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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업은행 화장실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IT 개발자

중앙일보 2018.12.14 06:30
지난 10일 오후 6시 30분쯤, 야근을 앞두고 산업은행 별관 화장실에서 주검으로 발견된 40대 가장의 사연이 IT 개발자들의 탄식을 낳고 있다. 산업은행 프로젝트 외주 개발사 차장으로 일하다 숨진 신모씨에 대한 이야기다.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중앙포토]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중앙포토]

 
고인의 동료는 12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 “몇 번의 은행 프로젝트 중 구급차에 실려가는 사람과 죽음에 이른 사람들을 보고 들어왔다”며 “고인의 죽음은 개인적 사고인가 업무 시간에 일을 하다 발생한 산업재해인가”라고 탄식했다. 해당 청원은 개발자 커뮤니티를 중심으로 화제가 되며 이틀 만에 1만명 이상의 동의를 얻었다.
 
청원자에 따르면 고인의 사망 추정 시간은 오후 1시 30분이고 발견 시간은 그로부터 5시간 뒤였다. 야근을 앞두고 동료들이 저녁 식사를 하자고 전화를 했는데 화장실에서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고 한다. 청원자는 “5시간이 지나서야 발견된 주검은 이미 몸이 굳어 있었다. 야근을 하지 않았다면 더 늦게 찾았을 것”이라며 안타까워했다.
 
청원자는 “나는 몇 번의 은행 프로젝트를 경험했고 구급차에 실려가는 사람과 죽음에 이른 사람들에 대해 보고 들었다”며 “모든 프로젝트는 기한 내에 끝내야 하고 쫓기고 쫓기는 중압감은 상상을 넘어선다. 수행사의 수익은 개발자들을 쥐어짠 결과물이다. 개발자들은 스트레스에 공황장애, 뇌졸중, 심근경색 등의 위험에 항상 놓여있다”고 주장했다. 
 
또 이번 프로젝트에서 특이한 점이 있었다고도 전했다. 프로젝트에 참가하는 하청업체 직원들은 모두 최저임금으로 정규직화했다는 것이다. 그는 ‘갑’ 산업은행 및 ‘을’ SK C&C는 아무 책임을 지지 않아도 되는 ‘병’ 하청업체 정규직이라는 카드를 썼다고 주장했다. 프리랜서 개발자들을 정규직으로 고용한 하청업체들은 인력 소개소일 뿐 아무 기능도 하지 않는다고도 말했다.  
 
해당 사건에 관해 산업은행 측은 “아직 경찰 조사 중인 사안”이라며 말을 아끼고 있다. 이 사건은 극심한 심적 압박과 고된 업무 환경에 놓인 개발자들 사이에서 “남 일이 아니다”라는 반응을 낳고 있다. 
 
신씨은 평소 지병이 있었다고 한다. 그의 친척동생이라 밝힌 이는 13일 온라인 커뮤니티에 청원 링크 주소를 남기면서 “산재 처리가 안 될 수도 있다고 한다”며 “많은 IT 종사자들의 고충이 반복되지 않기 위해 세상이 조금이나마 나아졌으면 좋겠다”고 청원 참여를 부탁했다.
 
정은혜 기자 jeong.eunhye1@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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