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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 아파트 분양원가 깨알 공개 논란 … 조경·도배·타일 공사비까지 밝혀야

중앙일보 2018.12.15 00:02
내년 1월부터 공개 항목 12개→62개… 건설 업계 “기업의 영업비밀” 반발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를 둘러싼 논란이 10여 년 만에 다시 불 붙고 있다. 정부가 내년부터 공공택지에서 분양하는 아파트의 분양원가 공개 항목을 대폭 늘리기로 하면서다. 지금은 12개 항목만 공개하면 되지만, 내년부터는 62개 항목을 공개해야 한다. 아파트 분양가는 땅값에 건축비를 더해 산정하는데, 땅값은 물론 건축비의 상세 내역을 공개해야 하는 것이다. 서울시와 경기도도 분양원가 공개에 나선다. 서울시 산하 SH공사는 최근 12개이던 SH공사 아파트 분양원가 공개 항목을 61개로 늘리기로 했다. 박원순 서울시장이 10월 국회 국토교통위원회의 서울시 국정감사에서 “SH공사 분양 아파트 원가를 공개하겠다”고 약속한 데 따른 조치다.
 
경기도 산하 경기도시공사는 앞서 9월 공공분양·임대 아파트에 대해 분양원가를 공개하기로 했다. 이처럼 정부와 지자체가 아파트 분양원가를 공개키로 한 건 치솟는 분양가와 널뛰는 집값 때문이다. 분양원가 공개로 분양가를 끌어 내리고, 이를 통해 집값 불안을 잡겠다는 의도다. 따라서 당장은 공공택지 아파트에 한해 시행되지만, 향후 민간택지 아파트로 확대할 가능성도 제기된다. 하지만 이미 주택도시보증공사(HUG)가 분양가를 통제하면서 이른바 ‘로또 아파트’(주변 시세보다 분양가가 저렴한 아파트)가 속출하고 있는데, 분양원가까지 공개할 이유가 있느냐는 지적이 나온다. 긍정적 효과보다는 공급 감소와 같은 부작용만 부를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공급 감소 부작용 우려
국토교통부는 11월 15일 공공택지 내 공공·민간아파트의 분양가 공시 항목을 현행 12개에서 62개로 늘리는 내용을 골자로 한 주택법 개정안을 입법예고했다. 현재 이 법에 따라 공개해야 하는 분양가 정보는 택지비 부분 3개 항목을 비롯해 공사비 5개, 간접비 3개, 기타 비용 1개 등 총 12개 항목이다. 공사비는 토목, 건축, 기계설비, 그 밖의 공종과 기타공사비 등 5개 항목을 공개해야 한다. 하지만 개정안이 시행되는 내년 1월부터는 토목비와 건축비 항목에 포괄적으로 들어 있던 조경 공사, 정화조 공사, 타일 및 도배 공사, 흙막이 공사 등 62가지가 세부 내역으로 표시된다. 서울시와 경기도의 분양원가 공개 방침도 정부 내역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처럼 공개 항목을 확 늘리면 인근의 다른 분양 아파트와 비교하거나, 공개 내역의 타당성을 검증하기 쉬워져 결과적으로 아파트 분양가의 거품을 걷어낼 수 있다는 게 정부와 시민 단체의 주장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관계자는 “상세한 분양원가가 공개되면 국민 누구나 검증할 수 있기 때문에 공기업이나 건설사가 과거와 같이 마구잡이로 분양가를 뻥튀기하는 것을 막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국토부 관계자도 “건설사가 분양가에 과다한 이윤을 반영하기 힘들 것”이라며 “주택이 적정 가격으로 공급되면 국민의 주거 안정은 물론 전반적인 집값 안정 효과도 예상된다”고 말했다.
 
그러나 건설 업계는 기업의 영업 자유에 대한 지나친 제한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특히 공개 대상 아파트에 공공뿐 아니라 민간이 포함된 것은 문제가 있다는 입장이다. 김덕례 주택산업 연구원 주택연구실장은 “원가라는 것은 기업의 영업기밀인데 원가를 공개하는 것은 자유시장주의와도 맞지 않다”며 “특히 항목별로 원가를 추산하기도 쉽지 않아 정확한 분양원가 산정이 어렵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이 같은 논란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아파트 분양 원가 공개가 본격적으로 논의된 건 노무현 정부 때인 2007년으로, 그해 4월 정부는 주택법 개정을 통해 9월부터 61개 항목을 공개하도록 했다. 대외적인 명분은 소비자의 알권리를 충족하고, 건설 업계의 투명성을 높인다는 것이었다. 하지만 이면에는 치솟는 분양가를 막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었다. 당시 주택시장은 서울·수도권을 중심으로 급등세를 보였다. KB국민은행에 따르면 2006년 전국 집값은 전년보다 11.6% 올랐다. 2007년에는 3.1% 상승했다. 서울로 범위를 좁히면 같은 기간 각각 18.9%, 5.4%로 변동폭이 전국 평균치를 크게 웃돈다. 이 때는 지나치게 비싼 분양가가 집값 불안의 주범이라는 여론이 확산했다. ‘고(高)분양가 아파트 분양→주변 집값 상승→고분양가 아파트 등장’이라는 악순환을 끊어야 한다는 것이었다.
 
택지 공급가부터 내려야
그러다 보니 LH 등 공기업이 공급하는 아파트에 대한 분양원가는 소비자 알권리를 위해서, 또 집값 안정 수단으로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렸고 정부는 분양원가 공개를 밀어 붙였다. 건설 업계는 물론 민간기업은 강력 반발했다. 2006년 11월 전국경제인연합과 건설협회 등 6개 단체는 ‘민간택지 아파트의 분양원가 공개 철회 및 부동산 가격 안정화 대책에 대한 의견’을 내고 분양원가 공개에 반대한다는 뜻을 밝혔다. 분양원가 공개가 시장원리에 어긋나고 자유시장경제의 근간을 훼손시킬 우려가 있다는 게 이유였다. 분양원가 공개가 분양가 인하에 직접적인 효과가 없다는 주장도 덧붙였다. 오히려 건설업계는 “분양원가 공개로 주택 공급량이 줄어 집값이 오를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렇다면 분양원가 공개로 아파트 분양가가 실제로 낮아지거나, 집값 안정 효과가 있었을까. 부동산114에 따르면 2006년 3.3㎡당 801만원이던 전국 아파트 평균 분양가는 2007년 992만원으로 뛰었고, 2008년에는 1085만원을 찍었다. 서울만 해도 2007년 3.3㎡당 1789만원이던 아파트 분양가가 분양원가 공개 직후인 2008년에는 2167만원으로 급등했다. 2009년부터는 분양가가 하락했지만, 이는 전 세계를 뒤흔든 2008년 미국발(發) 금융위기 여파로 분양시장이 침체한 영향으로 보는 게 맞아 보인다. 집값 안정에도 별다른 역할을 하지 못했다. 한국감정원에 따르면 2007년 전국 아파트 매매가격은 4.54% 올랐고, 2008년에는 그보다 큰 폭(5.01%)으로 뛰었다. 서울 아파트값 상승률도 2007년 7.01%, 2008년 7.12%로 특별한 변화는 없었다. 결국 분양원가 공개에 따른 집값 안정 효과는 없었던 것이다.
 
문재인 대통령도 2012년에 열린 대선주자 초청 간담회에서 “(노무현 정부 시절) 분양원가 공개가 제대로 시행되었다고 하더라도 당시 폭등하는 집값을 잡을 수 없었을 것”이라고 대답하기도 했다. 이후 금융위기로 인한 주택시장 침체 등으로 이명박 정부는 2012년 분양원가 공개 항목을 12개로 축소했다. 박근혜 정부는 규제 개혁 차원에서 민간 아파트에 대한 분양원가 공개 제도를 폐지하고 공공 아파트에만 적용했다. 과거에는 효과가 없었지만 지금은 다르지 않을까. 시장에서는 2007년 9월부터 2012년 3월까지 운영했던 61개 공시 항목과 내년 1월부터 공개해야 하는 항목 대부분 비슷해 보인다는 점에서 별다른 효과는 없을 것으로 보고 있다. 자유한국당 등 보수진영이 ‘분양원가 공개는 이미 실패한 정책’이라며 분양원가 공개 확대에 반대 목소리를 내고 있는 것도 이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긍정적 효과보다는 부작용을 우려한다. 권대중 명지대 부동산대학원 주임교수 “분양원가 공개로 공급이 줄면 주택시장이 더 불안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한 시장 전문가는 “분양 때 가격을 눌러놓는다고 해도 입주하면 주변 시세를 따라가는 건 상식”이라며 “분양 받는 사람만 시세 차익을 얻는 구조를 고착화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 2008년 58개 항목의 세부 분양원가를 공개한 서울 강서구 내발산동 일대 발산지구는 전용면적 84㎡형 분양가가 2억5000만원 선에 책정돼 합리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그러나 이후 분양권 가격 급등으로 이어지면서 논란을 빚었고, 지금은 주변 시세 수준인 8억5000만원에 매물이 나온다. 분양원가 공개만으로는 주택 시장 불안을 막을 수 없다는 지적이 나오는 이유다. 건설 업계 관계자는 “분양가가 뛰는 가장 큰 요인은 땅값”이라며 “정부가 땅을 비싸게 팔아 분양가를 올릴 수밖에 없게 해놓고, 이제 그 책임을 건설 업체에 떠넘기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가 분양원가 공개 확대 대상으로 삼은 공공택지는 LH를 비롯해 SH공사, 경기도시공사 등 공기업이 감정평가를 거쳐 해당 지역 땅을 사들인 뒤 건물을 지을 수 있도록 토지를 조성한 후 건설사에 분양한다. 이 과정에서 주상복합아파트 용지나 도시개발사업지 아파트 용지는 경쟁 입찰로 나온다. 입지여건이 좋은 곳은 당연히 경쟁률이 치솟으며 낙찰가가 올라갈 수밖에 없는 구조인 것이다. 올해 상반기 LH가 고양시 덕은지구(도시개발사업지)에서 분양한 A4블록은 예정가인 2227억원을 훌쩍 넘긴 3363억원에 낙찰됐다. 이 때문에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다고 해도 앞서 분양한 단지보다 비쌀 수밖에 없다. 한 대형 건설사 주택사업 담당자는 “과거에는 분양가에서 땅값이 차지하는 비중이 30~40% 수준이었지만 지금은 분양가상한제로 50~60%까지 높아졌다”며 “특히 수도권 공공택지는 땅이 부족하기 때문에 경쟁이 치열하고, 이로 인해 땅값이 상승하는 것이지 이윤을 만이 남겨서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적정성 여부 기준 합의 시급
전문가들은 내년부터 당장 시행해야 하는 만큼 논란을 최소화할 수 있는 방안을 강구해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원가를 공개했을 때 적정성 여부를 어떻게 검증할 지가 여전히 논란이기 때문이다. 최대한 낮춘 가격을 기준으로 할지, 업계 평균 수준을 적정 원가로 할지에 대한 합의가 필요하다. 또 원가를 증빙할 체계도 아직 없다. 이 상태로는 분양 계약자와 건설사간 소송 남발 등으로 인한 사회적 비용이 만만찮을 것이라는 우려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아직 원가에 대한 정의도 애매한 만큼 원가에 대한 개념을 통일해야 하고, 적정 원가를 무엇으로 판단할 것인지도 결정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황정일 기자 obidi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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