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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란의 어쩌다 투자

출금 안되는 수상한 거래소···"참 용감한 韓 투자자들"

중앙일보 2018.12.14 22:31
‘OOOO 오늘자로 전부 튀었습니다’
지난 12일 밤부터 암호화폐 관련 채팅방과 커뮤니티 사이트를 중심으로 A거래소에 대한 ‘먹튀’ 의혹이 퍼졌다. A거래소의 임직원들이 모두 해외로 도망갔다는 내용이었다.
 
글을 접한 해당 거래소 투자자들은 믿을 수 없다는, 망연자실한 반응을 보였다. 그럴 것이 이날 오후 3시경, 해당 거래소의 홈페이지에 일주일간의 서비스 정지를 알리는 공지가 올라와서다. 불미스러운 사건에 대한 수습을 위해 운영진 및 관리자를 전면 교체하고, 교체에 따라 서비스 정지가 불가피하며, 해당 기간 출금은 하루 최대 100만 원까지만 가능하다는 게 거래소 측의 설명이었다.
 
그런데 채팅방에 도는 소문이 사실이라면 이 모든 게 거짓말에 불과하다. 먹튀 의혹을 제기한 당사자는 “지인이 3주 전 거기(A거래소)를 퇴사했다”며 “파산 신청했고, 지금은 시간 끌기 중”이라고 주장했다.  
출처: 코박

출처: 코박

 
해당 채팅방 대화를 캡처한 화면은 순식간에 퍼졌다. 그제야 소문을 접한 투자자들끼리는 최근 출금 신청해 돈을 돌려받은 사람이 거의 없다는 사실을 서로 확인하며 분노를 쏟아냈다.
 
이튿날인 13일에는 A거래소 홈페이지에 느닷없이 ‘방문 예약’ 공지가 올라왔다. 거래소 본사 방문을 원하는 회원들은 예약만 하면 19일부터는 운영진을 만날 수 있다고 안내했다. 전날 커뮤니티를 달군 먹튀설을 잠재우는 듯한 공지였다.
 
그래도 의혹이 가라앉지 않자 14일 오후 3시 30분경에는 공지와 함께 사무실 공사 사진이 올라왔다. 주말까지 공사가 진행될 예정이며, 17일 월요일 방문 상담에는 차질 없도록 노력하겠다고 한다. 그런데 앞서 전날 공지에는 방문은 19일 수요일부터 가능하다고 했다. 17일과 18일에는 누구를 만나는지 의문이다.
 
100만원 입금하면 10만원 돌려준다?
A거래소에 대한 의혹은 지난 6월 시범 서비스를 오픈할 때부터 제기됐다. 일단 거래소 운영자들에 대한 소문이 돌았다. 불법 도박 사이트를 운영했던 이들이라는 ‘괴소문’이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퍼졌다.
 
소문을 입증이라도 하듯 편법 운영 방식에 대한 논란이 됐다. 먼저, 현금을 입금받았다. 지난 6월에 생긴 거래소라면 합법적으로 현금을 받을 통로가 없다.
 
지난 1월 암호화폐 시장이 과열됐을 때, 금융당국은 법적 지위가 모호한 거래소를 직접 규제하는 게 아니라 은행을 통해 거래소의 돈줄을 죄는 우회적 규제 방식을 택했다. 간접적인 금융당국의 압박에 은행들은 가상계좌를 이미 발급한 곳을 제외한 다른 거래소에는 가상계좌 발급을 중단했다. 아울러, 투자자 보호가 안 되는 벌집계좌 사용도 막았다. 거래소가 현금을 정상적(?)으로 입금받을 수 있는 길이 막힌 셈이다.  
 
앞서 크립토펀드 판매로 금융당국의 경고를 받고 거래소 문을 닫은 지닉스의 최경준 대표는 “정상적인 원화 입금이 막힌 상황에서 거래소 비즈니스를 영속할 수 있는 마지막 해법으로 고안해낸 게 크립토펀드였다”고 말했다. 하지만, A거래소는 벌집계좌 형태로 투자자들의 돈을 끌어모았다. 벌집계좌로 입금한 투자자의 돈은 법적으로 투자자 소유가 아닌 회사의 소유다. 어느 날 아침 돈을 모두 빼서 다른 계좌로 옮긴다고 해도 하나도 문제될 게 없다. 
출처: 인터넷 캡처

출처: 인터넷 캡처

 
그리고 현금 입금액을 늘리고자 페이백 이벤트를 벌였다. 설립 시점엔 5% 페이백을 해줬다. 100만 원을 입금만 하면 5만 원을 돌려준다는 의미다. 페이백 이벤트는 해당 거래소가 문제가 생겨 서비스를 중단했다가 다시 오픈할 때에는 어김없이 재연됐다. 지난 10월 개인정보 유출 사고가 나면서 투자자들 사이에 불신이 커진 최근에는 최고 10%까지 현금을 돌려줬다.
 
가장 큰 문제는 입금은 자유로운데 출금은 늘 지연된다는 점이었다. 대체로 원화 출금이 원활하지 못했다. 커뮤니티에서는 “직접 거래소를 찾아가야 겨우 처리를 해 준다”는 말이 돌았다. 그나마 먹튀 논란이 불거진 최근 일주일 동안에는 출금에 성공했다는 투자자를 찾기가 힘들었다. 한 커뮤니티 회원은 “A거래소 카카오톡 오픈톡방(500명 이상 인원)의 방에선 약 일주일 전부터 제대로 출금 받은 사람이 거의 없다더군요”라고 분위기를 전했다.
 
가상계좌 금지가 사고 키울라
수상한(?) 거래소인데도 A거래소는 승승장구했다. 거래소 홈페이지에 나온 공지에 따르면, 지난 6월 21일자 기준으로 가입 회원이 10만 명을 돌파했다. 서비스 오픈 한 달도 안 돼서다. 9월 10일에는 동시접속자가 10만 명을 돌파했다고 알렸다. 같은 달 29일에는 거래소 자체 암호화폐인 A코인의 거래대금이 300억원을 돌파했다고 안내했다. 암호화폐 관련 정보사이트인 코인마켓캡에 따르면, 글로벌 100위 거래소의 하루 거래대금이 20억원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출처: 인터넷 캡처

출처: 인터넷 캡처

 
암호화폐 시장이 전반적으로 침체한 가운데 A거래소에 투자자가 몰린 건 대박을 꿈꾸는 욕망이 집결된 탓이다. A거래소에는 유독 다른 거래소에서는 접하기 힘든 암호화폐, 이른바 ‘잡코인’이 상장됐다. 게다가 거래소가 자체적으로 발행한 배당을 주는 거래소 코인이 주를 이뤘다.
 
다른 거래소와 가격 비교가 안 되는 탓에 자체적으로 가격이 펌핑되고 덤핑되는 일이 잦았다. 지난달 27일 상장한 한 코인은 첫 상장가가 0.5원인데 상장 직후 2만~4만원까지 가격이 뛰었다. 400만~800만%에 이르는 믿지 못할 상승률에 일단 사고 보자는 이들이 몰리면서 차트상 가격이 1조원을 찍었다(실제로 1조 원에 거래가 체결됐는지는 알 수 없다). 이후 순식간에 30원으로 수직 낙하했다. 실제로 한 커뮤니티에는 “7000만원 투자했는데 25만원 남았다”는 글이 올라왔다. 
출처: 코박

출처: 코박

 
현재 A거래소와 연락할 방법은 평일 오전 9시부터 오후 6시까지 운영하는 채팅방 채널을 빼고는 전무하다. 찾아가고 싶어도 어디에 위치한 곳인지 알 길이 없다. 지난달 공지를 통해 서울로 본사를 이전한다고 했기 때문이다. 일부 투자자들은 “주소를 감추기 위해 서울로 이전한다고 거짓 공지를 낸 것 아니냐”고 의심한다.
 
A거래소의 먹튀 여부는 결국 오는 19일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런데 설사 ‘먹튀’를 하더라도 거래소 이용자들이 법적인 보호를 받을 길은 없다. 거래소가 금융회사가 아닌데다, A거래소의 경우에는 메이저 거래소들이 자율적으로 지키는 투자자 자산 분리 보관조차 하지 않았고, 이를 투자자들 또한 알고 이용했기 때문이다. 한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사견임을 전제로 “뭘 믿고 인가도 받지 않은, 돈을 떼여도 하소연할 곳도 마땅치 않은 그런 곳(암호화폐 거래소)에 돈을 맡기느냐”며 “우리나라 투자자들이 참 용감하다”고 말했다.  
 
암호화폐 전문 서적『넥스트 머니』를 이용재 작가는 “(암호화폐) 거래소의 목적은 합리적인 투자 활동을 가능하게 하고 마켓 유동성을 공급하는 것”이라며 “투자자가 돈이 필요할 때 돈을 내주지 못하는 곳이라면 과연 거래소라고 부를 수 있는지, 마치 거래소를 가장한 사설 도박 하우스 아니냐”고 말했다.
 
공태인 코인원 리서치센터장은 “금융당국이 거래소를 고사시키는 방안의 하나로 가상계좌를 금지하면서 되레 벌집계좌가 문제가 되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다”고 꼬집었다. 가상계좌의 경우에는 계좌에 대한 소유권이 투자자 개인에게 있지만, 벌집계좌로 돈을 입금하면 그 돈에 대한 소유권은 해당 법인(거래소)으로 넘어간다. 공 센터장은 “벌집계좌로 현금을 입금받는 거래소의 경우엔 언제 먹튀를 해도 전혀 이상할 게 없는 상황”이라며 “앞으로 이런 사례가 속출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이어 “불법 도박의 경우 판을 벌인 운영자나 도박을 한 사람이나 모두 처벌받는다”며 “불법 도박판이나 다름없는 이런 거래소를 이용하는 이들에게까지 (투자자) ‘보호’라는 원칙을 적용해야 하는지는 의문”이라고 덧붙였다.
 
고란 기자 neor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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