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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은 소·양 토막내 보여주는 게 전위예술 이라고?

중앙일보 2018.12.16 14:00
[더,오래] 허유림의 미술로 가즈아(14)
오늘날 현대 미술에 많은 사람이 의혹을 갖는 것은 두 가지다. 첫째는 예술의 경계, 즉 어떤 것을 예술이라고 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인가다. 둘째는 표현의 경계다. 어디까지 경계를 설정하며 예술가는 자기의 느낌을 작품으로 표현할 수 있는가 등이다. 이는 오늘날 기상천외한 작품과 기존의 관념으로는 수용할 수 없는 주제의 작품들이 발표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일반인을 더욱 어지럽히는 것은 이런 이상한 예술을 예술계와 평론가들은 예술이라고 인정하며 받아들이고 있다는 점이다. 이런 현상은 예술계에선 지극히 일반적인 일이다. 기존의 미술사의 흐름으로 본다면 당연히 이해되는 작품들이기 때문이다.
 
유화 애니메이션 러빙빈센트의 한 장면. 지금은 모두 완전히 예술가로서 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르누아르, 고흐 같은 인상파 화가의 작품이 당시 파리 화단에서는 발을 붙이기가 힘들었다. [중앙포토]

유화 애니메이션 러빙빈센트의 한 장면. 지금은 모두 완전히 예술가로서 세계인들에게 사랑을 받는 르누아르, 고흐 같은 인상파 화가의 작품이 당시 파리 화단에서는 발을 붙이기가 힘들었다. [중앙포토]

 
예를 들어 지금은 모두 완전한 예술로 세계인들로부터 사랑을 받는 르누아르, 고흐 같은 인상파 화가의 작품이 당시 파리 화단에선 발을 붙이기가 힘들었다. 그 당시 표현에 의하면 그들의 작품은 전위예술이었다.
 
오늘날 전위예술이란 용어는 시시각각 변하고 있다. 지금은 현대 미술의 고전이 된 요셉 보이스나 존 케이지도 40여 년 전엔 전위예술가로 불렸다. 잭슨 폴록이나 팝 아트의 선두 주자인 앤디 워홀도 역시 전위 예술가로 모두 대중을 놀라게 했다. 오늘날의 현대미술은 더욱 난해하고 접근하기 쉽지 않다. 그래서 일반인들은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항상 던진다.
 
“도대체 내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은 예술인가?”
“예술이라면 왜 이것이 예술이 될 수 있는가?”
 
예술이란 인간의 정신세계, 마음, 정서, 사상, 느낌을 예술적인 방법으로 표현한 것으로 인간의 지적능력 확장과 함께 발달한 문명에 보조를 맞춰 급성장해왔다. 이런 예술의 속성 때문에 우린 예술사를 공부하고 예술 작품 보기를 즐겨한다. 그곳엔 일반인이 표현하고 싶었던 모든 정서와 느낌을 함유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예술은 인간사와 관계를 표현하고 반영하며 묘사하고 있다.
 
과거의 종교나 일정한 문화를 바탕으로 해 조성된 예술 작품, 이집트의 피라미드, 한국의 불교 미술 작품, 중세의 기독교적 신앙을 담고 있는 작품들은 모두 어떠한 종교적 목적 혹은 사후 세계 등 일정한 당해 사회의 공동체적 목적을 갖고 만들어졌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에서 가장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기자 피라미드. 종교나 일정한 문화를 바탕으로 해 조성된 예술작품은 모두 어떠한 목적, 혹은 사후 세계 등 일정한 당해 사회의 공동체적 목적을 갖고 만들어졌다. [중앙포토]

이집트의 피라미드 중에서 가장 웅장한 규모를 자랑하는 기자 피라미드. 종교나 일정한 문화를 바탕으로 해 조성된 예술작품은 모두 어떠한 목적, 혹은 사후 세계 등 일정한 당해 사회의 공동체적 목적을 갖고 만들어졌다. [중앙포토]

 
그것들은 개인의 생각이 아닌 일정한 집단의사와 문화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에 당시의 사람들이 그것을 보고 느끼는 것에 아무런 문제가 없었다. 그러나 현대의 예술은 개인이 주체다. 개인의 자아 세계를 표현한다. 쉽게 접근하고 느끼게 해주는 감정이입의 통로가 없어서 난해하게 느껴진다.
 
예술과 문화의 변화는 인간의 자아의식 형성과 발전에 그 맥락을 같이하고 있다. 예술은 문화의 총체적 현상을 담는 그릇이기 때문이다. 예술가는 공동체 속에 살면서 느낀 그 무엇인가를 묘사하고 그들이 느낀 모든 것을 표현한다. 그러므로 각기 다른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각기 다른 방법으로 묘사해 예술의 경계와 표현의 한계는 더욱 모호해졌다.
 
예술표현 경계의 극단에서 자기 작품을 하는 헤르만 니치(Hermann Nitsch)는 세계에서 가장 혐오스러운 작가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상어나 소, 양 등을 두 토막 내어 포르말린에 담 군 채로 보여주고 그것이 예술이라고 말한다. 도살꾼이라는 이름이 붙은 영국의 데미안 허스트는 니치에 비해서는 얌전하고 고상한 작가 축에 속하는 편이다.
 
니치는 오스트리아 빈에서 1938년에 출생해 현재 독일의 프랑크푸르트에서 미술을 가르치며 작품 생활을 하고 있다. 그의 작품 경향은 종교적 주제와 표현주의적 추상을 강조한다. 이를테면 니치는 연극적인 상황을 설정하고 그곳에서 자기의 그림을 형성하는 작업 방식으로 행위예술과 미술을 접목해 작품을 표현하고 있다.
 
그를 유명하게 만든 작품으로 신비한 연극의 오리진(Orgine Mysterien Theatre)이 있다. 그는 1973년부터 한 성(城)을 임대해 그곳에서 행위예술을 펼치고 있다. 그는 그림, 드라마, 음악과 함께 섞어서 관객과 함께 자기 작품을 연출했다. 관객과 함께 소를 도살하고, 그 소의 피를 뒤집어쓰기도 한다. 때로는 소의 피로 관객들과 함께 발을 씻는다. 마치 광란의 정신병자 축제로 펼치는 것이 그의 예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Nitsch Museum 전시장 일부 모습. [사진 허유림]

Nitsch Museum 전시장 일부 모습. [사진 허유림]

 
마치 사도 마조히스트 같은 행위로 극단적인 포르노 연출이나 공포영화 속의 한 장면을 보는 것과 같은 광경을 보여준다. 그는 이 같은 도살의 과정에 참여하는 모든 사람에게 흰옷을 입혀 마치 종교적인 의식으로 표현한다.
 
분위기를 고조시켜 장엄함과 집단 카타르시스로 교묘히 유도해 나가기 위해서다. 이 같은 그의 예술이 탄생한 배경은 2차 세계대전 중 인간이 보여준 광기와 야만, 폭력, 절망, 모순이다.
 
헤르만 니치는 오스트리아 아방가르드 예술운동을 주도하며 유럽 해프닝 미술사의 한 주역으로 자리 잡고 있다. 표현의 경계를 무너뜨리고 혐오스러운 모습을 보여준 그의 작품이 예술로 인정받는다. 그 이유는 첫째 혼란스러운 현대적인 문명을 반영하고, 둘째 인간의 확장된 자아나 심리체계를 그대로 묘사하며, 셋째 유희적인 도구나 쾌락적인 인간의 욕구를 반영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은 분명히 말할 수 있다. 다른 사람들이 뭐라고 해도 내가 예술이라고 하면 예술이고 아니면 아니다. 내가 세상의 중심이고 나의 판단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계속)
 
허유림 RP' INSTITUTE. SEOUL 대표 & 아트 컨설턴트 heryu122982@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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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유림 허유림 아트컨설턴트 필진

[허유림의 미술로 가즈아] 미술사, 미술 투자를 강의하는 아트 컨설턴트. 작품 보는 안목을 길러 스스로 작품을 구매해 보고 싶은 사람을 미술의 세계로 안내한다. 이해하지 못할 사회 현상과 가치 변동, 경제 상황을 미술을 통해 들여다보자. 알고 느끼고 고민하는 만큼 작품에 숨겨진 의미를 곱씹게 된다. 훗날 자산 가치가 오를 황금알을 찾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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