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문가 7인의 제언 “라떼파파 늘어야 한국 기업이 산다”

중앙선데이 2018.12.15 00:21 614호 16면 지면보기
강민정 한국여성정책연 노동연구센터장

강민정 한국여성정책연 노동연구센터장

“기업 인력의 다양성 부족이 경영 실패로 이어질 수 있다.”

 
최근 중앙SUNDAY가 여성단체·학계 등 7명의 전문가 설문을 통해 공통적으로 들은 답변이다. 이들은 “세계적으로 젠더·인종·국적 등 다양성이 기업의 중요한 경쟁력으로 떠오르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젠더 다양성조차 갖추지 못한 한국에선 여성 임원 확대가 중요한 과제가 됐다. 여성 임원이 늘어야 기업의 중요한 의사결정에 영향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이다.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그렇다면 한국이 유독 여성임원 비율이 낮은 이유는 뭘까. 상당수 전문가는 남성 중심의 기업 문화를 원인으로 꼽는다.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는 “1980년대 한국 경제는 빠르게 성장하면서 기업마다 야근과 회식은 기본이고 주말도 반납하고 헌신적으로 일하는 남성 중심의 기업 문화가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반면 여성은 임신과 출산, 육아 등 가정에 대한 책임으로 정상적으로 사회 생활을 하는 게 쉽지 않았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는 “최근 여성의 사회 진출이 늘면서 변화의 바람이 불지만 임원으로 승진하더라도 재무 등 핵심 업무에선 제외되는 차별을 겪고 있다”고 지적했다. 단적으로 여성이 대기업의 안방 살림을 맡는 재무담당임원(CFO)에 선임된 사례는 없다. 강민정 한국 여성정책연구원 여성노동연구센터장은 “처음부터 기울어진 운동장에서 시작한 임원 승진 경쟁은 여성에게 불리할 수 밖에 없다”고 말한다. 대기업은 1990년 초부터 본격적으로 대졸 여성을 공채로 뽑기 시작했지만 올해 상반기 기준 30대 대규모 기업집단에 재직중인 상근 임원 8652명 중 여성은 3.2%(280명)에 불과하다.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

박주근 대표는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4차 산업 시대엔 창의력을 갖춘 기업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기존 조직을 흔들어 다양한 견해와 새로운 아이디어를 만드는 트리거(방아쇠) 역할을 하는 게 바로 다양성이다. 글로벌 컨설팅회사 맥킨지가 지난해 12개국 1000개 기업을 분석한 결과 경영진의 젠더 다양성을 4분위로 나눠보니 최상위 기업이 하위기업에 비해 수익이 평균 21% 높았다. 젠더 다양성은 기업의 위험 관리에도 효과적이다.  
 
 
기업들 80년대 군대식 문화 답습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장(고려대 경영대 교수)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가 터진 것도 미국 금융사 이사회가 50대 백인 남성위주로 구성돼 집단 사고에 빠져있었던 영향이 컸다”고 지적한다. 젠더 다양성이 없는 기업은 획일적 조직 문화에 갇혀 변화나 위기 대응 능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관점에서 젠더 다양성을 확보하기 위한 기업 플랜을 짜야 한다고 충고한다. 강민정 센터장은 “여성임원은 단기간에 만들어지지 않는다”며 “인사관리상 젠더 차별을 없애고 평등한 조직문화를 만들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우선 기업의 인사평가 제도의 틀부터 바꿀 필요가 있다. 박주근 대표는 “육아휴직 장려, 경력단절 대안 등 제도적 장치도 중요하지만 남성 중심의 인재평가 시스템을 바꾸지 않는다면 모두 단기간의 처방에 그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화여대 박경희 교수

이화여대 박경희 교수

박경희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는 한 발 더 나아가 남녀 별도의 승진 제도를 만들 필요가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기존의 성과평가 시스템은 남성 중심적”이라며 “임신·출산 등 여성 고유 상황을 반영하지 못한다면 여성 직원의 성과는 지속적으로 저조하고 임원 승진기회는 낮을 수 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이런 변화의 바람이 불기 위해선 최고경영자(CEO)의 확고한 신념과 의지가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대표적인 사례로 풀무원을 꼽았다. 2014년부터 ‘2020년 여성임원 비율 30% 달성’을 기업 목표로 삼은 뒤 인사평가 등 조직 시스템을 정비했다. 풀무원의 주요 고객은 주부 등 여성 비중이 크다. 2014년 5.4% 수준이던 여성 임원의 비율은 현재 16%까지 상승했다.
 
손병옥 WCDKorea 회장

손병옥 WCDKorea 회장

세계적으로 관심이 커진 여성이사할당제 도입에 대해선 의견이 엇갈린다. 국가별로 차이는 있지만 할당제 목표를 채우지 못한 기업은 벌금, 상장폐지 등의 제재를 받는다. 손병옥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 대표는 “2000년 초반 여성임원 비율이 저조했던 북유럽 국가도 여성이사할당제를 시행한 뒤 30~40% 수준으로 늘릴 수 있었다”며 “한국도 도입이 시급하다”고 말했다. 이은형 한국여성경제학회장(국민대 경영학 교수) 역시 “여성임원 비율을 30%까지 끌어올리는 데 수십 년이 걸릴텐데 그동안 한국 기업은 다양성 경쟁에서 뒤쳐질 수 있다”고 지적한다. 한시적으로라도 여성이사할당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여성 인재풀부터 넓히도록 노력해야
 
이은형 한국여성경제학회장

이은형 한국여성경제학회장

신중하게 접근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강민정 센터장은 “현재 경력 단절에 따른 중간관리자 부족으로 임원 후보군이 많지 않다”며 “준비가 부족한 여성 임원을 억지로 뽑기보다 먼저 후보군을 늘릴 수 있는 환경과 제도부터 구축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명현 원장은 “도입하더라도 여성 임원 후보군이 충분히 공급될 때까지 단계적으로 할당비율을 높여야 경영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정부의 노력도 중요하다고 본다. 기본적으로 기업이 여성임원을 육성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하고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는 기업엔 인센티브를 제공하는 방식이다. 손병옥 대표는 “한국처럼 꼴찌 수준이었던 일본조차 최근 적극적으로 여성 정책을 펼친 결과 상장사 고위 임원 비율이 올해 10%를 넘어섰다”고 말했다. 북유럽에선 남성 육아휴직이 보편적이다. 스웨덴에선 한 손에는 카페라떼를 들고 다른 한손에는 유모차를 밀고 있는 ‘라떼파파’(육아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아빠를 상징하는 신조어)를 흔히 볼 수 있다.
 
기관투자가가 의사 결정에 적극적으로 참여하는 ‘스튜어드십 코드’에 젠더 다양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다. 박주근 대표는 “세계적으로 젠더 다양성이 기업의 중요한 경쟁력이 되고 있다. 현재 스튜어드십 코드에 간접적으로 포함된 젠더 다양성 비중을 늘리거나 항목을 구체화해 기업에 요구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인사관리 차별 없애고 평등한 조직 만들어야
강민정 한국여성정책연 노동연구센터장


임신·출산 등을 반영한 별도의 승진 제도 필요
박경희 이화여대 경영학과 교수


‘스튜어드십 코드’에 젠더 다양성 강화해야
박주근 CEO스코어 대표


여성 경력 단절 없도록 남성 중심 문화 바꿔야
성상현 동국대 경영학과 교수


북유럽 국가서 선보인 여성이사할당제 도입
손병옥 세계여성이사협회 한국 대표


여 임원 비율 30%까지 이사할당제 한시 시행
이은형 한국여성경제학회장


여성임원 육성 기업에 정부서 인센티브 제공
조명현 한국기업지배구조원 원장
 
염지현 기자 yjh@joongang.co.kr

관련기사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