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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직으로 놀수있나""먹고 살려고"···낙선후 고기 구운 盧

중앙일보 2018.12.15 06:00
‘종편 논객’으로 활약하고 있는 정두언 전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의원이 음식점 사장이 된다.
 

노무현의 '하로동선'에서 정두언의 일식집까지…'정치 밥집'의 역사

정 전 의원은 지난주 지인들에게 문자 메시지를 통해 “조그마한 자영업(퓨전 일식)을 시작한다”며 24일부터 마포 공영주차장 인근에서 일식집을 열 계획임을 알렸다.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

정두언 전 새누리당 의원.

 
13일엔 언론 인터뷰에서 “먹고 살려고 열었다. 할 수 있는 게 이거밖에 없더라”며 “그간 큰일을 한다면서 입으로, 펜으로 살아왔는데 ‘구름 속 허공’에 살다 보니 실물을 접하면서 살아온 적이 없었다. 연필ㆍ입으로 살다 죽으면 허망할 것 같은 기분도 있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저는 ‘셔터맨’이지만 마누라는 예전에 외식업 경험이 있다”며 “함께 고용한 쉐프도 여의도의 유명한 고급 음식점 경력이 있는 분”이라며 가게를 홍보했다.
 
정치인과 식당…또 다른 정치의 장
 
사실 정치인과 식당은 뗄 수 없는 관계다. 공식 업무는 물론 여의도 또는 청와대에서 이뤄지지만, 사람을 만나는 비공식 업무가 이뤄지는 곳이 대부분 식당이기 때문이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박근혜 정부)이 더불어민주당 입당 기자회견에 앞서 김상곤 당시 인재영입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조응천 전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박근혜 정부)이 더불어민주당 입당 기자회견에 앞서 김상곤 당시 인재영입위원장과 악수하고 있다.

 
과거에도 정 전 의원처럼 아예 음식점 사장이 됐던 정치인들도 적지 않다. 그리고 그 식당은 또 다른 ‘정치 공간’으로 활용됐다.
 
대표적인 예가 조응천 더불어민주당 의원이다.
 
박근혜 정부 때 청와대 공직기강비서관이었던 조 의원은 ‘정윤회 문건 유출’ 파동 이후 청와대를 나온 뒤 홍대역 부근에 해물전문음식점 ‘별주부짱’을 차렸다.
 
조응천 의원이 홍대입구에서 운영했던 식당. 중앙포토

조응천 의원이 홍대입구에서 운영했던 식당. 중앙포토

 
당시 그는 음식점을 차린 이유에 대해 “세상이 무서웠다. 변호사나 공무원 같은 정신노동을 하는 게 무서웠다”며 “아직 창창한 나이에 무직으로 놀 수 없었다”라고 말했다. 별주부짱의 손님은 문재인 대통령이었다.
 
당시 야당 대표였던 문 대통령은 조 의원을 영입하기 위해 수시로 이곳을 찾았다. 조 의원은 2016년 민주당 입당식에서 “(문 대통령이) 수시로 찾아왔다”며 “제가 식당을 하고 있다. 돈을 내고 오면 아무나 들어오는 오픈된 곳이다. 식당을 하지 않았다면, 입당의 변을 말씀드릴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앞치마를 두르고 고기를 구웠던 노무현
 
1997년 노무현 전 대통령은 고깃집 사장이 됐다.  
 
1997년 고깃집 '하로동선'을 운영하던 시절 모자를 쓴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 정음문화사

1997년 고깃집 '하로동선'을 운영하던 시절 모자를 쓴 노무현 전 대통령. 사진 정음문화사

 
노 전 대통령은 1995년 김대중 전 대통령(DJ)의 새정치국민회의 창당에 반발해 민주당에 잔류한 뒤 ‘국민통합추진회의(통추)’를 결성해 1996년 총선에 출마했다.
 
그러나 ‘지역주의 타파’와 ‘보스정치 탈피’를 주장한 대가는 낙선이었다.
 
노 전 대통령 주변에는 제정구ㆍ박석무 ㆍ유인태ㆍ원혜영ㆍ박계동 등이 있었다.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은 당시 막내에 속했다. 총선 패배 후 한동안 방황하던 이들은 유인태 현 국회 사무총장이 우스갯소리로 “음식점이나 차리자”는 제안을 한 것을 계기로 진짜로 고깃집을 차렸다.
 
1. 97년 11월 통추 인사들과 국민회의 만찬모임에서 함께 한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 2. 92년 대선에서 물결유세단을 이끌며 활동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3. 91년 10월 통합민주당 시절 대변인과 총재로 함께 했던 노무현ㆍ김대중 전 대통령.

1. 97년 11월 통추 인사들과 국민회의 만찬모임에서 함께 한 김대중ㆍ노무현 전 대통령. 2. 92년 대선에서 물결유세단을 이끌며 활동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 3. 91년 10월 통합민주당 시절 대변인과 총재로 함께 했던 노무현ㆍ김대중 전 대통령.

 
 20명이 2000만원씩 모아 만든 4억원으로 서울 역삼동에 고깃집을 내고 이름을 ‘하로동선(夏爐冬扇)’으로 붙였다. 이는 ‘여름 난로, 겨울 부채’란 의미로 후한(後漢)의 학자 왕충(王充)이 『논형(論衡)』에 쓴 말이다. 아무 짝에도 쓸모없는 물건을 뜻한다. 노 전 대통령 등은 이에 대해 “낙선 의원들이 다시 쓰일 날을 기다린다는 의미”라고 해석하기도 했다. 
 
하로동선의 창업에는 “돈을 받지 말고 정치자금을 직접 벌어보자”는 목적도 있었다.
 
“안 망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진다”
 
풀무원을 경영한 경험이 있는 원혜영 의원은 동업에 반대했다. 그는 자신이 운영하는 ‘원혜영TV’에서 “내가 절대 안 된다고 했다. 주인이 20명이면 사공이 많으면 배가 산으로 간다. 안 망하면 내 손에 장을 지지라고 했었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원 의원은 “2000만원을 투자해 (2년 뒤) 450만원은 건졌다”며 “그래도 노무현 대통령이 탄생했으니 의미는 있었다”고 말했다.
 
 
 
1996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사용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함. 노무현사료관

1996년 총선에서 낙선한 뒤 사용했던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명함. 노무현사료관

 
결국 화로동선은 문을 연지 2년만에 문을 닫았다. 그리고 당시 ‘통추’에 몸담았던 정치인들도 각각 뿔뿔이 흩어졌다.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문재인 대통령(오른쪽)이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에 앞서 김부겸 행정안전부 장관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청와대사진기자단]

 
청와대 출신들이 냈던 식당
 
조응천 의원 전에도 청와대 출신들이 냈던 식당이 있다. 박근혜 정부의 초대 청와대 국방비서관이었던 연제욱 전 비서관은 청와대를 나온 뒤 서울 신림동에 스테이크 전문점을 냈다. 그는 2012년 대선 때 군 사이버사령부의 정치 댓글 의혹과 관련해 기소됐다.
 
김재윤 전 청와대 비서관이 운영했던 여의도 냉면집. 중앙포토

김재윤 전 청와대 비서관이 운영했던 여의도 냉면집. 중앙포토

 
이명박 전 대통령의 수행비서 출신인 김재윤 전 국정홍보비서관은 여의도에 냉면집을 냈었다. 이 전 대통령은 2014년 12월 MB 청와대의 비서진과 당시 출입기자들과 함께 이곳에서 송년회를 하기도 했다.
 
이강철 전 노무현 대통령 정무특보는 2006년 청와대 인근에 ‘섬횟집’이라는 식당을 열었다. 당시 이 전 특보는 “내가 (무보수 명예직이라) 생활비를 가져다 줄 수 없는 형편이라 처가 대구에서 횟집을 하며 생활을 책임져 왔다”며 “그런 차원에서 처가 개업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하지만 대통령의 핵심 측근이 딴데도 아니고 청와대 인근에 차린 음식점을 놓고 논란이 벌어지기도 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이강철 시민사회수석비서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후 담소를 하고 있다.

노무현 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이강철 시민사회수석비서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후 담소를 하고 있다.

 
노 전 대통령의 측근이었던 이광재 전 강원지사와 서갑원 전 의원도 노 전 대통령이 1996년 총선에서 떨어진 뒤 종로 청진동에 주점을 연 적이 있다. 정치적 아지트를 만들고 정치자금도 직접 조달해보겠다는 목적이었지만, 외상 손님만 쌓인 끝에 2년 만에 문을 닫았다.
 
강태화 기자 thka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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