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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 닦달하는 장인의 손, 어떤 예술품보다 빛나는 이유

중앙일보 2018.12.14 10:00
[더,오래] 이정은의 장인을 찾아서(11)
올해 마지막으로 어떤 장인을 인터뷰할지 고민해봤다. 지금까지 만난 혹은 만날 장인 중에는 화려한 작품을 만드는 공예가나 국가에서 지정해주는 인간문화재도 있지만, 잘 알려지지 않았으며 안타깝게도 앞으로는 그 기술의 맥을 잇지 못하는 장인을 찾아보고 싶었다. 그래서 은 항아리나 보석함, 주전자를 만들어 온 은 대공가 전방진 장인(75)을 찾았다.
 
컵을 광내기(연마작업) 하고 있는 대공가 전방진 장인(75). [사진 이정은]

컵을 광내기(연마작업) 하고 있는 대공가 전방진 장인(75). [사진 이정은]

 
그는 조용하고 묵묵하게 누가 알아주든 말든  50여년 이상 한 길만 버텨온 장인이다.
 
금속공예의 재료로는 금·은·구리·주석·아연과 같은 것이 일찍부터 사용됐다. 오랜 시간 인류를 매혹한 금속으로는 가장 먼저 금과 은을 꼽을 수 있다. 다른 금속과 달리 찬란하게 빛났고, 오래도록 변하지 않아 오늘날까지도 그 가치를 세계적으로 인정받고 있다.
 
한국의 금속공예는 청동기시대에 들어서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어 중국의 영향을 받은 철기문화가 유입되어 찬란한 금속공예기술을 선보이게 된다. 한국에서 본격적으로 금과 은이 사용된 삼국시대부터 근대에 이르기까지 선조들은 뛰어난 작품을 만들었다.
 
대부분 도금이나 입사기법으로 꼭 필요한 곳에만 사용했다. 이런 기술을 지닌, 역사적인 인물로는 조각장 고 김정섭, 김철주 문화재 장인이 있다. 이외에도 은수저나 은 주얼리를 만드는 은 세공가 장인들도 따로 있다.
 
항아리의 윗부분을 용접중이다. [사진 이정은]

항아리의 윗부분을 용접중이다. [사진 이정은]

 
은은 다른 금속과 달리 녹이 슬지 않고 공기 중에 색이 변하지 않아 삼국시대 사람들이 매우 즐겨 사용했다. 은 공예란 은을 주재료로 해서 인류생활에 필요한 일용품이나 장식품을 만드는 공예이다. 특히 은은 여러 가지 세공이 가능하기 때문에 장신구 재료로 애용되었고, 그 은은한 색과 광택이 특출하다.
 
은 공예 중 일상생활과 밀접한 관계가 있는 것이 있다. 보통 대공이라 하는 식기·대접·쟁반·주전자·잔·수저 등 생활용품에서부터 쓰이는 것인데, 전 장인은 은을 갖고 주로 생활용품이나 생활장식품을 만들어온 대공가이다.
 
전 장인은 고등학교를 중퇴하고 19살인 1960년부터 은 공예를 시작했다. 일제강점기 전후에도 꾸준하게 은 대공을 해온 할아버지의 친구분인 고 김기현 장인으로부터 20여년간 배웠다. 1984년이 되어서야 독립해 지금까지 은과 함께 세월을 걸어오다 보니 어느새  가장 나이 많은 은 대공가가 되어 있었다.
 
1995년 비로소 장인 인증패를 받았지만, 장인의 이런 기술력은 보호받지 못하고 있다. 기술의 맥을 잇는 제자 양성을 위해 2012년에 와서야 은 기능 보유자를 신청해봤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접시 재단을 하며 오려내고 있는 전방진 장인. [사진 이정은]

접시 재단을 하며 오려내고 있는 전방진 장인. [사진 이정은]

 
1970~80년대까지만 해도 은을 칠보와 함께 실생활에서 사용하는 사람이 많았고, 혼수품으로도 많이 나갔다. 안타깝게도 1997년 IMF 외환위기 이후부터 은을 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사람이 줄었고 돈벌이가 못되기에 있던 제자들도 다 떠났다.
 
힘들면 쉽게 포기하는 요즘, 힘든 시기를 극복하고 꾸준하게 변함없이 공방을 지켜온 장인의 원동력을 물었다. “어쩌다 배운 게  이것 뿐이라, 먹고 살기 위해 하게 되었네요. 그런데 어느덧 시간이 지나니 은은 평생의 제 삶이 돼버렸어요.” 솔직한 답변이다.
 
은 공예품 제작 기간은 크기와 종류에 따라 다르지만, 일주일에서 한 달 정도 걸린다. 은 공예품 제작을 위해 기본적인 제작 방법은 크게 세 단계이다. 먼저 원하는 형태를 그리는 은 재단을 한 뒤 시보리틀 잡고 주물에다가 형태를 만들기 시작한다. 시보리는 돌림판으로 기물을 가공하는 작업을 일컫는다. 
 
두번째는 쇠로 두들겨서 닦달하는 기법을 쓴다. 이때 망치로 두들기며 모형을 만들어 나가는데, 작업자 용어로는 ‘거든다’고 한다. 마지막으로 광내기(연마) 작업 단계에서는 기계도 같이 사용해 광을 낸다. 단계는 간단해 보여도, 장인의 굳은살 박인 손을 보면 정말 고된 과정을 통해 예술품의 기반을 마련하는 은 대공이 비로소 완성된다.
 
쇠로 두들겨서 닦달하는 중이다. [사진 이정은]

쇠로 두들겨서 닦달하는 중이다. [사진 이정은]

 
은의 효능은 동의보감에서 은을 몸에 지니면 오장이 편하고 심신이 안정되며 몸을 가볍게 하여 명을 길게 한다고 했다. 은은 천연의 항생물질로 어떤 부작용도 수반하지 않고 내성이 거의 없으며, 살균 작용에도 탁월한 효과를 지니고 있다. 또한 항균작용으로 병균의 번식을 막아주는 뛰어난 효능을 가지고 있다.
 
이처럼 은의 면역성이 놀랍다. 『인체와 전기』의 저자 로버트 베커 박사는 인체 면역력의 상당 부분을 은이 맡고 있다고 하면서, 체내의 은 함량이 기준치인 0.0001% 이하로 떨어지면 질병에 걸릴 확률이 높아진다고 했다. 은은 1200년 동안 살균제로 사용돼왔다. 은 컵과 은 식기를 사용해 병의 감염을 막았다. 혹은 은 상자(함)를 만들어 음식의 부패를 막았다.
 
완성된 은주저 모습. [사진 이정은]

완성된 은주저 모습. [사진 이정은]

 
결국 유산으로 오늘날까지도 은 생활공예품이 대물림해 이어오는 데는 이유가 있다. 비단은 대공만의 문제가 아니다. 은입사나 은세공의 기술력같이 선조들이 남겨준 위대한 유산을 지속해서 잇기 위해서는 혜택이나 지원을 전혀 못 받는 장인들의 공방 환경 개선뿐만 아니라 맥을 잇는 젊은 금속공예가들의 도제 교육을 위한 지원이 절실하다.
 
올해 많은 기업이 ‘장인 정신’을 화두로 하고 있다. 영화배우나 드라마에 나오는 배우를 가리켜 ‘연기 장인’이라는 수식어도 붙인다. 이처럼 장인이라는 단어는 전통적인 수공업자나 기술자에 한정하지 않는다. 어느 분야에서건 최고인 사람에게 호칭을 부여하고 있다. 결국 자신의 분야에서 최고의 위치에 있는 사람으로서 일하는 모범이 될 만한 본보기가 되는 사람이다.
 
1960년부터 시대적 변화로 인해 다사다난했던 58년 한국의 역사를 실제로 함께 겪으면서도 제자리를 지켜온 은 대공 전 장인은 단순히 기술력만이 전부가 아닌 자신의 업에 대한 변하지 않는 성실함과 끈기 덕분에 조금만 힘들어도 쉽게 포기하는 오늘날 많은 사람에게 귀감이 된다.
 
이정은 채율 대표 je4747@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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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은 이정은 채율 대표 필진

[이정은의 장인을 찾아서] 인간문화재 등 최고 기술의 장인이 만든 최고급 전통공예품을 제조하고 유통한다. 은퇴 후 전통공예를 전수할 문하생을 찾고 있다. 시간과 노력은 많이 들지만 은퇴 이후가 아니면 전통예술을 배울 기회는 흔치 않다. 지방 곳곳에 있는 인간문화재 등 장인을 소개하고, 은퇴 문하생으로 들어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 재취업으로 연결하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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