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본문

<심상복 연애소설>헤어진 남편 얘기는 왜 내게 하는 걸까

중앙일보 2018.12.14 08:00
[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일러스트 이정권 기자]

제12화

그녀는 한마디로 정의하기 어려운 여자였다. 아니 열 마디도, 백 마디도 모자랄 거 같았다. 사실 한마디로 규정할 수 있는 사람이 과연 있을까. 그럼에도 사람들은 그렇게 하길 좋아한다. 60조~100조 개의 세포로 구성된 한 인간을 놓고 누구는 쾌활하고, 누구는 말이 없고, 누구는 오만하고, 누구는 인사를 잘한다고 말한다. 70억 세계인을 혈액형에 따라 네 가지 성격으로 구분하려는 것도 난센스 중 난센스다.
 
소심하면 A형이라고? O형 중에는 그런 사람이 없을까. 일견 소심한 사람도 어느 땐 돌변하기도 한다. 흔히 외향적이라고 하는 사람들 가운데 “사실 난 내성적”이라고 말하는 이들이 적지 않다. 그녀는 그중에서도 어떤 사람이라고 간단히 규정하기 어려운 사람이었다. 어떤 때 생각은 철기시대 언저리에 머물고 있는 듯했지만 외모는 세련된 게 동시대에서도 첨단이었다. 특히 어깨를 감싸는 헤어스타일은 샴푸광고 모델처럼 짙은 갈색에 윤기가 자르르 흘렀다. 사자성어를 자주 쓰지만 자동차는 20대가 즐길만한 감각적인 스타일이고.
 
나를 태운 그녀의 차는 서초IC에서 경부고속도로로 진입했다. 퇴근길 러시아워는 아직 좀 남았지만 도로는 이미 차들로 넘쳐나고 있었다. 만남의광장을 지나자 그녀는 속도를 내기 시작했다. 앞차가 느리게 가자 ㄷ자 운전도 해 보였다. 마치 남자들이 처음 만난 여자를 꼬이기 위해 폼 잡는 것처럼.
 
스피드를 즐기는 그녀
"누나, 운전 잘하시네요, 스피드도 즐기는 것 같고…."
"차는 이렇게 몰아야 제맛이지."
"이런 운전이 가능한 차는 따로 있는데, 늘 이런 차만 탔어요?"
"ㅎㅎ. 이런 차만 탔느냐고? 글쎄……."
그녀는 헤어진 남편한테 운전을 배웠다고 했다.
"결혼 전 데이트하면서 날 이런 차에 태우고 달렸어. 난생처음이었는데 기분이 좋더라고. 나에게 그런 기질이 있었는지 그때 처음 알았어. 그때까지만 해도 난 장롱면허였거든."
 
연애 시절 남편은 그녀가 스피드를 좋아하는 걸 알고 주말마다 교외나 지방으로 드라이브 갔다고 했다. 그녀는 1시간쯤 때로는 거칠게 때로는 리드미컬하게 차를 다루면서 이야기를 멈추지 않았다. 자신의 연애와 결혼에 대해. 나는 그게 늘 궁금했지만 그날은 내가 묻기도 전에 술술 풀어놓는 것이었다. 그 심리가 궁금했다.
-나를 이제 남자로 인정하고, 과거의 남자와는 완전하게 이별하는 의식이 아닐까….
나는 그렇게 해석하고 싶었다.
 
"출근 첫날 교무실에 들어가 쭈욱 돌면서 인사를 하는데, 자신은 석 달 전 부임한 사회 선생이라며 같은 신입이니 잘 지내보자고 하더라구."
그날 들은 그녀의 결혼 스토리는 이렇게 시작됐다. 작가의 길을 접은 그녀는 교사 시험을 거쳐 스물일곱에 서울 봉천동의 한 고등학교에 국어교사로 부임했다. 사회 선생님은 두 살 위였다. 잘 생긴 편이었고 인상도 좋았다고 했다. 그렇게 시작된 만남이 1년 뒤 결혼으로 이어졌다. 남자에 대해 별로 좋은 감정을 가져보지 못한 그녀는 자신도 그렇게 일찍 시집갈 줄은 전혀 몰랐다고 했다.
 
연애과정도 별 어려움 없었다. 어머니는 개가하고, 아버지와 단둘이 사는 게 약점이라고 생각했지만 남자 쪽에선 별로 문제 삼지 않았다. 오히려 부녀가 다 선생님이라는 점에 남자 아버지는 썩 만족했다고 한다. 자신은 학력도 낮은 데다 재산 말고는 특별히 내세울 게 없었기 때문이었던 것 같다고 했다. 남자 집은 천안이었는데 중학교 때 보잘것없던 주변이 개발되면서 수십억대 땅 부자가 되었다. 코앞에 고속버스터미널이 생겼고, 그 안에 잡화점과 약국을 운영하면서 재산을 더욱 불렸다.
 
연애 시절 남편은 매우 나이스했지만 결혼 뒤 조금씩 달라지기 시작했다. 자기 집이 부자인 티를 냈고, 평범한 교사의 딸을 가끔 업신여기는 말투도 튀어나왔다. 그녀는 남편이 너무 좋아서, 한시도 떨어져 있고 싶지 않아서 결혼한 그런 케이스는 아니라고 했다. 결혼생활에 대한 환상도 별로 없었다고 했다. 그래서 그런 남편의 작은 변화가 거슬리긴 했지만 여느 가정에서나 있는 그 정도 일로 받아들였다.
 
난 학생들을 다룰 줄 몰랐어….
"그런데 학교에서도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어. 난 명색이 선생님이었지만 아이들을 잘 다룰 줄 몰랐어. 나중에 깨달았지만……."
"신입 교사들은 다 비슷하지 않던가요?"
학생들은 틈만 나면 젊고 예쁜 선생님을 갖고 놀려고 덤볐다. 한번은 교실 문 앞에 초 칠을 해서 미끄러지게 만들었다. 임신 중이었다면 큰일 날뻔한 사건이었다. 그러다 마침내 진짜 사고가 터졌다. 학생들이 손거울을 교실 바닥에 몰려 숨겨두고 선생님 치마 속을 들여다보다 들킨 것이다.
"공부는 지지리도 못하는 것들이, 누구야!!!"
 
그날 그녀는 제정신이 아니었다. 공모한 3명을 찾아내 교실에서 회초리로 마구 때리고, 그래도 분이 풀리지 않아 교무실로 끌고 와 퇴근 때까지 벌을 세웠다. 결혼이 3주 앞으로 다가온 때라 신랑 볼 낯도 없고 해서 더욱 화가 났다. 남편은 당연히 그녀 편을 들며 다독여줬다.
"기분 정말 나빴지? 자, 이제 좀 진정하자구. 철없는 10대들이잖아. 애들이 다 그렇지 뭐."
거기까진 좋았다.
"사실 나도 학교 때 그런 짓을 했거든."
남편은 그 나이 남자애들이 다 그렇다는 식으로 위로한다는 거였는데 그게 다시 그녀의 화를 돋웠다.
"정말 실망이야. 난 정말 왜 이렇게 남자들에게 당하기만 하니……."
그날 그녀는 집으로 돌아와 엉엉 울었다. 결혼이고 뭐고 다 때려치우고 싶은 마음이 들었다고 했다. 진짜로.
 
그 사건 이후 그녀는 아이들에게 작은 허점도 보이지 않으려고 애썼고, 학생들을 더욱 엄하게 다뤘다. 숙제를 안 해 오거나 수업 분위기를 망치는 학생들이 타깃이 되었다. 회초리 손잡이 부분에 '사랑의 매, 교육의 매'라고 쓴 휘장을 달아 체벌이라는 소리가 나오지 못하도록 했다. 하지만 그게 별 처방은 되지 못했다. 아이들은 부모를 통해 국어 선생님을 비난했고, 그 소리는 자연히 교감, 교장에게도 들어갔다. 그녀는 교감에게 몇 번 불려가 주의를 받았지만 얼마간 시간이 지나면 또 그랬다. 그런 문제는 당연히 남편도 불편하게 만들었다.
 
"요즘 세상에 애들을 그렇게 다루면 어떡해? 당신 제정신이야?"
어느 날 남편도 그렇게 폭발했다. 그녀는 그 길로 집을 나갔고, 학교도 무단결근했다. 남편은 사흘 만에 간신히 그녀를 달래 데려왔지만 학교와 학생들에 대한 그녀의 애정은 이미 식은 상태였다. 출근은 했지만 의미나 재미를 찾지 못하던 그녀는 결국 사표를 던지고 말았다. 남편과 상의도 없이. 그게 결혼 2년쯤 됐을 때라고 했다.
 
그 뒤 두 사람의 간극은 점점 벌어져 결혼 3년 차에 결국 헤어지고 말았다. 아이도 없어 그런 결정을 내리기가 쉬웠다고 했다. 재산은 자신이 기여한 것이 별로 없었기에 기대하지 않았으나 시아버지가 직장도 없이 혼자 살려면 돈이 없으면 안 된다며 섭섭지 않게 챙겨줬다. 남편은 당시 타던 차를 줬는데 얼마 뒤 그 차는 팔았다고 했다.
 
요양원을 가다
"벌써 10년도 넘은 얘기네요."
"혼자 사니 너무 좋아. 싫어하는 사람은 안 만나면 그만이고, 먹고 싶은 대로 먹고, 가고 싶은데 가고……."
"........"
나는 먹먹했다. 이어갈 말을 찾지 못하고 있는데 그녀의 차가 속도를 줄이더니 멈춰섰다. 나는 그녀에게 오늘 어디 가느냐고 물어보지 않고 탔는데, 이제 목적지에 온 것 같았다.
 
"여기가 어디예요?"
"딱 보면 몰라?“
요양원이었다. 글 못 쓴다고 혼내 놓고는 일언반구 언질도 없이 아버지가 계시는 곳으로 데려온 것이었다. 그러고 보니 내 느낌이 그리 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남편과 얽힌 복잡한 인연은 이제 다 털어버리고, 새 남자를 데리고 와 아버지에게 인사시키려는 것이 아닐까.
 
"왜 미리 귀띔이라도 하지 않았어요?"
용인 어디쯤 요양원이었다. 나는 주위를 둘러보면서 그렇게 물었다.
"그랬으면 무슨 대단한 준비라도 하려고?"
"아니, 그래도 좀……."
"나도 갑자기 오게 됐어. 그냥 아무 생각 없이……."
그녀는 진짜 별 의도 없이 온 것처럼 말했다.
-진심을 다 드러내기 아직은 이르거나 용기가 없다는 걸까…….
 
그녀는 부담스러우면 휴게실에서 기다려도 좋다고 했다. 바보가 아닌 이상 그럴 일은 없었다.
"아버지, 동생 같은 친구 하나 데려왔어요."
약에 취했는지 자고 있던 아버지는 간신히 눈을 뜨고 의식을 찾으려고 애썼다.
"동 생 같 은 친 구 요!"
아버지가 잘 알아듣지 못하자 그녀는 이렇게 또박또박 다시 말했다.
나는 그제야 허리를 꺾으면서 인사를 드렸다.
"김천이라고 합니다."
"김천이라고?"
어눌한 발음이었지만 내 이름이니까 쉽게 들렸다.
퀭한 눈으로 침대에 누운 아버지는 나를 한참 올려다봤다.
"아주 훤하게 잘생겼구먼."
나는 눈물이 핑 돌았다. 초등학교 4학년 때 아버지를 잃고 난 뒤 텅 비어있던 마음이 따뜻하게 채워지는 느낌이었다. (계속)
 
관련기사
기자 정보
심상복 심상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