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스키·스노보드 불편한 동거…“뼈대도 없는” vs “꼰대 같은”

중앙선데이 2018.12.15 00:02 614호 23면 지면보기
“아들아, 또 스노보드 탄 채 엉덩이 깔고 내려가려는 거냐.”
“아버지, 스키폴 들고 라이딩 하면 거추장스럽지 않습니까.”

전통·기술 우위 내세우는 스키
편리하고 자유분방한 스노보드

“정통 아니다” “틀에 박혀” 갈등
스키장 사고 원인 놓고도 티격태격

슬로프 적고 좁은 한국, 분리 힘들어
“서로 인정하고 실력 맞는 코스 타야”

 
캐나다 밴쿠버에 거주하는 기성준(51)씨는 아들 세호(19)와 함께 휘슬러-블랙콤 스키장에 자주 간다. 기씨는 자신과 함께 취미생활을 하는 아들이 대견스럽고 고맙기도 하지만 마음 한 곳에는 불만이 똬리를 틀고 있었다. 아들이 스키보다 스노보드를 먼저 배웠기 때문이다.  
 
기씨는 슬로프에서 일장 훈시를 시작했다. “아들, 스키가 설상 종목의 기본 아니니. 스키부터 배워야지.” 아들은 지지 않았다. “아버지, 레저는 즐겁자고 하는 겁니다.”  

스키를 착용한 정우찬(맨앞) 프로와 일본의 스노보드 데몬인 아카이케 유사쿠·요수케 형제가 설원을 질주하고 있다. 데몬은 데몬스트레이터의 약자로 설상 종목 지도자급을 뜻한다. 평창=김홍준 기자

스키를 착용한 정우찬(맨앞) 프로와 일본의 스노보드 데몬인 아카이케 유사쿠·요수케 형제가 설원을 질주하고 있다. 데몬은 데몬스트레이터의 약자로 설상 종목 지도자급을 뜻한다. 평창=김홍준 기자

본격 스키 시즌이다. 지난달 하순 전국 스키장이 문을 열었다. 지난 11일 찾은 강원도 한 스키장에는 평일임에도 많은 스키어와 스노보더들이 뒤섞여 설원을 질주하고 있었다. 스키와 보드는 1년간 헤어졌다가 다시 동거에 들어간 셈이다.
 
베트남에서 사업을 벌이는 정우석(57)씨도 모처럼 휴가를 내 이 곳 스키장을 찾았다. 스키 매니어인 그는 “사업 때문에 6년 만에 스키를 탄다”며 “그동안 스노보더들이 몰라보게 늘었다"고 말했다. 정씨는 ”스노보더들이 내 뒤에서 엣지(보드 날을 이용해 제동을 거는 행위)를 할 때마다 섬뜩섬뜩하다”고 덧붙였다.  

 
보드를 타던 김모(35)씨도 스키어에 대한 불편을 호소했다. “초보자들이 주로 스키를 이용하기 때문에 답답하다”며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도 높다”고 말했다.

 
실제 지난해 12월 영남의 한 스키장에서 상급자 코스를 내려오던 10대 스키어가 보드를 타고 있던 40대 남성을 덮쳐 사망에 이르게 했다. 초보로 알려진 10대 남성은 과실치사로 입건된 뒤 최근 검찰의 기소유예 처분을 받았다. 

캐나다 스키강사협회(CSIA) 최고 단계인 레벨4를 받은 정우찬(49) 프로는 “스키어와 스노보더간에는 미묘한 갈등 혹은 신경전이 벌어진다”며 “이런 현상은 스키어나 보더나 초중급을 벗어나 중상급 실력에 들어서면서 느끼게 된다”고 말했다. 전문가들은 스키어와 스노보더간의 갈등은 문화적·구조적 차이에서 비롯된다고 본다.  
 
수천년 역사의 스키 vs 90년대 '해금'된 보드
스키는 역사가 길다. 이미 10세기 북유럽의 시집 『에다』에 등장할 정도로 수천 년간 인류와 함께 했다. 눈이 많은 지역에서 생활하기 위해 태어났다. 18세기에 노르웨이에서 스키 공장이 들어섰고 19세기에 스키 클럽이 잇달아 생겼다. 1924년 샤모니 겨울올림픽에서 정식 종목으로 채택 됐다. 이런 이유로 스키어들은 전통을 내세운다.  

 
스노보드는 스키의 불편함을 해소하기 위해 태어났다. 1960년대 미국에서 ‘스키보다 적은 장비로 산악지역에서 즐기기 위해’ 만들어진 것이다. 생활을 위해 고안된 스키와 출발부터 달랐다. 자유분방의 상징이 됐다. 1980년대까지 대부분의 미국 스키장은 스노보드 이용을 금지했다. 안전이 문제시됐고 정통 스키 복장이 아니라 되는대로 걸쳐 입고 널빤지 같은 것을 타는 이들에게 거부감을 가졌다. 그러나 스노보드는 인기가 치솟았다. 90년대 들어 ‘해금’이 이어지고 98년 나가노 겨울올림픽부터 정식 종목으로 채택됐다.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그래픽=이정권 기자 gaga@joongang.co.kr]

국내도 마찬가지였다. 90년대 초 천마산 스키장이 스노보드를 허용했지만 사고가 잇따르자 스노보드 이용을 금지시켰다. 이후 90년대 후반부터 스노보드를 허용하는 스키장이 늘었다.  

 
미국에서는 아직도 별도의 스노보드 슬로프를 운영하거나 아예 스노보드 사용을 금지하는 곳이 있다. 2017~2018시즌엔 버몬트주의 매드리버글렌, 유타주의 알타와 디어리버벨리 세 곳에서는 스노보딩을 못하게 했다. 이 세 곳의 스키장은 스노보더들이 발도 들여놓지 못한 곳이다. 안전상으로 문제가 될 수 있고 기존 고객들이 원하지 않기 때문이라는 이유다. 지역 스노보더들은 알타 스키장을 상대로 “헌법상의 차별금지 조항을 어겼다”며 소송을 걸기도 했다. 하지만 재판부는 스노보드 이용 금지는 ‘개인 기업의 비즈니스 모델’이라며 알타 스키장 측 손을 들어줬다. 이웃 일본에서도 스노보드를 금지하는 스키장도 여러 곳이다.

 
스키어와 스노보더 간에 극단적인 표현도 나온다. 스키어는 스노보더에게 "뼈대가 없다(전통이 없다)", 스노보더는 스키어에게 "꼰대 같다(틀에 박혔다)"고 지적하는 것이다. 스노보더들이 스키어에 비해 상대적으로 젊기 때문에 문화적 차이가 세대를 가르는 양상도 보이는 것이다.

스키를 착용한 정우찬(가운데) 프로가 일본의 스노보드 데몬들과 평창 휘닉스파크 슬로프에서 질주하고 있다.  데몬은 데몬스트레이터의 약자로 설상 종목 지도자급을 뜻한다.평창 =김홍준 기자

스키를 착용한 정우찬(가운데) 프로가 일본의 스노보드 데몬들과 평창 휘닉스파크 슬로프에서 질주하고 있다. 데몬은 데몬스트레이터의 약자로 설상 종목 지도자급을 뜻한다.평창 =김홍준 기자

스키를 착용한 정우찬(맨앞) 프로가 일본의 스노보드 데몬들과 평창 휘닉스파크 슬로프에서 질주하고 있다. 데몬은 데몬스트레이터의 약자로 설상 종목 지도자급을 뜻한다. 평창 =김홍준 기자

스키를 착용한 정우찬(맨앞) 프로가 일본의 스노보드 데몬들과 평창 휘닉스파크 슬로프에서 질주하고 있다. 데몬은 데몬스트레이터의 약자로 설상 종목 지도자급을 뜻한다. 평창 =김홍준 기자

시야 넓은 스키 vs 시야 좁은 보드
스키와 스노보드의 갈등은 구조적 측면에서도 벌어진다. 이는 스키장 사고의 책임론으로까지 이어진다. 미국 시애틀에서 스키 강사를 하는 신호간(49)씨는 “스키는 턴 동작이 용이해 시야를 충분히 확보해 주는 반면 스노보드는 두 다리가 하나의 보드에 고정돼 시야가 좁아질 수밖에 없다”며 “스노보더는 후방과 진행방향 반대 측면은 사실상 시계 제로가 된다”고 말했다.  

 
스노보드 매니어인 김영철(39)씨는 이 주장에 반박한다. 김씨는 “이른바 ‘낙엽 동작’이라고 불리는 턴 동작 때 슬로프 윗부분 등 시야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다”며 “기량에 따라 시야 확보가 갈리는 것이지 스키와 스노보드의 구조 차이로 볼 문제는 아니다”고 주장했다.

 
지난해 1월 국내 한 스키장에서 낙엽 동작 뒤 속도를 내던 스노보더와 천천히 턴하고 내려서던 스키어가 크게 부딪힌 사고가 있었다. 당시 스키어들은 "동시 추돌로 뒤에서 온 스노보더의 과실"이란 주장이 우세했던 반면 스노보더들은 "스키어의 스노보더 진로 방해"라며 맞받아쳤다. 

 
부상 부위도 엇갈린다. 두 다리가 모두 고정 된 스노보드는 스키에 비해 쇄골·어깨 등 상체 중심으로 다친다. 미국에서는 7세 이하에게는 스노보드를 가르치지 않는 곳이 많다. 머리 손상 가능성이 높기 때문이다. 반면 스키는 무릎 등 하체에 부상이 많다. 
 
강원도 횡성의 웰리휠리스노파크 앞에서 장비점을 운영하는 이희찬(54)씨는 교육에 방점을 찍었다. 이씨는 “스키 교육에 비해 스노보드 교육이 부족하다”며 “스키와 스노보드 인구가 50대50 수준인데, 교육 받는 사람은 90대10 수준으로 갈린다”고 말했다. 교육을 통해 스키와 스노보드의 갈등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는 취지다.  

 
북미·유럽·일본과 달리 적고 좁은 슬로프를 사용하는 한국에서는 스키어와 스노보더의 공생이 불가피하다. 성우리조트(현재 웰리힐리스노파크)는 2년 전 1개 슬로프에서 스노보드 이용을 금지시켰다가 철회하기도 했다. 스키계의 한 관계자는 "스키와 스노보드는 뿌리가 같다"며 "일부 매니어층에서 보여지는 문화적·세대적·구조적 마찰은 한국 스포츠계의 미래를 위해서라도 극복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우찬 프로는 “한국 슬로프에서는 구조적으로 스키어와 스노보더가 함께 할 수밖에 없다”며 “배려의 에티켓을 발휘한다면 불편한 동거가 아니라 행복한 동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홍준 기자 rimrim@joongang.co.kr
'최고 등급 강사' 정우찬 프로가 말하는 스키장 에티켓
캐나다 스키강사협회(CSIA) 초괴고 단계인 레벨4를 받은 정우찬 프로. 평창=김홍준 기자

캐나다 스키강사협회(CSIA) 초괴고 단계인 레벨4를 받은 정우찬 프로. 평창=김홍준 기자

“스키는 안전과 즐거움이 우선입니다. 모양새에 치중하면 안됩니다.”
정우찬(49) 프로는 스키장에서의 에티켓을 강조하며 이렇게 말했다. 정 프로는 캐나다 스키강사협회(CSIA) 레벨4를 받았다. 최고 단계다. 정 프로는 비교적 늦은 나이인 30세에 패트롤로 스키와 인연을 맺고 현재 전 세계 ‘현역’ CSIA 레벨4 100여 명 중 한명으로 활동하고 있다. 그는 캐나다에서 귀국해 한국에선 생소한 ‘파우더 스키’를 가르치고 있다. 파우더 스키는 심설에서의 스키를 말한다. 스키 기술의 최고 단계에 오른 그에게도 기본은 안전이다. 정 프로는 “에티켓은 안전과 같은 뜻”이라며 “방어운전하듯 스키를 타면 된다”고 말했다. 정 프로가 제시한 스키장 에티켓을 정리했다.  

# 운전 중 깜빡이 켜듯 '방어 스키' 하라  
다른 스키어나 스노보더에게 가까이 다가가는 라이딩, 특히 가로지르기는 사고로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 앞 사람에게 진로 우선권이 있다. 뒤의 라이더는 앞 사람의 진로방향을 예측해야 한다. 앞사람도 자신의 진행 방향을 확실히 뒷사람에게 보여줘야 한다. 상황 따라 달라지지만, 대개 뒷사람이 앞사람과 부딪히면 뒷사람에게 책임이 있다.  

# 리프트 대기 땐 서두르지 말라

한국 라이더들이 외국 스키장에서 저지르기 쉬운 실수 중의 하나가 리프트 대기 중 너무 촘촘히 서 있는 것이다. 외국인들은 사적 공간을 중요시한다. 어차피 리프트 탈 순서는 정해져 있다. 외국이건 국내건 리프트 대기 땐 간격을 유지하라. 자신의 스키나 보드가 앞 사람의 것과 맞물리면 심각한 결례다. 뒤엉켜 넘어질 수도 있다.

# 실력에 맞는 슬로프를 선택하라
운전 초보자는 독일의 오토반이나 뉴욕의 지옥 교통난에서 제대로 운전할 수 없다. 슬로프에서도 마찬가지다. 방어운전이란 말이 있듯, 방어스키가 첫 번째다. 실력에 맞는 슬로프를 고르는 것은 다른 사람에게도 행복한 선택이다. 

구독신청

공유하기
광고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