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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식의 야구노트] 프로야구 양극화, 지켜만 볼 건가

중앙일보 2018.12.14 02:31
잠잠했던 프로야구 FA(자유계약선수) 시장이 크게 출렁거렸다. NC가 지난 11일 대형포수 양의지(31)를 4년 총액 125억원(계약금 60억원, 4년 총연봉 65억원)에 계약하며 엄청난 폭발력을 보여준 것이다. 이에 앞서 SK는 소속팀 FA 최정(6년 106억원)과 이재원(4년 69억원)을 잡았다.
 

양의지 125억, 강한 매수세 확인
시장에 맡기면 특급 FA만 독식
'4년 80억' 결렬 후 KBO는 방관

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다음날 NC와 4년 총액 125억원에 계약한 양의지. [연합뉴스]

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다음날 NC와 4년 총액 125억원에 계약한 양의지. [연합뉴스]

 
이로써 'FA 빅3'로 꼽힌 선수들의 계약이 마무리됐다. 미계약자 11명의 계약 규모는 크지 않을 전망이다. 경기침체가 이어지고 모기업 지원이 줄어 구단의 투자 의지가 꺾인 상황에서도 프로야구는 극심한 양극화가 진행되고 있다.
 
올 겨울 FA 시장은 예년처럼 수요·공급의 교차점에서 가격이 형성됐다. FA 거품이 자연스럽게 꺼질 것이라는 예상은 양의지의 역대 두 번째 최고액(1위는 이대호의 4년 총액 150억원) 계약과 함께 깨졌다. 지난 9월 '4년 총액 80억원 상한'으로 상징되는 FA 개선안을 내놨던 한국야구위원회(KBO)는 방관자적 관점으로 시장의 흐름을 지켜만 보고 있다.
 
당시 KBO의 FA 개선안의 핵심은 대상자를 비자본주의적으로 압박하는 카드(연 평균 상한 20억원)였다. 동시에 FA 등급제, FA 자격취득 연한 단축, 최저 연봉 상향 등 대부분의 선수들이 좋아할 방안도 한국프로야구선수협회의(선수협)에 함께 내놨다. 일종의 '패키지딜'이었다. 이 제안에는 10개 구단 이사회의 의견과 정운찬 KBO 총재의 생각이 함께 담겨 있었다. 정운찬 총재는 "FA 몸값이 너무 높아 구단과 리그의 지속 가능성이 어렵다고 생각한다. 최저 임금(연봉)도 제가 보기엔 너무 낮다"고 말한 바 있다.
 
선수협은 KBO의 제안을 단칼에 거부했다. 최저 연봉 상한은 당연히 찬성했지만, FA 상한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과정에서 김선웅 선수협 사무총장이 환경미화원 초봉(4000만원)을 프로야구 최저 연봉의 기준으로 삼아야 한다고 주장했다가 여론의 역풍을 맞고 사과했다. 선수협의 '자책골'이 나오자 KBO는 기다렸다는 듯 "더 이상 협상은 없다"며 테이블을 떠났다. 
 
김선웅 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이 지난 10월 FA 제도 변경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김선웅 프로야구선수협회 사무총장이 지난 10월 FA 제도 변경안에 대해 설명하고 있다. [뉴스1]

 
이후 장윤호 KBO 사무총장은 "올 겨울 FA 시장을 보라. 이전과 다를 것"이라며 "구단이 선수에게 실제로 얼마를 지급했는지 국세청 자료를 KBO에 제출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뒷돈이나 과도한 인센티브를 주는 걸 막겠다는 의미였다. 그러나 양의지는 연 평균 31억2500만원의 계약에 성공했다. 단기간에 성적 향상을 기대하는 구단의 FA 매수세는 여전히 강하다는 사실이 입증됐다.
 
양의지의 계약이 발표된 후 장윤호 사무총장은 "선수협이 FA 개선안을 수용하지 않았으니 추가로 협상할 계획은 없다"며 "더 지켜보면 시장이 달라질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장윤호 사무총장의 말대로 양의지가 특별한 경우일 뿐 시장의 에너지는 점차 사그라들 수도 있다. 매년 1~2명 FA 시장에 나오는 특급 선수들의 몸값은 시장의 맡기겠다는 게 KBO의 변화한 스탠스로 보인다.
 
문제는 선수협도, 구단도, KBO도 별 관심을 두지 않는 '소외계층' 선수들이다. 외국인 선수를 제외한 국내 프로야구 선수 580명 중 연봉 5000만원 이하는 53%에 이른다. 고액 FA 선수의 몸값이 전체 연봉의 50% 안팎이다. 선수협은 영향력이 큰 고액 연봉자에게 휘둘리고, 경영 효율을 따져야 하는 구단은 저연봉자에게 자원을 나눠줄 의지가 별로 없다. 이를 중재해야 할 KBO는 한 차례의 협상 결렬 후 팔짱만 끼고 있다.
 
1982년 프로야구 최고 연봉은 2400만원으로 최저 연봉(600만원)의 4배였다. 올해 최고 연봉자 이대호의 연 평균수입은 37억5000만원으로 최저 연봉의 139배에 이른다. 메이저리그(최저 연봉 54만5000달러·6억1500만원), 일본리그(최저 연봉 1500만엔·약 1억5000만원)와 비교하면 KBO리그 저연봉 선수들의 처우는 매우 열악하다. KBO리그에서 해마다 탄생하고 있는 '스포츠재벌'은 시장 성장보다는 양극화의 과실을 누리는 것으로 볼 수 있다.
 
프로스포츠에서는 자유경쟁의 원리만 적용돼선 안 된다. 전력의 평준화는 모든 종목에서 내거는 가치다. 산업화가 활발한 미국 4대 스포츠도 샐러리캡(Salary cap·연봉 총액 상한제) 또는 사치세(Luxury tax·한도를 초과한 총연봉에 대한 벌금) 제도를 운영하는 건 리그의 균형발전, 자원의 분배정의 실현을 위해서다.
 
지난 10여 년간 KBO리그는 고도성장을 이어왔다. 2006·2009 월드베이스볼클래식과 2008 베이징올림픽 등 국제대회에서 선전했고, 9구단 NC와 10구단 KT가 창단했다. 리그의 인기가 높아지면서 중계권료와 입장권·마케팅 수입이 커졌다. 최근의 양극화는 고도성장에 따른 후유증으로 봐야 한다.
 
지난 6일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의 날 행사에서 축사를 하는 정운찬 KBO 총재. [뉴스1]

지난 6일 한국프로야구 은퇴선수의 날 행사에서 축사를 하는 정운찬 KBO 총재. [뉴스1]

 
지난 1월 정운찬 동반성장연구소 이사장이 KBO 총재로 취임했다. 그는 KBO리그의 균형 발전과 구성원 간 격차 해소를 위해 뛸 것으로 기대됐다. 실제로 정운찬 총재는 KBO리그의 동반성장에 대해 연구 중이라는 말을 여러 차례 했다. 정운찬 총재가 1년을 보내는 동안 KBO는 '4년 80억원 상한'을 제안했다가 철회했을 뿐이었다.
 
현재 FA 제도가 문제없다고 생각한다면 그건 정운찬 총재의 경영판단이다. 그러나 불합리성을 인지하고도 지켜만 본다면 그건 직무유기다. 시장에 대한 냉정한 분석과 효과적인 처방, 불평등 해소를 주장했던 경제학자다운 해법을 기대한다.
 
김식 기자 seek@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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