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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느리를 죽음으로 몰고간 시아버지의 지레짐작

중앙일보 2018.12.14 07:00
[더,오래] 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22)
부인을 두고 과거를 보러 가던 남자가 도저히 부인 생각이 나 더는 가질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인은 은비녀를 빼 주며 남자를 내보냈다. [중앙포토]

부인을 두고 과거를 보러 가던 남자가 도저히 부인 생각이 나 더는 가질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부인은 은비녀를 빼 주며 남자를 내보냈다. [중앙포토]

 
슬픈 이야기 하나 할까 한다. 억울함을 풀지 못하고 세상을 떠난 여자의 이야기다. 옛날에 한 남자가 예쁜 부인을 두고 과거를 보러 가기 위해 먼 길을 떠나게 되었다.
 
남자는 얼마만큼 가다가 도저히 부인 생각이 나 더는 가질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것도 아버지한테 들키면 안 되니까 식구들 모두 잠든 밤중에 몰래 집으로 들어갔다. 부인은 은비녀를 빼주며, “이걸 가지고 다니다가 이 비녀의 색이 변하면 내가 잘못된 줄 알고, 비녀 색이 그대로 있거든 내가 잘 있는 줄 아셔요” 하고는 남자를 내보냈다.
 
과거 보러 가다 부인 생각에 집으로 돌아온 남자
그런데 그날 밤 남자의 아버지가 잠이 안 와 산책을 나왔다가 며느리 혼자 있는 방에서 두런두런 말소리가 들리자 의심을 하게 됐다. 이튿날 아침 아버지는 며느리를 불러다 놓고 엊저녁에 왔던 게 누구냐고 캐물었다. 여자가 할 수 없이 남편이 다녀갔다고 하자 과거 보러 간 놈이 어떻게 왔다 가느냐며 믿지 않았다. 버선목이면 뒤집어 보여주기라도 하겠지만 그저 따져 묻기만 하는 데에는 도리가 없었다.
 
여자는 그날 저녁 “아가야 울지 마라. 아버지 장원급제해서 돌아온다” 하고 노래를 하며 애들을 재우고서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과거 보러 가던 남자는 수시로 비녀를 꺼내 보며 부인 생각에 여념이 없었는데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자마자 비녀를 보니 비녀가 새카맣게 죽어 있었다. 남자는 한달음에 집에 달려왔지만 부인은 이미 죽고 없었다.
 
구연자는 안타깝다는 듯이 “문을 열구 딜여다는 안 보구, 딜여다나 봤으면 ‘너 왜 안 가구 왔느냐’구 이러구 말건디” 하더니, 이야기 끝에는 “그래 일을 당할라먼 발쌔 그게 왜 산 사람 두구 잠깐 과거 보러 가능게 그릏게 못 믿었겄어…”라고 했다.
 
충청도 탄동 면에서 서울로 과거를 보러 다녀오려면 여러 날 걸렸을 것이다. 길다면 긴 시간이기도 하겠지만, 멀쩡하게 잘 살아 있는 사람 두고 잠깐 다녀오는 길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런데 자기 눈엔 너무 예쁜 부인을 두고 집을 떠나 있는 게 그렇게도 불안해 가던 길도 돌아서 집으로 다시 들어오는 남편이었다.
 
시아버지는 며느리 혼자 있을 방에서 웬 남자 목소리가 들리기에 며느리가 남편이 없는 사이에 딴 놈이랑 있었다고 지레 의심했고, 며느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 pixabay]

시아버지는 며느리 혼자 있을 방에서 웬 남자 목소리가 들리기에 며느리가 남편이 없는 사이에 딴 놈이랑 있었다고 지레 의심했고, 며느리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사진 pixabay]

 
시아버지 입장에서는 며느리 혼자 있을 것이라고 믿었던 방에서 웬 남자 목소리가 들렸다면 대체 무슨 일인가 걱정되어서라도 들여다보기라도 했으면 좋았을 것이다. 과거 보러 가다 말고 도로 집에 와 있는 아들놈을 보고 ‘너 왜 안 가고 왔느냐’며 호통이라도 쳤을 텐데, 시아버지는 며느리가 남편 없는 사이에 딴 놈이랑 있었다고 지레 의심했기 때문이다.
 
지레짐작이 이렇게도 무섭다. 자신의 틀과 잣대에 사로잡혀 사태를 파악하지 못하고 멀쩡한 사람을 저세상으로 보내기도 하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를 할 때 현대인은 너무도 쉽게 ‘그런 말 한마디 들었다고 목숨을 버리느냐’ 탓하기도 하지만 ‘억울함’은 멘탈을 흔들어대는 가장 강력한 느낌 중 하나다.
 
게다가 그 억울함을 풀 수 있는 길이 어디에라도 있었다면, 누구에게 도움이라도 청할 수 있는 조건이 갖추어져 있었다면 어떻게라도 해보았을 것이다. 남편과 시아버지가 자신을 믿지 못한다는 것은 이 세상 전부가 자신을 버리는 것과도 같은 느낌인지라 다른 선택지도 없었을 것이라고 이해해 줄 필요가 있다. 옛이야기 속 여성이 겪는 일에 대해 현대인의 시각으로 재단하는 것은 피해야 할 일 중 하나이다.
 
억울함, 버림받음, 이해받지 못함을 한꺼번에 겪은 또 다른 여성의 이야기가 있다. 서울에서 경남 밀양 월영리를 찾아가는 데 삼십 년이 걸린 한 과부 이야기이다.
 
밀양의 가난한 선비가 벼슬이라도 한자리 얻을까 하고는 있는 재산 없는 재산 다 긁어모아 서울의 한 정승 집을 찾아갔다. 하다 하다 나중엔 부인의 머리카락을 팔아 마련한 돈까지 죄다 바쳤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다.
 
선비는 하릴없이 행랑채에 들어앉아 글이나 온종일 읽고 있었는데, 옆집의 돈 많은 과부가 선비의 글 읽는 소리에 반해 편지를 보내왔다. 선비는 이 과부와 마음이 맞아 하루가 멀다고 과붓집을 드나들게 되었고, 소문이 날 것을 염려한 과부는 선비의 고향에 함께 가서 살자고 했다.
 
과부는 갖은 보화와 돈, 피륙을 말에 잔뜩 싣고 선비와 함께 길을 나서 한강 어귀에 이르렀을 때 귀한 보물 하나를 두고 온 게 생각났다. 도로 집으로 간 과부를 기다리던 선비는 해가 지도록 과부가 오지 않자 과부가 변심해 돈을 줘서 자신을 떼어 낸 것이라고 생각하고 혼자 고향 밀양에 내려갔다.
 
남편에게 재물 준 과부의 위패 모신 아내
선비의 부인은 선비가 갑자기 많은 재산을 갖고 나타나자 자초지종을 캐물었다. 그러고는 대번에 짐작했다.
 
‘아하, 이 과부가 집 밖으로 나설 일이 별로 없었을 텐데 생전 가본 적 없던 길을 혼자 찾아가느라 길을 잃은 모양이다. 어쩌면 그사이에 선비가 사라진 것을 보고 절망해 한강 물에 빠져 죽었을지도 모를 일이다.’
 
과부는 선비 부인의 짐작대로 길을 잃고 헤매다가 해가 지고서야 선비 있던 자리로 찾아왔고, 선비가 보이지 않자 자기 재산을 혼자 독차지하려고 자신을 버리고 간 줄로만 알고는 수중에 있던 몇 푼으로 방물장수로 꾸민 뒤 선비를 찾아 나섰다. 그저 월영리라는 마을 이름 단서 하나만 가진 채 품에는 매일 갈아 날이 바짝 선 칼을 하나 품고. 그렇게 함경도 꼭대기에서부터 월영리를 찾아 훑어 내려온 세월이 삼십 년이었다.
 
밀양에 이르러서야 월영리라는 마을에 닿아 선비의 집을 찾아가게 됐다. 방물장수인 척하고 집에 들어가서 보니 집 안에 위패를 모셔 두고 과일 하나가 생겨도 상식을 먼저 올린 뒤 손자에게 주고 있는 것이었다. 조상을 모신 것 같지도 않은데 저 제단은 무엇이냐 물으니 선비 부인이 사연을 말해주었다.
 
삼십 년 전 선비가 알던 한 과부에게 몹쓸 일이 생긴 것 같아 자신들 때문에 생긴 일을 사죄하고, 과부의 재물 덕에 살게 된 일을 기억하기 위해 지난 삼십 년간 이렇게 매일 삼시 세끼 상식을 올렸다는 것이었다. 과부는 품고 있던 칼을 떨어뜨리며 자신의 정체를 밝혔고, 선비와 선비 부인은 과부를 식구로 맞아들여 함께 잘 살았다.
 
조금 길지만 이야기를 온전하게 감상하는 데에도 의미가 있다고 생각해 정리해 보았다. 셋이 함께 살게 됐다는 결말에서 좀 황당함을 느낄 수도 있겠다. 무엇보다 선비 부인의 태도를 이해하기 힘들 수도 있는데, 기왕 벌어진 일에 대해 잘잘못을 따지기 이전에 사태를 정확하게 파악하려고 노력하는 모습에 눈길이 간다.
 
억울한 일을 당한 과부는 가슴에 칼을 품은 채 삼십 년을 떠돌 수 있다. 과부만을 탓할 수도 없다. 인생을 걸었던 남자에게서 버림받았으니 그럴 만도 하다. 선비의 부인은 그걸 인정한 거다. 그리고 과부의 처지를 바탕으로 그날 일어날 법한 일을 유추했다.
 
중요한 점은 선비의 행동으로 인해 과부에게 어떤 일이 생겼을지도 모르니 자신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도리를 행하기 위한 방법을 찾은 것이다. 위패를 모시는 게 무슨 의미냐 할 게 아니다. 이 이야기 속에서 선비의 부인은 할 수 있는 최대한의 방법을 찾은 것이라고 보아야 한다.
 
사태 파악을 위한 노력, 여기에서 오해와 불신, 의심으로 인한 문제를 해결할 방도를 찾아본다. 공과의 유무와 정도를 따지는 일에 앞서 무슨 일이 벌어진 것인지 분명하게 알려고 하는 노력은, 그것이 사람의 일이라는 관점을 바탕으로 했을 때야 분명하게 이루어질 수 있다. 이런 말도 각박한 마음에는 씨도 안 먹힐 것이다.
 
자기를 내세우고 원리원칙을 따져가며 발악을 해도 원하는 것을 이루기엔 모자란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래서 오히려 더더욱 발악해도 원하는 것을 이루기 힘든 세상을 우리가 스스로 만들어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모르겠다.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초빙교수 irhett@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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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도영 권도영 건국대학교 서사와문학치료연구소 필진

[권도영의 구비구비 옛이야기] 우리 옛이야기에는 치유의 힘이 있다. 신화, 전설, 민담에는 현대에도 적용 가능한 인간관계의 진실이 숨어 있기 때문이다. 관계에서 생기는 갈등은 어느 무엇보다도 우리를 지치게 한다. 나 하나를 둘러싼 인간관계는 단순하지 않고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이런 관계의 갈등을 심도 있게 들여다볼 수 있는 자료가 옛이야기이다. 우리 옛이야기를 통해 내 안에 숨어 있는 치유의 힘을 일깨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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