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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인 7역? 전설의 경지, 타이산 그림자극

중앙일보 2018.12.15 15:46
피잉극이란 조명이 켜진 백색의 막 뒤에서 동물의 가죽으로 만든 꼭두각시 인형을 조종하며 연기와 노래, 악기 연주를 펼치는 공연이다. 한 편의 영화 혹은 오페라를 보는 듯한 생동감을 주는 피잉극은 전통이 오랜 중국의 민간 예술이며 그 종류도, 지역에 따른 특색도 두드러진다.  
[출처 : 신화망]

[출처 : 신화망]

 

600년 역사 지닌 타이산 그림자극
서울 중국문화원에서 선보여
완벽한 전수자 중국에 한사람 뿐

 
피잉극은 서한 시기에 시작하여 당나라 때 흥성했고, 원나라 시기에는 서아시아와 유럽에까지 전해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1995년에 개봉한 장이머우 감독의 영화 ‘인생’에서 빈털털이가 된 주인공 푸구이가 피잉극을 하는 장면이 등장했는데, 이 장면은 짧지만 관객들에게 강렬한 인상을 주기도 했다. 대표적인 중국 대표 예술인 피잉극은 2011년에는 뛰어난 예술성을 인정받아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됐다.
 
적어도 2개의 꼭두각시 인형이 등장하는 피잉극은 각 인형들의 움직임과 대사, 노래, 악기 연주가 동시에 이루어지기 때문에 여러 사람이 협연한다. 그래서 피잉극에는 이런 말이 있다. “7명이면 긴장감 있게 공연을 할 수 있고, 8명이면 딱 좋고, 9명이면 쉬엄쉬엄 한다.(七紧、八松、九消停)”
 

피잉극 공연에는 최소 몇 명이 필요할까?

 
오늘 소개할 타이산(泰山) 피잉극이 다른 피잉극과 차별화되는 점이다. 타이산 피잉극은 중국의 5대 명산 중 하나인 산둥성 타이산 일대에서 행해지던 피잉극을 말한다. 600년 역사를 지닌 타이산 피잉극은 악기 반주를 할 사람과 꼭두각시 인형을 움직일 사람, 단 두 명이 극을 진행한다는 특징이 있다. 필요한 경우 한 무대를 한 사람이 맡아 연출하기도 한다. 
타이산 [출처 : 셔터스톡]

타이산 [출처 : 셔터스톡]

 
1인 2역도 신기할 일인데, 최소 1인 7역의 피잉극 연출이 가능한 일이기나 할까. 그런데 이 진귀한 광경을 한국에서 볼 기회가 있었다. 지난 11월 28일 서울 주한중국문화원에서 타이산 피잉극의 6대 계승자, 판정안(范正安)선생이 타이산 피잉극을 선보였다. 

 
십불한(十不闲), 홀로 열 가지를 해야해서 한가롭지 못하다
 
판 선생은 타이산 피잉극에서 홀로 10가지 역할을 한다. 이를 십불한(十不闲) 기술이라고 부른다. 그가 피잉극에 쓰는 악기 8개, 바로 북, 대라(大锣), 소라(小锣), 대찰(大镲), 소찰(小镲), 목어(木鱼), 죽판(竹板), 음을 멈추는 지음장치다. 발로만 연주할 수 있도록 그가 직접 설계하고 제작했다. 나머지 두 개는 바로 노래를 부를 입과 인형을 들 손으로 말 그대로 한가할 틈이 없다. 한 사람이 극의 모든 것을 이루어내는 최고 수준의 경지인 십불한은 전세계적으로도 매우 극소수의 피잉극 기술이며 판 선생은 십불한 기술의 국가급 대표 전승자다.
판정안 선생 [출처 : 차이나랩]

판정안 선생 [출처 : 차이나랩]

 
1945년생인 그는 8세 때 타이산 피잉의 거장인 리우위펑(刘玉峰)을 스승으로 모셨다. “최초의 타이산 피잉극은 한 사람이 연출하던 것이니, 반드시 이것을 계승하라”는 스승의 유지에 따라 끊임없이 연마했다. 그가 서른 살 되던 해, 8가지 타악기를 발로 연주할 수 있는 기구와 타격법을 고안함으로써 전설의 십불한 기술을 실현해낸다.

 
 
리우위펑에게는 8명의 제자가 있었지만 현재까지 타이산 피잉극을 업으로 지속하고 있는 이도, 십불한의 기술을 완벽하게 구현하고 있는 이도 오직 그 하나다. 피잉극에 일평생을 바친 그는 타이산 피잉극의 맥이 끊기지 않도록 부단히 노력하고 있다. 2007년 타이상피잉극은 국가급비물질문화유산으로 선정되었으며, 판 선생의 십불한 기술은 원자바오 총리로부터 ‘중화절기’로 칭송받기도 했다.  
 판정안 선생 [출처 : 차이나랩]

판정안 선생 [출처 : 차이나랩]

 
 
2008년부터 타이산 피잉극은 초등학교 정식 과목 중 하나로 채택됐고, 현재 타이안시의 3천여명의 초등학생들이 타이산 피잉극을 배운다. 또한 타이산 피잉극의 우수성을 적극 알리고자 판 선생은 상하이 엑스포 등의 국제규모의 대회에서 다채로운 공연을 펼치고 있다.
 
타이산의 영웅, 스간당 이야기
 
판 선생은 중국을 대표하는 전통 문화의 계승자이자, 지역 문화의 계승자이기도 하다. 그의 대표작이자, 주한 중국문화원에서 선보인 내용은 타이산의 영웅 ‘스간당(石敢当)’이야기다. 본래 스간당은 중국의 집이나 골목 어귀에 건축물 가운데 있는 작은 비석을 말한다. 액운을 막고 귀신을 쫒는 민간 신앙이 반영된 이 비석은 우리나라의 장승과 비슷한  것이라고 보면 된다. 스간당은 지역마다 다른 형태를 지니는데 고증에 의하면 타이산이 있는, 오늘날 타이안 시에서 발원하여 전국에 전파된 것이기에 '타이산 스간당'이라 불리기도 한다. 
 
스간당[출처 : 바이두 백과]

스간당[출처 : 바이두 백과]

타이산은 중화민족의 영산인 만큼 이를 배경으로 한 다양한 수많은 신화와 전설이 있다. 또한 스간당이 전파되는 과정에서 더욱 많은 민간 설화가 생겨났고, 선생은 이를 수집하여 피잉극 <타이산스간당시리즈(泰山石敢当系列)>를 만들어냈다. 주요 내용은 타이산에 살며 사람들을 괴롭히는 늑대 무리와 요괴들을 무찌르는 무적의 영웅 스간당에 대한 것이다.
 
영웅의 이야기인 만큼 타이산 피잉극은 등장인물이 싸움을 하는 장면들이 많다. 인형들이 빠르게 움직이거나 부딪치는 장면의 연출이 많은 탓에 피잉극에 사용되는 인형은 타 지역의 인형보다 내구성이 높은 편이다. 나귀 가죽을 원재료로 만들어지는 타이산 피잉극의 인형은 가죽을 재단하고, 밑그림을 그려 조각하고, 색을 입히고 방부처리를 하는 등 11가지의 제작과정을 거쳐 완성된다. 높이 약 30cm의 인형은 3000번 이상의 정밀한 손길을 거친 후 방부처리를 해 100년 이상 보존할 수 있다고 한다.
 
타이산 피잉극에 쓰이는 인형 [출처 : 차이나랩]

타이산 피잉극에 쓰이는 인형 [출처 : 차이나랩]

타이안 지방의 방언, 풍부한 곡조, 화려한 색채와 다수의 배역으로 펼치는 다채로운 연출은 관람객들을 환호를 넘어 황홀의 경지로 이끌었다. 특히 이번 공연에는 다른 공연과는 달리 ‘꼬마 관객’들이 많았다. 연출자가 내는 소리와 몸짓 하나하나에 꺄르르 웃는 아이들의 웃음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3D 애니매이션을 넘어 VR 영상, 입체적 사운드를 쉽게 접할 수 있는 시대. 피잉극이 남녀노소에게 지금까지 사랑받을 수 있는 이유는 인형에 생명력을 불어 넣는 연출자의 뛰어난 기교 덕 뿐만 아니라, 오랜 시간 중국 민중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던 설화와 전설, 그리고 이를 시각적으로 표현한 피잉극의 에너지가 시공간을 넘어 전해지기 때문이 아닐까.  
 
 
판 선생이 제작한 싸이 인형으로 관객과 함께 무대를 만드는 시간 [출처 : 차이나랩]

판 선생이 제작한 싸이 인형으로 관객과 함께 무대를 만드는 시간 [출처 : 차이나랩]

 
<스간당 시리즈> 공연을 마치고 난 그는 열렬한 관중들의 반응에 대해 "한국과 중국의 우수한 문화가 자주 교류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소감을 덧붙였다. 그리고 문화 교류에 대한 의지는 단순히 말에 그치지 않았다. 그는 한국의 가수 '싸이'의 그림자 인형을 직접 제작하여 강남스타일 음악에 맞춘 공연을 선보였고 현장 관객들이 즉석에서 피잉극을 연출할 수 있는 기회의 장을 만들기도 했다.
 
안타깝게도 한국에서 중국의 전통 피잉극을 정기적으로 볼 수 있는 기회는 찾기 힘들다. 특히 타이산 피잉과 같은 형식의 피잉극을 볼 수 있는 기회는 더욱 드문데, 인형을 움직이는 연행자 1명과 연주자 1명으로 구성된 2인 극단은 2010년을 기준으로 현재 산둥성·후베이성·쓰촨성에 남아 있는 정도다. 판 선생이 공연하는 1인 타이산 피잉은 타이안시에 위치한 비물질문화유산전시홀 타이산피잉극장(非物质文化遗产展厅 泰山皮影剧场)에서 감상할 수 있다.
 
타이산피잉극장(泰山皮影剧场)

 
위치 : 산둥성 타이안시 동위에따제 비물질문화전시홀

(山东省泰安市东岳大街 非物质文化遗产展厅)

공연 횟수 : 주중 1일 1회, 주말 1일 2회  
입장료 : 50위안 부터
 
차이나랩 조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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