전공의 시절이 끝나는 날 그는 잔뜩 취했다. 긴 시간 울고 웃으며 매일 같이 부대끼던 응급실을 떠나는 날. 시원하고 섭섭한 감정에 정신없이 술을 들이켰던 모양이었다. 그는 인사불성이 된 채 귀소본능으로 응급실로 돌아왔는데, 떠나기 전에 마지막으로 노래를 부르고 싶어 했다. 응급실 안내 마이크에 대고 모든 환자 앞에서. 
 
우리는 깜짝 놀라 그를 붙잡았다. 그가 마이크를 탈취하지 못하도록. 누구는 팔을 잡고 누구는 다리를 잡고. 온몸을 날려 그를 제지해 응급실 밖으로 끌어냈다.
 
아마 그때 우리가 만류하지 못했다면 그는 어쩌면 의사 생활을 못 했을지도 모른다. 엄숙한 병원에서 노래를 부르는 만행을 저질렀다면 용서받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의 심정만큼은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평생 한 번 찾는 환자들과 달리, 그에게는 이곳이 특별한 곳이 아니었다. 4년간 동고동락한 집과도 같은 곳이었다. 누군가는 생명이 걸린 현장이지만, 그에게는 날마다 반복되는 일상이 있는 곳일 뿐이다.
 
나는 아직도 그날 그 순간이 한 번씩 생각난다. 그리고 이런 상상을 한다. 그가 응급실에서 눈물지으며 전람회의 ‘졸업’을 부르는걸. 그리고 환자들이 떠나는 그를 위해 조용히 일어나 손뼉 쳐주는걸. 긴 시간 자신이 아닌 환자를 위해 하얗게 불태웠던 의사를 위하여. 그랬다면 한 편의 영화이지 않았을까? 물론 현실에선 있어선 안 되는 일이겠지만 말이다. 그래서 나는 미리 부탁을 남겨두고 싶다. 내가 이 병원을 떠날 때, 누군가 꼭 나를 말려주기를.
 
조용수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theore_creator@joongang.co.kr
 
관련기사
공유하기
조용수 조용수 전남대학교병원 응급의학과 조교수 필진

[조용수의 코드 클리어] 의사는 누구보다 많은 죽음을 지켜본다. 삶과 죽음이 소용돌이치는 응급실과 중환자실에서는 특히 그렇다. 10년 가까이, 셀 수 없이 많은 환자의 생과 사의 현장을 함께 했다. 각양각색 인생의 마지막 순간을 지켜보며, 이제는 죽음이 삶이 완성이란 말을 어렴풋이나마 알 것 같다. 환자를 통해 세상을 보고, 글을 통해 생의 의미를 함께 고민해 보려 한다.

Innovation Lab

Branded Content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